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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아녜스 8시간전

이 더운 날에 엄마는

생일맞이 엄마 추억하기

내 생일을 맞아 3년만에 페이스북에 로그인을 해봤다. 엄마에게 문득 페이스북 메세지를 보내고 싶어서다. 생일이 되니 엄마 생각이 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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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집에서 간만에 잠을 아주 잘 자다가 꿈에 엄마가 나왔다. 꿈 속에서는 엄마가 죽은 줄 모르는 상태였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가 '재은아~'하고 나를 부르는 거다. 항상 그랬듯이..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를 평소에 '재은아~'하고 끝을 다정히 늘어뜨려 불러주지 않는다. 거의 유재은! 야! 언니! 누나! 유잰! 아녜스! 이렇게 부를 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1초만에 '아,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구나' 자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정말 너무도 오랜만에 듣는, 나를 부르던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눈물을 좔좔좔 흘리며 잠에서 깨버렸다. 깨고 나니까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면 엄마랑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는데 바보같이 그게 꿈인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내가 등신같았다. 엄마가 왜 나왔을까. 집들이 하자고 연락하려던 것이었을까. 생일 전이라 미리 와봤나. 엄마가 다시 나와줬으면 좋겠다. 돌이켜보건대 엄마꿈은 늘 비디오 뿐이고 오디오는 없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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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태어난 주제에 더위를 못 견딘다. '이렇게나 더운 날에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나를 낳고, 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때까지 얼마나 애지중지 나를 길렀을까.' 이 문장은 나름의 효심을 담고 있긴 하지만,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는 어버이날 편지에 자식된 도리로 으레 적는 상투적인 표현같은 거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 기억 때문에 이게 정말로 나를 괴롭게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날, 엄마와 나 둘 뿐이었던 병실 침대에서 엄마가 나를 옆에 누워보라고 불렀다. 그 때 엄마는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해서 바싹 마르고, 입 근육의 움직임도 방해될 정도로 암세포가 전이되어서 말을 잘 못하셨는데, 그런 엄마가 침대에 옆으로 돌아누워 '내 새끼'하고 엄마 옆에 누운 나를 끌어안아줬다. 아무도 모를 엄마와 나만의 기억이다. 내 등에 닿던 엄마손의 느낌이 생생하다. 너무도 강하게 감정이 휘몰아친 순간이라, 지금도 그 순간이 하나 하나 그려진다. 엄마 새끼를 두고 가야만 하는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나를 정말 잘 키워주셨는데. 나라면 나를 이렇게 못 키웠을 것 같은데. '이렇게나 더운 날에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나를 낳고, 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때까지 얼마나 애지중지 나를 길렀'길래 나한테 그러고 떠났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사람들이 내 지인들이 되니, 문득 엄마의 젊은 시절, 육아난이도 헬이었을 나의 모습과, 엄마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 중 내가 지금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겹쳐 보이며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배가 된다. 절대로 옅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들이 그냥 더 구체화가 될 뿐이다. 이건 이래서 엄마가 어땠겠구나, 엄마의 감정이 더 생생하게 그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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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미안하고 엄마가 밉고 엄마가 보고 싶다.

우리 엄마는 내 페이스북 보는 걸 좋아했다. 댓글도 하나하나 다 봤다. 그러니까 이것도 볼 거 같다는 추론이다.


사랑하는 엄마

더운 날에 너무 고생이 많으셨어요

덥지만 잘 지낼게 엄마도 잘 지내고 나중에 보자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고마운 분들도 이 여름 잘 보내시기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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