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아니면 모'인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

2021-11-22/#040 [명상과 필사 40일째]

by 로운

D-361 "함께 걷는 길"

[아티스트 웨이 p234~239 패배를 가장한 승리]



• '패배를 가장한 승리'는 아티스트에게 아주 좋은 도구이다.

• "이 패배가 나에게 무엇을 주려 하는 것일까? 내 작품의 어디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대답에 당신은 아마 깜짝 놀라며 자유로워질 것이다.

• 고통을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승리의 비법이다. 그러기 위한 열쇠는 들어가기를 주저했던 또 다른 문을 통해 걸어가기만 하면 새로운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신뢰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 향해 손을 뻗어라"

• 패배를 거듭한 후에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대신 "다음엔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을 하자. 그리고
"다음에 필요한 게 뭐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자. 성장에 탄력을 불어넣는 열쇠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선택이다.

• 목표를 바꾸면 그 목표에 이르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아가자.

• 패배감에 사로잡혔을 때는 내면의 창조성을 계속 떠받칠 수 있는 어떤 행동을 당장 해야만 한다.

• "나는 네가 있다는 것과 네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알아. 앞으로는 너에게 더욱 가치 있는 미래를 약속할게."라는 당신의 의지를 보여줘라.

• 우리 내면의 창조성에게도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불행하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 / 강준 / 박영 스토리]



p1~3 [사실 우리는 불행하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

'건강한 어른'이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볼 줄 알아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 마음에 충분한 여유가 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을 자주적으로 설계해가는 어른"이다. (중략)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정신건강 관리법'이나 바른 사고관과 가치관을 통해 쉽게 '행복을 느끼는 방법'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략) '현재 행복하게 지내는 것'보다 '미래에 행복해지는 법'이 더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중략)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나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모르고 '겉모습만 어른'이 되어 냉혹한 사회로 내던져지게 된다. (중략) 우리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나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부자연스럽거나 어렵게 생각하고 꾸준하게 노력하지 않는다. 좋은 글과 강연, 영상 등으로 깨달음을 얻고도 얼마 가지 않아 큰 변화 없이 똑같은 삶을 되풀이하며 살아간다.




오늘의 명상은 [패배를 가장한 승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나누고픈 글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장에 탄력을 불어넣는 열쇠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선택이며, 우리 내면의 창조성에게도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간과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지금 이 시간, 현재의 행복감을 위해 나는 어떠한 하루를 이끌어가야 할지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딸아이의 입시가 코 앞으로 다가와 아이와 함께 그 시간들을 같이 걸어가고 싶어 졌습니다. 대신 공부해 줄 수는 없지만 외로운 길을 가는 걸음에 엄마도 함께 마음을 보태고 있다는 정서적 지원을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명상과 필사의 목표가 "함께 걷는 길"이 되었습니다.


10대의 시간은 아이도 걷고 있지만 저도 걸어왔습니다. 그 시기를 걸으며 어떤 말과 공감으로 내면을 채웠을까 돌아보았습니다. 시험과 경쟁에 떠밀려 '행복감'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가장 예쁘고, 많이 보고 느끼며, 함께 나누는 경험이 필요할 때 '입시'라는 과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저도 걸었고, 아이도 걷고 있습니다. 이왕 걷는 길이라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아이가 비포장도로(돌짝밭이나 자갈밭, 진흙탕 같은 길) 보다는 잘 닦인 아스팔트로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대접받는 사회야."

"대학도 못 가면 (엄마가, 아빠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니?"

"네 친구들은 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는데 너만 떨어지거나, 지방에 있는 전문대나 다니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좋은 대학을 나와야 네 인생이 꽃피는 거야."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신랑감을 만나지."

"대기업(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면 인 서울은 해야지."

"눈 딱 감고 1년만 죽었다 하고 공부에만 집중해."

"고등학생이 친구랑 시시덕거리며 놀러 다닐 정신이 있니?"

"노는 건 대학에 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기술이나 배우던지..."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집에서는 부모님께, 학원에서는 학원 강사에게, 혹은 이웃에게, 혹은 친구의 부모님으로부터, 이런 류의 말들을 들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치열하게 경쟁하고, 내 옆의 친구도 적군이 되어버리는 교실 풍경, 우연히 좋은 자료와 시험 정보를 얻었어도 혹시 내 친구가 나 보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으니 공유하지 못하도록 코칭을 받으신 적은 없으신가요? 겉으로는 서로 다 잘 되고,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불안함으로 늘 초조하지는 않으셨나요?


학령기에 저는 자주 아프고, 스스로 조퇴를 하지 않아도 선생님들의 권유로 야간 자율학습에서 열외 되는 혜택(?)을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 입장에서는 편애라고 느낄 만큼의 혜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공부한 내용을 친구들에게도 나눠주고 매일 간식을 싸드로 다니며 나눠먹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도시락 3개, 새우깡 2 봉지, 초콜릿이나 사탕 주머니 등을 들고 다녔죠. 그나마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미움받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면의 아티스트가 창조성을 잃고 패배감을 맛보게 되었을 때, 그저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패배한 나'에서 멈추게 되겠죠. 하지만, 패배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나아가면 패배했던 이전의 시도가 발판이 되어 조금 더 나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겁니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인 저는 예체능에서 일반대로 전환하게 되면서 전기, 후기 입시전략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후년의 입시제도가 수능 제로 바뀌면서 재수를 반대하시는 부모님의 권유로 전문대에 진학했지만 실패한 인생같이 느껴졌었죠. 부모님은 대입의 실패를 부끄러워하셨고, 주변의 지인들에게는 좋은 성적으로 4년제 대학을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러 거짓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질문을 받았을 때 어색한 미소로 답한 것이 긍정의 의미로 전달되었죠. 저는 전문대에 진학한 것보다, 4년제 대학으로 둔갑된 그 상황이 더 힘들었습니다. 이후 편입으로 학사를 받았지만, 가장 힘든 시기에 위로와 지원을 받지 못했던 그 순간의 섭섭함이 마음 한 구석 남아있습니다.


앵글이가 입시와 가까워지며 지난 시간을 많이 되돌아봅니다. 그때는 실패라고 여겨졌던 경험들이 지금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승승장구했다면 함께 나눌 말이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과정으로 그 시기를 겪어냈던 경험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당장 정시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살아가야 할 80년 중 1년 정도 늦는 것은 건강관리 잘해서 1년 더 살면 그뿐이라고 말해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힘내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 길 밖에 없는 것 같고, 너무 절실해서 '도 아니면 모'인 것처럼 살아가면 인생이 너무 퍽퍽하고 버겁지 않을까요? 아이가 걷는 1년을 함께 걸으며 묵묵히 마음을 나눠주는 좋은 벗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하루도, 분주한 가운데 잠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걷는 길"
로운이 가는 길에 여러분도 함께 걸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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