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Кореец), 그들은 누구인가

고려인의 민족 정체성 재정의

by Miracle Park

# 1. '카레이스키'라는 호칭, 그 복잡한 이름의 무게


"당신은 카레이스키입니까, 아니면 한국인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대부분 잠시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는 160년이 넘는 이주와 추방, 동화와 저항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


한국에서 고려인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카레이스키(Коре́йский)'는 엄밀히 따지면 러시아어에서 '한국의', '한국인의', '한민족의'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남성 단수 명사인 '까레이츠(Коре́ец)', 여성형은 '까리얀커(Корея́нка)'이며, 총칭으로는 복수형 '까레이치(Корейцы)'가 쓰인다. 이 사소해 보이는 언어적 혼선은, 사실 고려인의 정체성이 외부 시선에 의해 얼마나 부정확하게 규정되어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려인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이라 명명하는데, 이 호칭 속에서 '조선(朝鮮)'이나 '한국(韓國)'이 아닌 '고려(高麗)'라는 중립적 표현을 택한 것은, 한반도의 분열이 낳은 특수한 역사의 산물이다. 한국이라 하면 남한을 연상시키고, 조선이라 하면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냉전의 이분법 속에서, 고려인들은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정체성을 직접 명명해야 했다.


고려인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Корё сарам)'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들이 연해주의 조선인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한국인과도 구별되는 별개의 공동체로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고려인의 정체성 문제는 단순한 민족 귀속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경험이 만들어낸 독자적 집단 정체성의 문제임이 드러난다.


# 2. 강제이주가 새긴 정체성의 균열: 1937년의 상처

고려인 정체성의 원점은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탈린 정부는 조선인들의 인구 증가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1937년 9월부터 11월까지 단 두 달 만에 3만 6,442가구 총 17만 1,781명을 극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주 과정에서 약 1만 1,000명이 사망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해 보니 집도 풀도 나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으며, 수만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불굴의 의지로 혹독한 환경에서 버텨냈고,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옥토를 일구어냈다.


강제 이주는 고려인들이 가지고 있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뒤흔들어 놓았으며,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후 세대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스탈린은 고려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한국어 사용과 교육을 금지했고 학교 설립마저 막았으며, 통혼과 혼혈 동화를 강권했다. 국가 권력에 의해 강요된 이 정체성 말살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고려인들 내부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저항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고려인들은 소련 공산당의 검열과 같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해조신문'(1908), '선봉'(1923), '레닌기치'(1938) 등 한글 신문을 계속 발간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레닌기치' 신문을 '고려일보'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는 이주 120년 만에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 3. '유라시안 코리안 문화'의 탄생: 경계 위에서 만들어진 정체성

고려인의 문화는 어느 하나의 전통에 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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