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베이지 Feb 03. 2018

라오스 여행기; 프롤로그.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1. 

진부한 얘기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엔 비데는 물론이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과 백미당 아이스크림이 있으니까. 진부한 얘기 둘. 하지만 행복은 역시 소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진 것은 때론 짐이나 상실이 될 뿐이었다. 미니 밴에서 누군가 훔쳐간 지갑처럼. 나는 3일을 멘붕했다.





2. 

라오스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웃을 때 덧니를 가릴 줄 모른다. 잃을 것 없이 까득대는 그 미소들을 마주하면 여느 연예인의 라미네이트보다도 반짝이는 구석이 있어서 보는 사람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다.





3. 

이제 돌아가면 좋을 일이라곤 나얼의 새 정규앨범 발매일뿐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라오스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이미 7박 8일의 일탈에서 여유보다는 불안함을 느끼는 한국인이고, 일단 카약을 타면 선크림부터 바르고 사진을 찍어둬야하는 미혼남이기 때문입니다. 얼굴 맞대고 구글 번역기로 나눈 대화들도 좋았지만 차라리 메가박스의 한국어자막이 편하고, 알싸한 고수 향도 좋지만 역시 김치와 된장국이 더 낫겠다.






4.

그리고 그 익숙함은 차라리 불행이다. 차라리 그 익숙함을 몰랐다면, 그리고 정녕 행복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편리함이나 황금과 성공에 있는 게 아니라 차라리 라오비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라오스에 내 행복을 자랑하려 들었지만, 쌀국수를 앞에 두고 둥글게 모인 가족들을 보고선 역시 많이 슬펐다. 그곳엔 우리에겐 이미 퇴화되어 사라진 감정들이 있었다. 한땐 하루종일 그네만 타도 즐거울 수 있었는데. 술에 취하지 않고도, 알지도 못하는 여자들과 번호를 주고 받지 않고도, 해가 질 때까지 손톱에 한가득 흙이 끼도록 놀 수 있었는데.






5. 

그래서 라오스에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대체 라오스에 뭐가 있냐는 질문에 씁쓸히 미소만 띄울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라오스엔 산토리니의 풍광도 없고 아이슬란드의 거대함도 없다. 심지어 귀한 시간과 유류할증료와 많은 기회들을 메콩 강에 고스란히 버리고 온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동안 여행을 오해하고 있던 건 아닐까. 여행은 무언갈 얻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무언갈 두고 오기 위해 개인이 낼 수 있는 용기같은 게 아닐까.








6. 

나도 별 수 없이 돌아와 다시금 내가 탄 카약의 노를 저어야 하지만 언젠가 잠깐 노를 두고 누워 바라본 방비엥의 맑은 하늘과, 카약을 종이배처럼 유유히 흘려보내던 메콩 강물과, 옆구리에서 바삭대며 머물던 햇살과, 친구들과 나눠 가진 장면들은 뭐랄까, 대체 왜 라오스같은 곳에 가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조금은..


여하튼 라오스 여행기를 시작합니다. 컵짜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