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농식품 산업의 고려인
# 1. 황무지에서 꽃핀 신화: 강제이주와 콜호즈의 기적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이 서명한 소련 인민위원회 결정 제1428-326cc호 하나가 연해주 고려인 17만 명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소련 당국은 일본의 간첩 활동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극동 지역에 거주하던 모든 고려인을 카자흐 공화국 및 우즈베크 공화국 등지로 강제이주시켰다.
사전 통보는 3~7일에 불과했고, 강제이주 결과 172,481명이 우즈베키스탄(76,526명)과 카자흐스탄(95,256명)으로 이주당했으며, 이주 과정에서 수백 명 이상이 기차 안에서 숨졌다.
도착한 땅은 절망 그 자체였다.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열차를 타고 도착했던 중앙아시아는 갈대와 늪으로 뒤덮인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러나 살아야 했기에, 이들은 갈대를 베어내고 수로를 만들어 불모지를 개간하고 벼와 밀, 목화 등을 심었다. 겨울 녘 중앙아시아의 꽁꽁 언 땅을 손끝으로 파헤쳐 굴을 파고 농사를 지어야 했다는 증언이 여럿 남아 있고, 강제이주 후 첫 번째 겨울에 많은 노인과 영아들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고려인들은 불굴의 의지로 집단농장(콜호즈)을 일구어냈다. 고려인 콜호즈는 1939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모두 61개가 만들어졌으며, 현지 콜호즈보다 생산량에서 월등해 김병화·황만금·김만삼 등 많은 노력영웅들을 배출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인근의 북극성 콜호즈였다. 북극성 콜호즈는 김병화를 지도자로 영입한 후 다민족 공동체로 발전했으며, 1940년대부터 면화를 시험 재배한 뒤 초창기 작물이었던 벼와 함께 면화를 재배해 생산량을 꾸준히 늘렸다. 김병화는 1949년과 1951년에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고려인들은 잘 짜인 노동 조직과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바탕으로 당시 소련 평균보다 훨씬 많은 식량 생산을 기록했고, 소련 평균보다 높은 1헥타르 당 30첸트네르씩 목화 수확을 올렸다. 소련 시대 전체를 통틀어 '사회주의 노동영웅' 훈장을 두 차례 수여받은 고려인은 김병화가 유일하다.
그러나 영광은 소련과 함께 저물었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자 콜호즈 체제의 붕괴와 이농 현상, 급속한 공업화 진전으로 북극성 콜호즈는 그 중요성을 잃어갔고, 현재 콜호즈 입구에는 김병화 개인 박물관이 남아있을 뿐이며 소수의 고려인들이 마을 공동체에 거주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 2. 소련 붕괴 이후의 전환: 집단농장에서 민간 자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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