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독립 이후의 격변과 세 갈래의 선택
# 들어가며: 붕괴의 충격파
1991년 12월 25일, 소련의 적기가 크렘린 궁에서 내려졌다. 그 순간,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은 각각 독립을 맞이했다. 그러나 독립의 감격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지 않았다. 특히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시점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고 대다수가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해 한국으로 귀환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가 해체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존재들이었다.
고려인은 19세기 말부터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한민족의 후손들이다. 1937년 소련 정부는 연해주에서 살아가던 고려인 18만 명을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으로 강제이주하기로 결정했다. 일본과의 전쟁이 예상되던 시점에서 외견상 구별되지 않는 고려인들은 일본의 간첩으로 간주될 만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강제이주 과정에서 1만 1천 명이 사망하였다. 이처럼 이미 한 번의 강제이주를 경험한 고려인들에게 54년 만에 찾아온 소련의 붕괴는 또 다른 실존적 갈림길이었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였으며, 2002년 기준으로는 약 470,000명의 고려인이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며, 그 중 198,000명이 우즈베키스탄에, 125,000명이 러시아, 105,000명이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었다. 이 방대한 디아스포라 집단은 소련 붕괴 이후 크게 세 갈래의 선택 앞에 서게 된다. 러시아로의 이주, 한국으로의 귀환, 그리고 현지 정착이 그것이다.
# 위기 1: 민족주의의 부상과 이방인이 된 고려인
소련이 해체되자 중앙아시아 각국에서는 억눌려 있던 민족주의가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소련 체제 아래 '소비에트 시민'으로 균일하게 묶여 있던 사람들이 이제 카자흐인, 우즈베크인, 타지크인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국가 공식 언어가 러시아어에서 각 민족어로 바뀌었고, 공직과 교육 현장에서 현지 민족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중앙아시아 각국이 독립한 이후에 나타난 가장 큰 문제는 이슬람의 발흥과 민족주의의 대두였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각 지역의 분쟁이 발생하였고 수만 명의 고려인이 난민이 되었다. 강제 이주되어서 70년 이상 살아온 터전에서 고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타지키스탄의 경우가 극단적이었다. 타지키스탄은 독립 직후의 내전으로 인하여 기존의 1만 명 이상의 고려인들이 타 국가로 이주해 나갔기 때문에 2014년 기준으로 불과 2천여 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타지키스탄 내전은 고려인 공동체를 사실상 붕괴시켰다.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접경 지역의 페르가나 분지에서도 민족 분쟁이 끊이지 않아 고려인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더욱이 소련 붕괴는 법적 공백이라는 또 다른 위기를 낳았다. 구소련의 구성 공화국들이 독립 이후에 소련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국적을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이를 몰랐거나, 서류를 분실하거나, 거주자로 등록하지 않았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등으로 신청하지 못한 이들이 무국적자가 되었다. 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기본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이익은 그 자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구소련 지역에는 현재 전체 고려인의 10%에 해당하는 약 5만의 무국적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첫 번째 선택: 러시아로 떠난 고려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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