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는 속담을 근간으로,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때를 일러하는 말입니다. 다른 뜻으로는 욕심 많은 사람이 이익이 되는 것을 보고 가만있지 못한다는 말로도 쓰이는데요, 저는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 같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한 번 들르는 곳이 바로 문구점입니다. 문구점에 한한 것은 아닙니다. 볼일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도 '다있소'가 눈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들어가 한 바퀴 돌다 나와야 행복합니다. 빈손일 때는 거의 없습니다. 충동구매를 억제하려면 절대 들어가선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서점이 또 그렇습니다. 요즘 서점은 책만 팔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동네 책방 너의 작업실은 책과 정을 팔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문고'와 '가르침을 돕는 문고'에는 이색적인 문구류가 하나 가득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서울을 나가게 되면 꼭 한 번 들렀다 오게 되는 곳이 대형서점입니다. 되돌아 나올 때에는 문구만 두 손 가득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이 바로 함정이죠.
작년 11월부터 소설 필사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글벗들의 예쁜 노트를 보노라면 필사보다 글벗들의 필사노트에 더 욕심이 납니다. 제가 제일 욕심나는 차영경 작가님의 노트는 정말 넘사벽입니다.
차영경작가님의 필사노트와 내 노트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한 후 손글씨로 적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글씨 쓰기를 좋아해서 서예, 캘리그래피를 배우며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추억 저 편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글벗들이 필사를 할 때 저는 필타를 했습니다. 서로의 노트를 공유하며 응원할 때마다 천천히라도 손글씨를 쓰고픈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디지만 꾹꾹 눌러 글씨를 써 봅니다.
신기한 것은 필타를 하는 것과 필사를 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필타는 눈으로 글을 읽으며 동시에 손이 움직이기에 글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후루룩 써 내려간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타이핑 속도가 빠른 탓도 있겠지만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글씨를 옮기는 행위로 그치게 되어서인 것 같습니다. 글벗들은 필사를 하며 느낌말을 오갈 때, 필타를 한 저는 글의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필사를 해보니, 눈으로 글을 읽고, 손으로 쓰면서 읽고, 쓰고 나서 다시 노트를 보게 되니 한 편의 글을 세 번 읽게 되는 효과가 있음을발견하게 됐습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작가의 문체, 시점, 심상등을 느끼게 되고, 닮고 싶어 집니다. 이게 바로 필사의 맛인가 봅니다.
매일 한 편씩 문장 배달을 해주는 너의작업실
불편한 팔로 글씨를 쓰려다 보니 부드러운 볼펜이 아쉽습니다. 0.3m 볼펜을 쓰다가 0.5m로, 지금은 0.7m 볼펜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굵은 펜으로 쓰니 부드럽게 써지고 사진을 찍었을 때 선명하게 나오니 참 좋습니다. 처음에는 검정 볼펜으로만 쓰다가 파랑 볼펜을 곁들여보니 적어놓은 글이 더 잘 읽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록 볼펜도 추가하고 싶어 졌습니다. 집에 볼펜이 많이 있지만 0.7m의 초록 볼펜은 없었습니다. 앵글이의 0.3m 볼펜을 빌려서 적어보았는데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볼펜 사냥을 떠나봅니다. 어디냐고요? 제가 좋아하는 '예술상자'로요...
오늘은 목적이 뚜렷합니다. 0.7m의 볼펜, 그리고 초록색입니다. 젤펜은 절대 안 됩니다. 젤펜으로 적으면 노트 뒷면에 잉크가 묻어나 노트를 단면으로만 사용하게 되니 여러모로 낭비가 되거든요.
가자! 예술박스로~~~
보기만 해도 행복한 볼펜들이 하나 가득입니다. 쭈그려 앉아 볼펜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가 기회입니다. 마음껏 테스트를 해볼 수 있거든요. 색색의 볼펜들 중 0.7m의 볼펜만 꺼내어 이면지에 나선을 그려봅니다. 필압, 펜촉의 느낌에 집중하며 스윽 그리다 보면 내 마음에 쏙 드는 볼펜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록색 볼펜 중 0.7m는 보이지 않습니다. 0.3m와 0.5m는 흔하디 흔한데 왜 0.7m 초록색은 없는 걸까요?
어쩔 수 없이 0.5m를 손에 쥐고 돌아 나오는데, 어랏! 진열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서 보란 듯이 손짓하는 0.7m 볼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반가워 초록색만 사려던 마음을 훠이훠이 날려 보내고 초록, 보라, 주황, 분홍이들을 맞이했습니다. 볼펜 욕심 가득 내는 엄마를 바라보는 두 아이의 눈빛에서 '그걸 다 사려고?'라고 하는 듯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기뻐서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기다려지도록 하는 필기구들
집에 돌아와 필사 노트에 제가 좋아하는 볼펜과 스탬프, 이어폰을 놓고 기념촬영을 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 혹시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