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선물로 과학책은 어떠세요?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군요. 오늘 제가 소개할 신간은 <열한 번의 생물학 여행>.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 열한 편을 수록한 책입니다. 왕립연구소부터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왕립학회를 알게 된 건 빌 브라이슨이 편집을 맡았던 <거인들의 생각과 힘>이란 책이었어요. 왕립학회가 창립된 지도 350년이 훌쩍 지났다고 하죠. 웃지 못할 헤프닝들도 많았지만 왕립학회에서 비롯된 지식들이 현재 과학사를 이루는 근간이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열한 번의 생물학 여행>은 그러한 왕립연구소의 연례행사로 굳어진, 200년간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 중에서도 최고의 강연 11편만을 엄선하여 엮은 책이에요. 한 가지 과학 주제를 선정하고, 그 분야 최고의 석학이 강의를 하게 되는데요. 연말에 BBC에서 특집으로 방송으로 다루는 걸출한 행사랄까요.
11편에 수록된 저자로는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 <털 없는 원숭이>로 역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도 포함돼 있습니다. 강의를 그대로 옮겨 온 책은 아니고요. 엮은 이가 11편의 강의를 관찰자 시점에서 서간체로 풀어내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가독성이 굉장히 좋은 편이고, 강의를 옮겨 온 것이다보니 시종 강렬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사진자료들을 넉넉하게 포함하고 있다보니 페이지가 후루룩 넘어가는 맛도 있어요. 생물학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사실상 테마는 동물학이나 생태학에 가깝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수 하틀러의 '3억 년 동안의 전쟁'에서는 동물과 식물 사이의 전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생태계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는 문장들은 그 자체로도,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함의가 클 것입니다.
생태터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우회망을 만들어놓고는, 그마저 1년이라는 짧은 통계수치를 들이밀며, "개체수가 유지되고 있지 않느냐"는 소위 전문가들의 양심을 개탄합니다. 우리가 잊은 지도 모르고 잊은... 도도의 노래를 다시금 떠올려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많은 생태학자들의 노력들이 반짝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오늘 소개드릴 책처럼, 대중일반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이 기반을 잘 다져준다면, 후에 학자들이 생태계에 관한 목소리를 높이게 될 날이 올 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1825년 런던에서 시작된 이 강연들의 대상은 일반 대중과 젊은이들. 목적은 자연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기. 그 작은 출발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전 세계에서 과학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되었어요. 희망의 메시지이자, 경고의 목소리이기도 한 11편의 강의들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책입니다. 실제로 데이비드 에튼버러는 강의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혹등고래의 노랫소리를 들려주었는데요. 이것은 범대중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여 고래 보호 운동으로 이어지게 됐고, 상업적인 고래 사냥을 중단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래 개체군들을 강의 하나가 살려낸 것이죠. 강의라는 컨텐츠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생태계와 생물학 전반에 관해서 뜨거운 마음을 가지신 분들께 특히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