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디아스포라의 현재 분포
1. 프롤로그: 열차에 실린 민족
1937년 9월, 스탈린의 명령 한 장이 중앙아시아의 지도를 바꿨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2,481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황무지로 내던져졌다. 강제 이주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주민들은 협력해 관개 시설을 설치하고 벼농사를 시작하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삶의 방식을 회복했다. 그로부터 90년 가까이 흐른 2026년, 그 후손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남부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부근, 캅카스, 남부 우크라이나에도 많은 고려인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이 글은 그 50만 디아스포라 중에서도 중앙아시아 5개국, 즉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에 뿌리내린 고려인들의 인구 현황을 2026년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심층 분석한다.
2. 5개국 분포 현황: 양대 거점과 주변 소수국
:우즈베키스탄 — 최대 거점, 그러나 흔들리는 중심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는 31만여 명의 고려인 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우즈베키스탄에 17만 2천여 명이 살고 있다. 이는 중앙아시아 5개국 전체 고려인의 절반을 훌쩍 넘는 수치다. 우즈베키스탄의 민족 구성에서 고려인은 전체 인구의 0.7%를 차지한다.
그런데 역사적 흐름을 보면 수치의 이면이 드러난다. 1989년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 고려인 인구는 183,140명이었으나, 2017년에는 176,900명으로 감소했다. 1989년부터 2026년까지 37년 사이에 고려인 인구가 6,000명 이상 줄어든 셈이다. 소련 해체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의 이주가 가속된 결과다. 소련 붕괴 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상당수가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지리적 특징은 분산성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농촌 지역에 넓게 흩어져 있다. 수도 타슈켄트를 중심으로 일부 도시 집중이 있지만, 카자흐스탄에 비해 농촌 분산형 거주 패턴이 뚜렷하다. 강제 이주 당시 광활한 농지를 개간해 집단농장(콜호스)을 운영했던 역사적 배경이 주거 패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 문화 수도 알마티, 고려인의 심장부
카자흐스탄에는 약 12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의 0.6%를 차지한다.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 집중 현상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문화는 이전의 수도였던 알마티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 신문(고려일보)과 한국어 극장(고려극장)이 운영된다. 알마티에는 4만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해 카자흐스탄 내 최대 고려인 집중 거주지다. 카자흐스탄 전체 고려인 12만 명 가운데 3분의 1이 알마티 한 도시에 몰려 사는 것이다.
인구 추세를 보면 카자흐스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카자흐스탄의 인구 조사에서는 1939년 96,500명의 고려인이 기록되었고, 1959년에는 74,000명, 1970년에는 81,600명, 1989년에는 100,700명, 1999년에는 99,700명이었다. 1990년대 독립 직후 소폭 감소했다가, 이후 12만 명 안팎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온 셈이다. 고려일보, 고려극장 등 문화 인프라가 구심점 역할을 해 온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2024년 12월, KBS '동네 한 바퀴'가 알마티를 찾았다. 100년 역사의 젤레니 바자르 시장에는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김밥과 김치 등 한국 반찬 가게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어는 서툴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김밥을 만드는 고려인 3세 박 폴리나 씨처럼, 60~80대 고려인 2세들로 구성된 비단길 합창단은 한국 노래를 부르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문화는 남아 있지만 언어는 희미해져 가는 현실이 방송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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