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2021-11-06/#024 [새벽 기상-모닝 페이지]

by 로운

[아티스트 웨이-새벽 필사 24일째]

[새벽 기상 04:58] 모닝커피와 함께 하루 시작!



[아티스트 웨이-p139~140 비평에 대처하기]



도움을 주는 비평과 그렇지 못한 비평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변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다.

날카로운 비평이라도 정확한 것일 경우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 내적 안도감을 준다.

도움을 주는 비평은 작품에 끼워 맞춰야 할 퍼즐 조각이 더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

반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평은 고통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런 비평은 수치심을 부추기며 내용도 모호하고 인신공격적인 데다 부정확하고 맹목적이다.

그런 무책임한 비평은 재고할 가치가 없다.

해로운 비평을 받으면 반드시 그로 인해 생긴 상처를 치유해주어야 한다.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간섭받는 것을 싫어할 때가 있었다. 칭찬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는 나를 지나치게 부지런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늘 쫓기는 마음이 들었다.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다 보니 나와 상관없는 일에 타인의 표정이 어두워져도 마치 내 탓 같았다. 모임에 참석해서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면의 나'와 끊임없이 마주하며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거나, 혹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을 때 마음에게 물어보자.


"분명히 네가 좋아하는 게 있을 거야.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 다만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의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면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꿈'이 사라진다. 말 그대로 공황상태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니?" 물으면,

"없어요!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올해 만났던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도, 중학교 1, 2학년 아이들도 같은 대답을 했다.


"아이들은 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질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 예정인 7살 도도는 12월 생이다. 1월 1일생에 비하면 꼬박 1년 차이가 난다. 어릴 때 1년은 엄청난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학교를 입학해야 하니 12월에 태어난 도도는 1월생을 쫓아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아이의 엄마는 그 특이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아이를 채근한다는 것이다. 1월생 아이가 돌잔치를 할 때 태어난 아이에게 1월생과 같은 성과를 내라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이룰 수 있는 성과일까? 때로는 인지 지능이 높아 너끈히 따라잡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아이들은 개월 차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80년을 산다고 했을 때 지금 받아쓰기 잘 못하는 것쯤은 인생에서 아무 일도 아니야. 걱정하지 마!"


라고 조언 해 주지만 아이 엄마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입시와의 전쟁이 시작된디는 것이다. 대학을 가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 같다. 학령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그 안에서 배워야 할 것이 '공부'만은 아닐 텐데 오로지 '공부'에 집중된 성과 위주의 양육은 아이들의 꿈을 어두운 터널 속으로 밀어 넣는다.


"선생님, 저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선생님, 저는 아무래도 틀린 것 같아요. 공부도 잘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어요."

"선생님, 우리 엄마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못 가면 망한 거래요."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대학이며, 4년제 대학이고, 좋은 학과를 나오지 못한 대다수의 성인들은 지금 망했을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돈을 벌기 위해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혹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 충족을 위해 대학에 간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그 의미가 비슷하다 하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나이에 따라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지금 앵글이가 고2, 18세이다. 나는 "18세에 어떤 생각들을 하며 살았을까? 그때 나는 내 부모가 어떻게 해주길 바랐을까? 어떤 말을 했을 때 상처가 됐었나? 그리고, 어떤 말을 듣고 싶었었나?" 생각하고 기억을 소환해 본다. 그리고, 그 시절 내가 싫었던 것을 자녀에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 시절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자녀에게 해 준다. 무조건적인 허용은 아니지만 합리적 허용을 하기 위해 함께 대화하고 토론한다.


가끔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마음속에 끊임없이 물음표가 생기는 경험을 한다. 우리 동네 엄마들은 모두 초중고를 전교 1등으로 졸업한 사람들이며 SKY 졸업생 같다. "어떻게 한결같이 자녀에게 바라는 마음이 같을 수가 있을까?" 농담 삼아 그들에게


"여기에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하고 SKY 못 간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아."


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허허실실 웃는다. '왜 웃지? 나는 진심이었는데...' 물론 마음의 소리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매일 읽는다. 하루에 100편 이상의 글을 읽는 것 같다. 예의 같은 것이다. 내가 글을 쓸 때, 내 글을 내 마음처럼 읽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작가님들의 글도 내가 글을 쓸 때의 마음처럼 읽으려 노력한다. 내 글을 읽어주시고 친절하게 진심 어린 댓글을 달아주시는 작가님들의 글은 조금 더 정독해서 읽는다. 그리고,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작가님들의 글은 조금 빠르게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부족하다. 많은 글들을 읽다 보니 놀랄 만큼 글을 잘 쓰시는 작가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내가 쓴 습작에 가까운 글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동력이 되어 매일 명상하도록 이끌어주었다.


오늘은 '비평에 대처하기'라는 주제로 명상을 했다.

도움을 주는 비평과 악플을 구별하라는 메시지였다. 도움을 주는 비평은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잊고, 악플만 남아 허공을 떠돌면 결국 나의 글밭은 지뢰밭이 된다. 악플을 일삼는 사람들은 그들도 해결하지 못한 내적 갈등을 타인에게 쏟아내며 남 탓을 하고픈 부정적인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그들의 공격적인 언어에 나의 영혼을 갈아 넣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맹목적으로 공격을 당했다면 그로 인해 상처 받은 내 영혼을 도닥이며 치유해주자. 치유의 과정이 없으면 회복이 더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과 방법을 찾아내야겠다.



성장하는 나와 마주하고픈 로운입니다.












필사 기념 낙관 (장비 빨 세우기 *^^*)


장비 빨 세우기 달인 로운입니다. ㅎㅎㅎㅎㅎ

벼르고 벼르다 하나 장만했습니다. 혼자 괜스레 미소가 지어집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것 같지만 낙관이 생기니 정말 '로운'이라는 필명이 마음에 콕 박히네요. 행복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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