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어 부흥과 러시아어 퇴조 사이
1. 들어가며: 130개 민족이 빚어낸 언어 지형
우즈베키스탄은 인구 약 3,700만 명(2025년 기준)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 중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다. 위키백과(2026년 1월 갱신)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130개가 넘는 민족이 거주하며, 우즈베크인이 공식 통계상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타지크인(4.9%), 카자흐인(2.4%), 카라칼팍인(2.2%), 러시아인(2.1%), 고려인(0.5%)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언어 분포는 이 민족 지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나무위키 '우즈베키스탄/언어' 항목에 따르면 우즈베크어 74.4%, 러시아어 14.2%, 기타 언어(타지크어·카자흐어·투르크멘어 등) 4.4% 순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각 언어가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의 차이다. 우즈벡어가 공용어이자 가정·일상의 언어라면, 러시아어는 도시·비즈니스·고등교육의 언어이고, 영어는 국제 무대를 향한 청년층의 열망을 담은 언어다.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유승만(2009)은 이 상황을 '언어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로 정의했다.
우즈벡어가 공식적 지위를 확보했지만 현실에서 러시아어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채 경합하는 이중 언어 사회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2026년의 우즈베키스탄은 여기에 영어·한국어·중국어와 디지털 언어 공간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더해지며 더욱 복잡한 다층적 언어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세 번의 문자 대전환
가. 아랍에서 라틴으로, 다시 키릴로
우즈베키스탄의 문자 역사는 정치권력의 변동과 함께 세 차례 대전환을 겪었다. 세계한민족문화대전(OKpedia)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소비에트 연방은 1924년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기존의 투르키스탄·부하라·호레즘을 폐지하고 민족 국가를 인위적으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타지크 문화의 중심지인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우즈베키스탄 영토에 편입되어, 이후 민족·언어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1928년 아랍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의 첫 전환이 이루어졌고, 1938~1940년에는 소련의 언어 통일 정책에 따라 다시 키릴 문자로 교체되었다. 위키백과 '우즈베크어' 항목(2025년 12월 갱신)에 따르면, 이 시기 러시아어 교육이 모든 비러시아어 학교에서 의무화되면서 러시아어는 행정·교육의 지배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어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엘리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정치의 언어이자 힘과 지성의 언어였다. 법과 과학이 이 언어로 만들어지고, 토론이 방영되고, 학교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에 반해 우즈베크어는 가정과 일상, 드라마와 거리, 찻집의 언어로 명맥을 이어온 것이 사실이다. — EBS 박미희 글로벌 리포터
나. 1991년 독립과 세 번째 전환
1991년 독립 후 민족주의 기치를 내건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1993년 다시 라틴 문자 체계로의 전환을 법제화했다. 캐스피안정책센터(Caspian Policy Center)에 따르면, 2020년 10월 21일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라틴 문자 전환 가속화를 위한 대통령령에 서명하고 3개월 내에 전환 계획을 수립할 실무 그룹을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전환 완료 목표 시한은 2000년, 2005년, 2010년으로 세 차례 연기된 끝에 2026년 현재까지도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나무위키 '우즈베크어' 항목은 라틴 문자 전환 실패의 기술적 원인도 지적한다. 1990년대 도입된 라틴 문자 체계가 1음운 1기호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이중음자(sh, ch 등)를 채택하면서 언어학적 경제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ЦЕХ(공장)'가 라틴 표기로 'SEX'가 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기술적 결함이 쌓이면서 사회적 저항도 커졌고, The Lingua Spectrum(2025년 3월)은 이를 '키릴 문자가 공식 출판물에서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3. 우즈벡어 부흥 정책: 성과와 한계
가. 주요 정책 흐름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단계적으로 우즈벡어 사용을 의무화해 왔다. 세계한민족문화대전에 따르면 2004년부터 모든 공식 서류가 100% 우즈벡어로만 발행되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국가 언어로서의 우즈베크어의 역할과 권위 근본적 개선 조치' 대통령령이 발표되었고, 2020년에는 총리가 의회 연설에서 민족주의적 어조로 우즈벡어 수호를 강조하기도 했다.
캐스피안정책센터 보고에 따르면 2020년 대통령령은 구체적 수치 목표를 담고 있다.
" 2030년까지 유치원생의 80%가 우즈벡어를 구사하도록 한다.
" 학교의 우즈벡어 수업 시간을 주당 84시간에서 110시간으로 늘린다.
" 전국 고등교육기관의 우즈벡어학과를 140개로 확대한다.
" 2021년 4월까지 모든 정부 공무원이 우즈벡어 자격 인증을 취득하도록 의무화한다.
" 매년 10월 21일을 '우즈벡어의 날'로 지정한다.
나. 현실과의 격차
그러나 정책과 현실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EBS 현지 보도에 따르면 1995년 제정된 '국가 공식 언어에 대한 법' 제20항은 광고·표지판·메뉴판을 반드시 우즈벡어로 표기하도록 규정했지만, 수도 타슈켄트를 비롯한 도시에서는 러시아어 간판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CABAR.asia 분석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의회 상원의장이 2018년 12월 '국가 언어법 이행이 방치되고 있다'고 직접 시인하기도 했다.
학술지 INContext(2022, 나르마토바·압두라흐마노바)는 구조적 원인을 진단한다.
이 연구는 또한 라틴 문자의 단계적 도입이 두 문자 체계의 병존을 낳았고, 청년층의 우즈벡어 문자 해독력이 오히려 저하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고위 공무원들이 대부분 러시아어로 교육받고 소련 체제에서 경력을 쌓아 국어가 서툰 것도 정책 이행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4. 교육 현장의 언어 지형: 학교와 대학의 이중 구조
가. 학교 교육: 우즈벡어반 vs. 러시아어반
우즈베키스탄 학교 교육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업 언어의 이중 트랙이다. The Lingua Spectrum(2025년 3월)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1992년 교육법은 부모에게 자녀의 수업 언어 선택권을 부여했고, 우즈벡어가 표준 수업 언어이지만 러시아어를 비롯한 공인 언어로도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규정했다. 독립 직후인 1998~99년에는 일반 학교 학생의 76.8%가 우즈벡어로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이 비율이 현재도 유지되는지는 불분명하다. Times of Central Asia(2025년 7월)가 보도한 러시아 외무부 발주 연구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는 현재 1,000개 이상의 학교가 러시아어 수업 또는 이중 언어(우즈벡어·러시아어)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학교에서 러시아어가 주당 2시간 수준에 불과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같은 보고서는 러시아어 학습 동기가 문화적 친연감보다는 '러시아 대학 진학이나 러시아 기업 취업'이라는 실용적 목적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국제교육개발 기관 Global Services in Education(2024년 10월)은 새로운 흐름을 전한다. 도시 학부모들 사이에서 IB(국제 바칼로레아)·케임브리지 국제 과정을 제공하는 국제학교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영어 이중 언어 교육이 '글로벌 기회의 관문'으로 인식되면서 국제학교 개설이 유망 사업 분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특히 타슈켄트·사마르칸트 등 도시에서 이 흐름이 두드러진다.
■ 학교 수업 언어 현황
• 우즈벡어 수업 학생 비율: 약 70~77% (독립 직후 76.8% 이후 완만히 증가 추세)
• 러시아어 수업 또는 병행 학교 수: 1,000개 이상
• 러시아어 수업 시수: 대부분 학교에서 주당 2시간 수준 (수요 대비 부족)
• 한국어 채택 학교: 99개교 (타슈켄트 한국교육원, 2024년 1월 기준)
• 고등교육기관 수: 222개 (2024/25 학년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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