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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Jan 18. 2022

[동화] 고양이 날두

고양이 날두와 유자 아저씨의 이별 이야기

[2가지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어요!"
and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고양이 날두     


나는 고양이 날두. 지금 담 위에 앉아 있어. 담 안쪽에는 마당과 작은 텃밭이 있고, 담장 밖에는 긴 방죽길과 가로수 그리고 멀리 갈대밭이 보여. 


오늘도 할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파란 대문으로 낯선 손님만 드나들었어. 사람들은 차를 타고 와서 서둘러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한참 있다가 눈가를 훔치며 나오고, 아저씨가 그 뒤를 따라와 배웅을 해. 그들은 아저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차에 올라 훌쩍 떠나.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온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아. 아저씨는 내가 앉아 있는 담장으로 와서 두 손으로 나를 감싸 안았어. 흐느끼는 소리와 더운 입김이 불편했지만, 나는 아저씨 품에서 몸을 빼지 않았어. 이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야 하니까. 

     

부엌과 장독대와 텃밭과 화분 사이로 온종일 할머니를 따라다녔지. 나는 할머니 발에 걸려 공처럼 툭 차이고, 할머니도 갸우뚱 땅을 짚으며 주저앉기도 하지. 하지만 괜찮아. 내몸은 공처럼 부드럽고 할머니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서 아무도 다치지 않지. 그건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일이야. 할머니와 나는 늘 서로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안심이 되. 그런데 할머니가 며칠 째 방에서 나오지 않아. 


“유자는 얽어도 양반하고 논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손자한테 하신 말씀이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손자가 물었어.

"유자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겨도 사람들에게 좋은 향기를 주고 살라는 말이지."

할머니 말씀이 옆에 듣고 있던 아저씨 귀에 쏙 들어갔나 봐.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 별명을 유자라고 할랍니다.”

할머니는 웃었지만 유자라고 부르지는 않았어. 나는 '유자 아저씨'라고 불러 주기로 했어. 왜냐하면 내가 길 잃은 아기 고양이가 되어 쓰러져 있을 때, 아저씨가 다가와 나를 안고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 유자아저씨 품에 처음 안겼을 때 달콤하고 두근 거리는 향기가 났어. 

      

며칠이 지났는지 몰라. 손님들이 더 이상 오지 않았어. 할머니가 있는 방문은 활짝 열려 있는데 할머니가 안 계셔. 우리가 함께 다니던 뒤란, 텃밭, 죽순을 따던 대밭 언저리에도 보이지 않아. 해가 넘어갈 무렵, 유자 아빠는 마당 한쪽에서 할머니의 옷을 태웠어. 그리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앉아 한참을 울었어. 나는 유자 아저씨 곁으로 가지 않았어.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혼자 우는 시간이 필요해. 

   

할머니가 계실 때였어. 마당에서 턱을 괴고 누워있던 진돌이가 갑자기 하늘을 향해 짖을 때야. 나도 얼른 담장을 뛰어올라 방죽길을 내다 봐. 그러면 길 끝에 거짓말처럼 아저씨 차가 보여. 진돌이는 냄새만으로 누가 어디쯤 오는지 알지. 참 신기한 일이야. 아저씨는 토요일마다 저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 왔어. 할머니는 아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밥상을 차리셔. 유자 아저씨는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우리와 함께 지냈어. 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안 계셔.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유자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요일 오후, 아저씨는 부뚜막에 있던 내 집을 유리창 너머로 마당이 보이는 자리로 옮기고 먹이와 마실 물을 가져다 놓았어. 그리고 싱크대 위쪽에 있는 작은 창문을 빼꼼 열어 놓았지. 이제 실내에 있는 모든 문은 닫히고 나는 그곳으로 드나들게 될 거야.      

“날두야, 진돌이랑 집 잘 보고 있어라.”

유자 아저씨는 접시에 튜브로 된 맛있는 츄르를 짜주었어. 츄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야. 내가 접시에 얼굴을 담그고 열심히 먹는 동안, 유자 아저씨는 숨바꼭질을 하듯 현관문을 잠그고 나가셨어. 


대문 밖에서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 유자 아저씨는 벌써 나와 진돌이를 생각을 할 거야. 나도 그래. 츄르를 먹으면서 유자 아저씨를 생각해. 할머니를 생각해.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아. 나는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이방 저 방을 기웃거려. 할머니가 안 계시고 난 뒤로, 아저씨가 다녀가시는 날에 우리는 항상 그렇게 헤어졌어. 


파란 대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어. 지팡이, 호미, 할머니가 밀도 다니던 작은 손수레도 멈춰 있어. 진돌이는 할머니가 데워 주시던 따뜻한 먹이 대신, 차갑고 퍽퍽한 사료를 먹어야 하니 아침이 힘든 것 같아. 진돌이는 물만 마시고 오전 내내 바람 소리를 듣다가 제 집으로 들어갔어. 나는 땅거미 내리는 저녁이 싫어. 할머니 옆에 앉아 아궁이 속 불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간. 느린 말투로 내게 무어라고 하시며 등을 쓰다듬어 주던 부드러운 손길이 떠올라 힘들었어. 

      

유자 아저씨가 돌아가고 사흘이 날이었어. 누워 있던 진돌이가 갑자기 일어나 길을 향해 컹컹 짖었어. 나는 바짝 긴장하고 거실 유리창으로 밖을 보았지. 아! 유자 아저씨야. 파란 대문이 활짝 열리고 유자 아저씨가 헐레벌떡 들어 오는 모습이 보여. 

“날두야!”

"야옹, 야옹!"

아저씨는 신발을 신발을 벗어 던지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내 얼굴에 입을 맞추고 뺨을 비볐어. 우리는 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들뜬 목소리로 서로 이름을 불렀지. 그럴 때는 내 안에서 즐거운 소리가 들려. 가르랑 가르랑. 유자 아저씨가 무릎에 나를 앉히고 빗으로 몸을 빗겨 줄때, 진돌이 한테 줄 우유를 데우는 아저씨 옆에 있을 때 그 소리가 나. 그날 밤 나는 유자 아저씨의 이불 한쪽에서 꾹꾹이를 했지.  


"날두야, 금요일 저녁에 올께."

다음날 아침, 유자 아저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어. 서둘러 출근해야 하니까. 그후 유자 아저씨는 수요일 저녁과 금요일 저녁에 우리한테 와서 함께 있어 주었어. 하지만 가끔 수요일에 오지 않을 때도 있었어. 그래도 괜찮아. 나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고양이야. 


내 하루는 할머니가 계실 때와 똑같아. 낮에는 들판과 나무와 풀밭을 자유롭게 뛰어다니지. 추운 날에는 햇살 좋은 거실 안 보금자리에서 졸고, 밤이면 어둠 속으로 사냥을 나가서 두더쥐와 들쥐와 깜깜한 창고에 숨어있는 쥐를 쫓아다녀. 가끔 담장 밖으로 나가 들개나 살쾡이한테 쫓기지만 두렵지 않아. 재빨리 담장을 넘어와서 싱크대 위쪽 작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면 되니까. 그렇게 지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지. 

 

진돌이와 나는 힘든 시간을 서로 위로하며 지냈어. 하지만 어떻게 다 좋을 수가 있겠어. 진돌이가  자꾸 여위어 갔어. 할머니가 가시고 한 달쯤 지난 토요일 낮이었던 것 같아. 진돌이 집을 청소하던 아저씨가 깜짝 놀랐어. 그릇 가득 담아 준 먹이가 그대로 있었던 거야. 아저씨가 진돌이 뺨을 두 손으로 만지며 물었어. 

“진돌아, 왜 그래 아파?”     

진돌이는 눈만 깜빡일 뿐 대답이 없었어. 유자 아저씨가 우유에 삶은 고구마를 으깨어 넣고 따듯하게 데워 주었어. 하지만 진돌이는 지친 어미개처럼 옆으로 고개를 돌렸어. 


다음 날 아침 늘 개집을 들락거리던 진돌이가, 웬일인지 오전 내내 마당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었어. 유자 아저씨와 나는 걱정이 되어 자꾸 진돌이를 쳐다보았지. 그날 오후 망연이 서 있던 진돌이가 앞다리를 꺾으며 주저앉았어. 진돌이는 옆으로 스르르 넘어지더니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웠어. 아저씨가 달려와서 진돌이 이름을 부르면서 몸을 흔들었어. 하지만 다시 일어나지 않았어. 파란 대문 안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 유자 아저씨는 작은 수레에 진돌이를 싣고 둘이 함께 산책하던 강가로 갔어. 나는 진돌이가 어디로 떠났는지 알 것 같아.     


이제 파란 대문 집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나 혼자뿐이야. 하지만 밤은 달랐어. 마당에 진돌이가 없으니까 들짐승들이 마당까지 들어와 어슬렁거렸어. 들짐승들은 새벽이 올 때까지 호랑이 가시나무 밑에 배를 깔고 제집처럼 누워 있었지. 나는 거실 커튼 사이로 숨을 죽이고 밤새 지켜 보았어. 검은 짐승들은 집 주위를 맴돌았어. 하지만 무엇이든 익숙해진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야. 시간이 흐르니 들짐승들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어. 나는 무서움을 타지 않는 고양이야.  


어느 날 밤, 어둠 속에 색다른 눈빛이 보였어. 동그랗고 파란 눈이었어. 익숙한 들짐승 눈빛이 아니라 고양이 눈빛. 가끔 버려진 고양이들이 들고양이가 되어 나타나기도 했거든. 어두워서 색깔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집이 크고 움직임은 순해 보였어. 창문 틈을 빠져나와 파란 눈빛이 있는 쪽으로 갔어. 들고양이가 기척을 느끼고 잔뜩 몸을 낮추었어. 하지만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어. 같은 고양이니까. 할머니 발밑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몸을 공구르며 배를 보여주었어. 야옹, 반가워. 나도 혼자야.     


검은 줄무늬가 있는 들고양이였어. 짐승은 갑자기 찢어지는 소리를 냈고, 커다란 이빨이 내 눈앞에 커다랗게  나타났어. 겨드랑이가 찢어질 듯이 아파. 도망가야 해. 얼른 몸을 피해 작은 창문 틈으로 들어왔어. 다행히 들고양이는 따라오지 않았어. 나는 소파 밑 가장 깊은 곳에 떨리는 몸을 숨기고, 어깻죽지에서 겨드랑이로 흐르는 피를 혀로 닦아냈지. 아프고 무서웠어. 아니야. 아프고 슬펐어.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거실을 떠나지 않고 잠만 잤어. 고양이는 다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려. 얼마나 잤을까. 잠결에 문 앞에 차가 서는 소리, 대문이 열리는 소리, 유자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금요일 저녁이었나 봐.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어. 그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나를 안고 입 맞추었지. 아저씨가 고양이 빗으로 내 몸을 빗어주다가 상처를 보았어. 그의 안경 속에 큰 두 눈이 더 커졌어. 


“날두야, 우리 집에 가자...”

아저씨는 나를 무릎 위에 누이고 약을 발라 주며 말했어. 나는 유자 아저씨 손등을 핥아 주었어. 그건 좋다는 뜻이 아니라 괜찮다는 뜻이야. 그 마음 알겠어요. 하지만 유자 아저씨 집으로 갈 수 없어요. 내가 어릴 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작은 박스에 담겨, 아저씨와 처음 눈이 마주치고 처음 간 곳이 아파트였어. 나는 아파트에 길들여지기 전에 할머니 집으로 왔어.    

  

할머니는 현관 입구에 내 보금자리를 정해 주었지. 나는 나무와 꽃 사이를 뛰어다니고 장독과 담장을 쉽게 뛰어올랐어. 할머니 꽁무니를 따라 밭을 가고, 잠시 허리를 펴고 그늘에서 쉬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 드렸지. 낮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하루 종일 졸아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아. 밤에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서 새와 물고기와 생쥐를 사냥해. 할머니가 가시고 유자 아저씨와 함께 자는 밤에도, 깊은 밤이면 이불속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가. 그리고 새벽녘에 온몸에 도깨비바늘을 달고 돌아왔어. 어떻게 좋지 않을 수 있겠어. 아파트에서는 그럴 수가 없잖아. 


내가 유자 아저씨에게만 해주는 특별한 것이 있어. 가끔 그가 입을 오므리고 쭈쭈 소리를 내며,  엎드린 자세로 천천히 다가올 때가 있어. 그러면 나는 그 큰 입에 내 입을 맞춰 주지. 그건 아무에게도 주지 않는 선물 같은 것이야. 왜냐하면 누구도 입을 오리 부리 모양을 만들고, 내게 입 맞추자고 다가오지 않으니까. 그럴 때는 할머니마저 손사래를 쳤지. 

“어이고, 그만둬라. 온갖 쥐와 새를 잡아먹던 입인데, 어쩔라고 그러냐.”


나는 외로움을 타는 고양이야. 누군가와 눈을 맞추지 못한 내 눈은 빛은 빛나지 않아. 항상 내가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누군가 있어 서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 낮에는 햇살 좋은 곳에서 서로 몸을 기대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함께 사냥을 하고 싶어. 


파란 대문 집과 이별할 시간이 된 것 같아. 작은 박스 안에서 처음 바라보던 그 눈빛처럼, 조금 불안하지만 설레는 인연을 만나고 싶어. 어딘지 모르지만 누군가 나와 특별한 관계가 되어 줄 거야. 유자 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오래 행복하기 바랄게요. 이제 우리는 마음으로 분홍 달맞이꽃처럼 만나요. 


안녕 안녕, 정든 사람들!



매거진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글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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