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뭘 했길래, 핸들 잡고 밤새 달리고 있나...
# 극한직업: 글쟁이 대리기사
어둠이 스며든 도시, 빌딩의 불빛들이 창문마다 점점이 박히던 밤이었다. 나는 핸들을 쥐고 있었다. 내 차가 아닌, 누군가의 차를. 전생에 대체 무슨 업보를 쌓았기에, 책으로 세상을 울리고 웃기던 ‘작가’였던 내가 지금은 ‘대리기사’의 이름으로 한 밤의 도로를 질주하고 있단 말인가.
롤러코스터 같다고? 아니, 이건 마치 한 번 올라타면 멈출 줄 모르는, 때로는 아찔하게, 때로는 무한정 허공을 맴도는 지옥 같은 관람차였다.
차 없이 대리운전을 한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는 내 작업실에서 내 차를 몰고 글을 쓰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차에 몸을 싣고 콜이 뜨는 곳까지 이동하고, 또 거기서 손님 차를 몰고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내려드리고, 다시 다른 콜을 향해 이동하는 일이 반복된다.
가끔은 막차도 끊긴 새벽에 덩그러니 남겨져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첫차를 기다리다 꾸벅거리기도 한다. 나의 밤은 타인의 밤과는 달랐다. 사람들의 퇴근길은 나의 출근길이었고, 그들이 단잠에 빠지는 시간은 내가 가장 치열하게 핸들을 잡는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온 영혼을 갈아 넣었다. 손끝에서 스쳐 지나가는 단어들이 모여 세상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이만 원, 삼만 원의 대리비를 벌기 위해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순간들을 수도 없이 마주한다.
만취한 손님의 비아냥거림에도, 이유 없는 짜증에도 그저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라는 인사만 남긴다. 내 감정은 한밤의 고속도로처럼 길고, 텅 비어 있었으며, 동시에 수많은 감정들이 요동치는 폭풍의 한가운데였다. 대리기사라는 직업은 극한의 감정노동자라는 말,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밤에는 손님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성공한 사업가의 고민,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춘의 좌절, 혹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가장의 막막함... 때로는 이 밤의 끝에 만나는 이들의 사연이 나의 새 글감으로 둔갑한다. 그럴 때마다 낡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끄적인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차가운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잉크 향 가득한 서재가 아닌, 찌든 담배 냄새와 피곤에 절은 손님의 체취가 뒤섞인 차 안에서 나는 다시금 '글쟁이'가 되는 것이다. 나의 체험은 이제 현실에 발을 딛고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왜 이토록 다이내믹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이 고단한 새벽의 끝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 이따금씩 찾아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는 나를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리려 하지만, 이내 나는 다시금 핸들을 쥔다.
혹시라도 전생의 내가 너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서, 이번 생에는 이렇게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며 더 깊은 이야기를 쓰라고 등 떠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 밤의 질주가 훗날의 대작을 위한 '충격 고백'의 서막일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희망 하나로, 오늘도 나는 핸들을 돌린다.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나는 다시 글쟁이의 펜을 쥘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