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이 열어젖힌 유라시아 시대의 문
# 비극에서 자산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1937년 9월, 스탈린의 명령 하에 연해주에 거주하던 17만여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첩자'라는 낙인이 씌워진 이들은 아무 준비도 없이 화물열차에 실려 불모지로 내던져졌다. 언어와 권리가 단절된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고려인들은 농업, 과학, 문학 등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며 디아스포라의 역량을 증명했다.
그로부터 88년이 지난 2026년, 그 비극의 후예들은 21세기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인적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중앙아시아 전문가로서 이 연재를 마무리하며 강조하고 싶은 핵심 명제는 하나다. 고려인은 한국의 유라시아 전략에서 그 어떤 외교적 수단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전략 자산이다.
# 고려인의 현주소: 숫자가 증명하는 저력
구소련 지역에는 약 50만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에 약 10만 명, 우즈베키스탄에 약 20만 명이 집중되어 있다. 인구 비중으로는 소수지만, 현지 사회에서의 영향력은 그 수치를 훨씬 웃돈다.
카자흐스탄에 약 11만 명이 거주하는 고려인은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하지만, 130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사회에서 '4대 주즈(혈통)'로 불릴 만큼 존재감이 크다. 현지에서는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을 고려인에 빗대어 말하는 경우도 흔하다.
경제적 성취는 더욱 두드러진다. 매년 포브스 카자흐스탄판이 발표하는 자산 순위 50위 명단에 해마다 7명 안팎의 고려인이 이름을 올려왔다. 카스피 은행을 창업한 김 베체슬라브 회장이 최고 부호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광업 대기업 카작므스의 회장 김 블라미르가 4위에 랭크되는 등 금융과 광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알마티의 랜드마크인 공화국 궁전과 소년궁전, 천산산맥의 산사태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메데우 댐도 고려인 건축가가 설계하고 건설했다. 이는 고려인이 단순히 경제적 엘리트층에 머무르지 않고, 현지 도시 문명 자체를 만들어온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강제이주라는 극단적 경험은 고려인에게 '이곳에서 뿌리내린 엘리트로 성장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집단적 각성을 촉발시켰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가혹한 시련이 가장 강인한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 K-실크로드와 고려인: 전략의 핵심에 서다
한국 정부는 2024년 6월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계기로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발표하며 중앙아시아를 핵심 광물 분야의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 구상은 에너지·자원 확보, ODA 개발 협력, 인적 동반자 협력을 세 축으로 삼고 있으며, '동행, 융합, 창조'라는 협력 원칙 아래 한-중앙아 5개국 정상회의 창설, 차세대 고려인 동포 직업연수 프로그램 개설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중앙아시아에는 우리와 피를 나눈 32만 명의 고려인 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오랜 교류의 역사와 언어·문화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국과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다. 고려인의 존재는 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다른 어떤 경쟁국도 갖지 못한 독보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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