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이주 고려인의 한국 정착 실태
1. 역이주의 배경: 누가, 왜 오는가
고려인(高麗人, 코료사람·Корё-сарам)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연해주로 이주한 한반도 출신 민족의 후손이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이 이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이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러시아 등지에서 뿌리를 내렸다. 소련 해체(1991년) 이후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고려인들은 다시 새로운 이동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들이 '조상의 땅'인 한국으로 향한 것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외교부 『2023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 재외동포는 총 181개국 약 708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이 중 구소련권 고려인은 약 50만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65만 783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 중 고려인을 포함한 CIS(독립국가연합) 출신 재외동포의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 비자 제도의 구조와 한계
한국으로 들어오는 고려인들이 주로 활용하는 비자는 크게 두 종류다. 방문취업(H-2) 비자는 중국·러시아·CIS 지역 동포에게 적용되며 취업 가능 업종이 제한된다. 재외동포(F-4) 비자는 경제활동이 비교적 자유롭고 3년 단위 체류·연장이 가능하다.
2019년 7월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으로 4세대 이후 고려인도 '직계비속' 규정에 따라 재외동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류 입증의 어려움이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다. 실제 사례를 보면, 러시아 국적의 A씨는 할머니가 고려인임을 근거로 F-4 비자를 신청했으나, 출생증명서의 조부와 부친 이름이 동일하게 기재되어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허 처분을 받았다.
부모가 부랴트인으로 등록되어 있어 고려인 직계비속 여부를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구소련 문서 체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 처리는 적법한 신청자들에게도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재외한인학회·전남대 법학연구소 공익인권센터 학술세미나(2024.11)>에서는 H-2 비자가 "태생적으로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 제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구 선진국 거주 재외동포에게는 일괄 부여하는 F-4 비자를, 중국동포·CIS 출신 고려인에게만 H-2로 제한해 왔다는 것이다.
2024년 법무부가 비자 통합 및 취업 가능 범위 확대를 발표하면서 일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연구자들은 F-4 소지자에게 남아있는 단순노무 분야 취업 제한도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 언어 장벽: 동포이되 이방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장벽은 언어다. 이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러시아어이며, '고려말'이라 불리는 전통 방언을 구사하는 세대는 노인층에 한정된다. 젊은 고려인들 상당수는 한국어는 물론 고려말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입국한다.
광주 고려인마을·안산 땟골마을 등 고려인 집거지 거주자들은 한국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취업·의료·행정 서비스 접근에 반복적인 불이익을 경험한다. 언어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도 안전사고 위험으로 직결된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한국어 소통 미숙으로 인한 작업 중 부상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의 이주배경 청년 노동시장 연구(2024)에서도 "한국어 능력의 한계가 취업 준비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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