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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시청자 Feb 10. 2019

콩깍지의 무서움에 대하여

<로맨스는 별책부록>과 상관없음 주의

콩깍지란 사랑에 빠져 판단력을 흐리게 함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난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언제나 꽤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나의 착각이고 오만이었구나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때문이다. 사실 캐스팅 소식을 듣고, 포스터를 보고, 무려 티저를 봤을 때까지도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 혹은 궁금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님이 정현정 작가님인 사실을 알고 나자 태도가 완벽하게 돌변했다.

그렇게 첫 방송을 기다리면서 챙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 다른 작가님, 혹은 작품이었으면 기겁했을 장면들을 보면서도 이렇게 한 뜻이 있겠지, 의미가 있겠지 라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나를 깨달았을 때의 충격이란. 한 화가 끝날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정현정 작가님의 감성과 장점을 발견하기 위해, 역시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을 때의 기분이란. 심지어 방송을 다 보았을 때까지도 몰랐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다른 리뷰어의 감상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평소의 나였으면 오그라들었을 텐데, 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답은 콩깍지였다.     



1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건 아마도 갑분뮤, 갑자기 분위기 뮤지컬이었을 것이다. 한 장소도 아니고 마트, PC방, 찜질방, 문화센터 등 각 곳에서 펼쳐지는 댄스 타임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펼쳐진다. 평소 같았으면 손이 자연스럽게 말려 들어갔을 것이고, 눈을 질끈 감았을지도 모르며, 어쩌면 10초 뒤 버튼을 눌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교적 덤덤하게 봤다. 강단이가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회사에 지원했으며, 현재 그녀는 어떤 처지인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동안 생계유지는 어떻게 했는지 등에 대하여 빠르고 재밌게 알려주는구나! 라며 그 와중에도 좋은 점을 찾고서는 넘어갔다. (아마 평소 나의 취향을 아는 자들은 가히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일 것이다)




‘존중할 줄 알고, 존중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나의 가치관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동안 존중하는 척만 했지, 제대로 존중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어떤 장면, 대사, 연기 등을 보고 나와 너무나도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을 보며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지만, 의아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콩깍지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대단한 존재인지 생애 처음으로 실감하니, 저절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나에겐 별로였어도 누군가에겐 최고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콩깍지에 기반한 것이든, 아니든 말이다. 우리 모두 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타인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음이다. 그러니 좀 더 솔직해지자. 조금은 더 드러내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 오그라든다고 해도 어쩔 것인가.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나는 오늘 밤에도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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