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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17. 2022

(에세이) 엄마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2가지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어요!"
and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내 고향은 '신촌 세브란스'이다. 70년대 초반에는 집에서 출산하는 분들도 많았으니 꽤 호사스러운 출생이었다. 앵글이와 동글이는 우리  식구 중 가장 럭셔리하게 태어났다며 호들갑이다. 아이 둘을 경기도에서 낳았으니 서울 태생은 우리 집에서 나 혼자 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38년을 살았다. 서울은 사람 살기에 편리한 도시이다. 그중 제일은 대중교통이다. 자차가 없어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망 덕분에 서울에서는 차 없이도 별다른 불편함을 못 느꼈다. 각종 문화생활을 누리기에 안성맞춤이고, 가볼 만한 곳도 곳곳에 있다. 식생활비도 지방보다 적게 든다. 장점이 가득한 것 같음에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서울보다는 도시 외곽으로 나와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든 것이 편리한 듯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 더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랐으면 싶었다.


앵글이가 7살 되던 해 앵글이에게 물었다.


"앵글아,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학교에 들어가면 무엇을 제일 해 보고 싶어?"

"응... 소원이 두 가지 있어."

"뭔데?"

"하나는, 엄마가 일하느라 내 생일파티를 해 준 적이 없잖아. 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하고 싶어."

"그 정도는 엄마가 해 줄 수 있어. 또 하나는 뭐야?"

"또 하나는,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엄마가 맛있는 간식도 만들어주고, 같이 놀아주는 거야."

"음... 그렇구나. 두 번째 소원은 엄마가 생각 좀 해 볼게."


첫 번째 소원은 시간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소원은 엄마가 집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생각을 하다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순간 어릴 적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맞벌이 가정에서 자란 나는 매일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니는 아이 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컴컴한 집에 혼자 들어가야 했다. 홀로 긴 시간 동안 가족을 기다리는 것이 무섭고 싫었다. 비가 와도 우산 들고 마중 올 엄마가 없었고, 늦잠이라도 자게 되면 학교에 데려다 줄 어른이 없어 지각을 해야 하는 아이였다.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는 것이 어릴 적부터 습관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맞춰둔 알람보다 일찍 깨었다.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의 엄마가 방으로 예쁜 접시에 간식거리를 담아 오셨다. '맛있게 먹고 재밌게 놀아'라며 방긋 웃는 친구의 엄마가 부러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던 나는 학교를 마치면 어린이도서관에 들러 도서관 폐장 시간(동절기 : 오후 5시, 하절기 : 오후 6시)까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집에 왔다. 부모님은 11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셨기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도 잠들기 전에 부모님 얼굴을 뵙는 날은 거의 손에 꼽혔다. 어떻게 좋을 수가 있었을까... 그 시절 매일 홀로 보내며 생각했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나는 집에서 아이를 맞이해줘야지. 예쁘게 도시락을 싸주고 도시락에 사랑한다는 메모지도 넣어줘야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눠주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줘야겠다.'


앵글이의 두 가지 소원으로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났다. 반갑게 맞아줄 엄마가 없던 그 시절의  외로움과 그리움... 혼자였던 시간... 8살 나이의 어린아이가 겪어내기에는 가혹했던 현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로 마음이 설렁거렸다. 잊고 지냈나 보다. 무엇을 챙겨 먹으며 유년기를 보냈을지 조차 가물가물한 그 시절... 라면으로 매끼를 때우던 그때가 서글프게 나를 깨웠다.  그렇게 이틀 정도 지나 나는 결단을 내렸다.


유치원을 종일반으로 다니며 그 시기에 보고 듣고 느껴야 할 많은 것들을 놓친 앵글이었다. 유치원 교육 과정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행사를 치르게 된다.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과 앵글이가 다니는 유치원 일정은 거의 같은 날 이루어졌다. 그래서 앵글이와 동행할 수 없던 나는 앵글이의 유치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으로 데리고 출근했다. 앵글이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행사 때마다 결석이었다. 생각에 생각이 겹쳐지니 미안한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어떻게 좋을 수가 있을까...


앵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친구를 사귀고 적응할 때까지 함께 있어주자'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과감하게 휴직계를 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웠지만 일이 70%, 가사가 30% 정도의 삶이었다. 전업주부는 처음 해 보는 터라 사람 사귀는 법도, 살림하는 것도 미숙했다. 돈보다 시간이 더 아까웠던 삶을 살다 보니 물건 하나를 사게 돼도 '주부 다움'이 없었다. 아이를 입학시키며 사귀게 된 아이의 친구 엄마들은 내게 "진정한 주부가 되려면 멀었어."라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티셔츠 한 장을 사러 쇼핑몰갔을 때 첫 번째 매장에서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 있으면 바로 사서 나오는 편이다. 가격을 비교하거나, 다른 매장을 러보는 일은 거의 없다. 생각했던 것과 얼추 맞으면 그냥 사서 나왔다. 때로는 옆 매장에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옷이 더 싸기도 하고, 더 좋은 원단의 옷이 있을 수 있음에도 사고 나면 미련 없이 돌아섰다. 늘 시간에 쫓기던 나의 고정된 쇼핑 습관이었다.


아이의 소원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간식을 만들어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라 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사귄 친구와 엄마들까지 매일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매일 간식을 만들어주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유치원 운영을 하며 특강으로 진행했던 과학, 아동미술 등의 재료를 택배로 받아 앵글이 친구들에게 수업도 해주었다. 우리 집은 매일 북적이는 아지트가 되었다. 나는 좀 힘들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앵글이는 밝아졌고, 신이 났다. 그것으로 족했다. 아이가 행복해하는데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한 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아이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밖에 나갔는데 우연히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함께 만나 점심도 같이 먹고, 때로는 우리 집에 올라와 아지트 삼아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앵글이가,


"언니를 낳아줘. 놀이터에 가면 나만 혼자야."


앵글이의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고 앵글이에게 언니를 못 낳아주는 이유를 설명 주고 동생을 낳자고 제안했다. 이야기를 듣던 앵글이가,


"나처럼 키우려면 동생 낳지 마!"

"왜?"

"엄마는 종일반 안 해봤잖아. 나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왜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안 했어?"

"내가 힘들다고 하면 엄마 속상할 거잖아. 그런데 종일반은 진짜 힘든 거거든?"

"선생님들이 잘 챙겨주시고, 엄마가 데리러 가면 잘 놀고 있길래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어."

"엄마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종일반은 진짜 힘든 거야. 엄마가 동생 키울 거 아니면 낳지 마."

"엄마가 키우면 동생 낳아도 돼?"

"응. 엄마가 키우면 나도 동생 좋아. 아기는 원래 엄마가 키우는 거야."


충격적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두 눈에서 멈추지 않고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이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 13개월에 말문이 트인 앵글이와는 퇴근 후에도 매일 긴 시간 함께 수다를 떨며 친구처럼 지냈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운영했었던 유치원이었고, 선생님들도 앵글이를 많이 예뻐해 주고 챙겨주셔서 아이가 부족함 없이 잘 크고 있다고 믿고 싶었나 보다. 아이가 재차 강조할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졌다.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사고 싶어 하는 장난감, 예쁜 옷, 아름다운 여행... 등 줄 수 있는 것이 많을 거라 믿었나 보다. 그런데 '정작 내 아이는 외롭고 힘들었는데도 엄마가 속상할까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견뎌내고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머무르니 가슴이 미어졌다. 어떻게 좋을 수가 있을까...


6개월 휴직으로 멈췄던 일을 사표로 마무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앵글이에게 약속을 했다.


"엄마가 유치원 그만뒀어. 이제 매일 너와 함께 있어 줄게. 그리고 동생도 낳자. 동생도 엄마가 키울게. 엄마가 유치원 안 다니는 게 좋아?"

"응. 나는 엄마가 매일 집에 있는 게 좋아. 유치원 안 다녔으면 좋겠어. 나... 장난감도 필요 없어. 그냥 엄마만 집에 있으면 돼."


아이는 내가 모르는 새 훌쩍 자라 있었다.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했고, 아이의 생각은 타협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당연한 요구였고, 아이에게는 엄마를 누릴 권리가 있었다. 앵글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도 앵글이는 엄마가 직장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직 동글이가 어리기에 손길이 필요해서도 있겠지만 엄마가 집에 있을 때의 안정감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며 살아간다. 나의 삶 또한 성장이 필요하기에 선택한 일들을 해 내면서 말이다.


고3이 된 앵글이와 매일 많은 대화를 나눈다. 요즘의 대화는 거의 진로에 관한 내용이 많다. 고3이 되면서 진로변경을 한 앵글이는 2년 동안 쌓았던 수시전형을 내려놓았다.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엄마,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너무 아까워서... 지금 이대로 수시 전형으로 대학을 지원하면 적당히 아무 대학이든 갈 수 있겠지. 그런데 내가 가고 싶은 대학, 하고 싶은 공부는 할 수 없어. 그래서 수시를 포기하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아까워서 눈물이 났어.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고, 후회도 없어. 내가 태어나서 지난 2년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아. 앞으로 1년만 더 열심히 살아볼게."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이 스스로 본인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담담히 엄마에게 그 뜻을 전달하는데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묵묵히 응원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겨졌다. 아이는 끊임없이 성장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엄마도 알아. 네가 지난 2년 동안 최선을 다했던 거... 앞으로 1년 동안 최선을 다했는데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엄마는 널 응원해줄게. 살아가는 데 길은 많아. 그 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지금 걷고 있지만 그 길이 아니라고 여겨지면 다른 길을 찾으면 돼. 그리고 너는 잘 해낼 거야. 대학을 가든 안 가든 멋지게 네 삶을 잘 이끌어 갈거라 믿어."


고3 엄마치고는 안달복달 안 하고 묵묵히 지켜보는 편이다. 19살이 된 앵글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에게 엄마의 기대감을 들켜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기도하는 뿐인 것 같다. 어떤 길을 걷는다 해도 믿고 응원하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안정감만 주어도 아이는 제 길을 잘 걸어갈 거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앵글이는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걸어야 할 길을 걷고 있다. 잊고 사는 개구리처럼 내가 살아 낸 19살을 잊지 말자고 거듭 생각을 모은다. 그때 그 시절, 나도 혼란스러웠지만, 그 길을 겪어내니 또 다른 길이 열렸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혹시 지금 걷는 앵글이의 길이 지름길이 아닌 둘레길일지라도 본인의 선택에 의한 길이니 책임지는 법도 배우며 자라리라 믿는다.


아이의 삶이 내 삶인 것처럼 관여하고 간섭하지 않는 을 선택한 엄마로서의 내 삶도 여유롭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걸을 때 행복한 것 같다. 모두가 행복한 선택을 하는 지금,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는 로운입니다.





※ 대문 그림 : 동글이

- 이 그림은 동글이가 5 때 그린 그림입니다. 놀이동산에 가서 아빠와 동글이는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엄마와 누나는 솜사탕을 들고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죠.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올라가다가  낙하할 때 너무 무서워 비가 내리는 것으로, 솜사탕을 든 엄마가 있는 곳은 기분이 좋아 밝은 해님으로 마음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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