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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이루어지는 이유

징크스와 미신, 말의 마법

by Miracle Park


“이거 붙을 것 같아.”
“쉿! 그런 말 하면 떨어져!”


어느 취준생의 밤, 커피 냄새와 함께 퍼지는 긴장감. 왜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말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누군가 입을 열자마자 “얘기하면 안 돼!”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는 걸까?

이 글에서는 징크스라는 보이지 않는 문화의 규칙이 언어와 현실, 그리고 우리의 불안한 마음 사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들여다본다.




1. 말은 씨가 된다? — 사회언어학이 말하는 ‘말의 현실 구성력’

사회언어학(Sociolinguistics)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이제 끝이야”라는 말은 단지 감정의 전달이 아니라, 그 관계를 실제로 끝나게 만드는 **행위(performative act)**다.
결혼식의 “I do”처럼, 어떤 말은 말하는 순간 현실을 바꾼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합격할 것 같아”라는 말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미래를 건드리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말하는 순간 무언가가 깨질까 봐, 우리가 멈칫하는 것이다.



2. 동아시아의 징크스: 말의 힘을 믿는 문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말의 기운, 즉 언어의 정서적 에너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에서는 시험 전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미끄러질까 봐.

일본에서는 “4(시)”와 “9(쿠)” 발음을 피한다. 각각 죽음(死)과 고통(苦)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새해 첫 말이 중요하다. 신년 첫 말이 불운하면, 한 해가 온통 꼬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모든 징크스는 “말이 운을 바꾼다”는 믿음, 즉 언어가 에너지라는 문화적 감각에서 비롯된다.



3. 서양과의 차이: 예언과 드러내기의 문화

반면 서양에서는 긍정적인 자기 확언이나 오픈 선언이 오히려 중요하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미국 문화에서는 “난 이번에 꼭 성공할 거야!”라는 말을 당당하게 선언한다. 이는 개인의 의지를 우주에 던지는 행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서구식 긍정의 언어가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만, 혹은 운을 건드리는 경솔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차이는 단순히 표현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철학의 차이이기도 하다.
동양은 흐름을 따르고 조심하는 운명관이라면, 서양은 운명을 개척하고 선포하는 무대로 본다.



4. 심리학적으로 본 징크스의 기능: 불확실성에 대한 자기 위안

사실 징크스는 단순한 비과학이 아니다. 인간의 불확실성 공포를 다루는 심리적 장치이기도 하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말하지 말자”는 룰을 정해놓으면 불안을 통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즉, ‘통제감을 얻기 위한 의식’인 것이다.

게다가 “이 말 안 했으면 됐을 텐데”라는 인지적 도피처를 마련해 두는 효과도 있다.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말 한마디에 책임을 떠넘기며 자존감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5. 말의 마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결국, 말이 가진 힘은 우리가 그것을 믿는 정도만큼이나 강력하다. 징크스는 허황되지만, 동시에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고 견디는 방식이기도 하다.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 어쩌면 이루어질까 봐 겁나서 하는 말 아닐까? 혹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탓할 대상을 미리 만들어두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니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운을 말로 불러올 수도, 조용히 품을 수도 있는 건 결국, 당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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