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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베이지 Mar 11. 2016

[영화평] 인터스텔라; 인간의 덧없음과 위대함.

양립하기 힘든 두 단어를 솜씨 좋게 버무리다.






1.



사실 감히 리뷰를 쓰기도 겁이 나요.


쏟아지는 찬사들에 도리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터스텔라는 그 무게를 충분히 이겨낼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작고, 또 작은 존재인지.

그 작디 작은 우리가 맺는 가족의 힘은

하나의 차원을 넘어설 만큼, 또 어찌나 강력한 것인지.







인터스텔라는 그 거대함을, SF를 소재삼아 우아하게 펼쳐냅니다.











▲ 다크 나이트와 인셉션을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후속작, 인터스텔라.













2.



'다크 나이트'와 '인셉션'이라는 역작을 만들어 낸 크리스토퍼 놀란의 후속작, 인터스텔라는


인간의 덧없음과 위대함이라는, 한 데 섞이기 힘든 단어들을 동시에, 우아하게 버무려내요.






최신 이론들을 상상력으로 구현해 낸 부분은 대작 SF 영화답게 유려했고,


그 과정에서 이론에 대한 이해 없이도 큰 무리 없이 인물들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촘촘하게 체를 쳐 놓습니다.







특히 웜 홀 (worm hole) 이라던가 블랙 홀 (Black hole) 같은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에서,


그 당위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캐릭터를 설정해 놓은 점은, 기립박수를 쳐 주고 싶어요.


전문이론이 필요한 부분을 영화 속에서 방백처럼 알려주는 방식들은, 


대개는 촌스럽고 큰 이질감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인터스텔라는 순도 높은 SF 영화임에도


이러한 디테일들을 세련된 방법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3. 



이러한 완벽함은 SF 특유의 영상미라던가 하는 미학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고,


주제의식같은 구성적인 측면까지, 흠잡을 데 없이 점철돼요.


어느 인물 하나 허투루 쓰이는 곳 없고, 어느 플롯 하나 의미없는 장면이 없습니다.


놀라운 개연성과 회수율입니다. 일례로,


작품 중간 에드워드를 찾는 앤 헤서웨이의 모습에서 많은 관객들이 탄식을 뱉었더랬죠.






"지금껏 잘해내오다가 여기서 어줍잖은 러브라인이라니!"








물론 얼마 가지 못해, 저의 그 어리석고 성급한 추측을 두 손 모아 반성하게 되었지만 말이에요.


그 플롯이 후에 결말에서 멋지게 회수되는 장면에선 스스로가 어찌나 창피하던지요.


이렇듯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그 물줄기를 다시 낚아채,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는


놀란의 힘은 제겐 절망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했어요. 


위대합니다. 칭찬을 아낄 필요가 없어요.

















4.



처음엔 사실 퍽이나 지루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표를 끊었어요.


워낙 평들이 찬란했고 이미 소재 자체가 


위기와 절정을 유연하게 다루기에는 버거울 거라는 편견이 있었지요.

심지어 관람하는 도중에도,


 "이걸로 대체 어떤 결말을 낼 수 있을까"

"지금껏 잘 풀어온 결을 어떻게 유지해서, 한방을 둘 것인가"


하고는 제 몫이 아닌 걱정을 했어요.


3시간 가량의 꽤나 긴 러닝타임이 끝난 후에야 


팝콘과 콜라를 담은 비닐봉지에, 저의 오만도 함께  꽁꽁 묶어 버리게 됐지요.






















5.




인터스텔라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굉장히 거시적인 관점으로,


아니, 아예 다른 차원에서 제공합니다.







우리 몸의 수많은 '세포'들이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며,


스스로를 찢고 또 찢어 우리의 몸을 구성해내잖아요.


그런 우리는 저마다의 '세포'들의 배경이나 사연에는 아랑곳 않고, 


목적에 따라서는 괴사 (necrosis) 시켜버리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듯이.


우리 개개인도 우주의 관점에서는 그런 '세포'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거예요.










너무도 억울하게 느껴지는 불공평함과,


때로는 너무도 정직한 결과물들은


얼마나 우리를 울게 했고, 때론 눈물나게 행복하도록 했나요.










그처럼 작고 약한 인간이지만,


개인이라는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게 손을 잡아 이뤄낸 우리 인류는, 


또 얼마나 강한지요.











지금껏 제가 경험한 그 모든 부조리와 비합리도 문득,


오만한 나의 기준에서의 판단에 불과하고, 시점을 저 위로 가져다두었을 땐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다는.


종교적이기까지 한 그 거대함은 저에겐 큰 치유로 다가왔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구나"











때론 연인과의 헤어짐부터,


사소하게는 지하철에서 발을 밟히는 것,


혹은 친인척의 급작스러운 죽음까지.









또 때로는 진흙 속에서 꽃이 피어나듯,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에야 샘솟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에너지와,  


그것이 끝내 짙었던 패색을 걷어내는 순간들과,


어느 비오는 날,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대파를 사러 가는 길의 


아스팔트 냄새로 비롯되는 작은 행복까지. 











그 모든 감정선이 저 위의 어느 전지적인 시점에선,


그저 '세포'같은 것이구나 하구요.


















6.



멋진 영화예요. 만이천원이 아니라 십이만원이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영화관을 나서면서는 벌써 3시간이 지났다는 사실과


온전히 숨을 내쉬고 있는 이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네요.







새삼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살에 닿게 느껴봅니다.








예, 우리는 이겨내지 못할 겁니다.


그럼 뭐 어때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덧없는 우리가 어쩌면 우주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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