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의 고려인

없는 듯 있는 네트워크, 보이지 않는 경제 지형

by Miracle Park

# 1. 들어가며: 코리안타운이 없는 곳에 한민족이 산다

알마티 시내를 걷다 보면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나 미국의 코리아타운 같은 뚜렷한 집거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글 간판이 줄지어 있는 골목도, 한국 식당이 모인 블록도 없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최대 경제 도시 알마티에는 약 90년에 걸쳐 현지 주류 사회에 깊이 편입된 한민족 공동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2025년 기준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 약 2,059만 명 중 고려인은 전체의 0.6%를 차지하며, 총인구 구성 130여 개 민족 중 하나로 등록돼 있다. 숫자만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질적 무게는 인구 비중을 훨씬 초과한다.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고려인 인구는 2009년 100,385명, 2014년 105,400명, 2020년 108,551명, 2022년 기준 107,569명으로, 카자흐스탄 내 다른 비무슬림 민족 집단에 비해 별다른 감소가 없다. 이는 카자흐스탄 고려인이 한국 이주보다 현지 정착을 선택해 왔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 2. 뿌리: 1937년 강제이주와 척박한 땅에 세운 학교

고려인의 카자흐스탄 정착은 자발적 이민이 아닌 국가폭력의 산물이다. 1937년 소련 정부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8만 명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일본과의 전쟁을 앞두고 고려인을 잠재적 간첩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강제이주 결과 고려인 172,481명이 중앙아시아로 이주하게 됐고, 카자흐스탄에는 95,256명이 배치됐다.


1937년 9월 처음으로 이주민을 실은 열차가 카자흐스탄에 도착했을 때 마침 겨울이 시작되던 때라 고초는 막심했고, 추위와 홍역 등 질병으로 어린이의 60%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려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강제이주 세대 선배들은 첫 해 겨울을 토굴에서 지낸 뒤, 이른 봄이 되자 자식들을 가르치려는 일념으로 가장 먼저 학교를 지었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집을 지었다. 교육 우선주의는 이후 고려인 경제 도약의 토대가 됐다.


소련 전체 인구의 0.2%밖에 안 되는 고려인이 전 소련 노력영웅의 16.7%(전체 1,200여 명 중 고려인 200여 명)나 배출했다. 중앙아시아 척박한 대초원을 옥토로 바꾼 이 농업적 성취는 소련 당국도 인정한 실적이었다.


# 3. 도시화와 탈농업: 알마티로 향한 고려인

소련 해체 이후 고려인의 경제 지형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소련 내 국가 간 유통망의 붕괴와 인플레이션으로 고려인 경제활동의 보루였던 협동농장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평생 농업에만 종사하던 고려인들이 도시로 나가 살길을 모색했다. 현재 70% 이상의 고려인이 도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마티는 고려인 도시화의 구심점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문화는 이전의 수도였던 알마티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 신문(고려일보)과 한국어 극장(고려극장)이 운영된다. 이 두 기관은 단순한 문화 시설이 아니라 알마티 고려인 네트워크의 거점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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