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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31. 2022

(에세이) "한복" 내가 좋아하는 옷

별첨. (동시) 아~ 그렇구나...

사진 속 아이들이 차려입은 고운 한복


한복이야기 1.

내가 좋아하는 옷 중 하나는 한복이다. 어릴 때는 명절이면 한복을 꼭 챙겨 입었다. 가난했던 살림살이였어도 물려주는 이웃 언니들 덕분에 한복은 늘 있었다. 어떤 해에는 몇 가지 중 골라 입어도 될 만큼 한복이 많았다. 덕분에 한복과 난 친했다. 한복은 속에 어떤 속치마를 입느냐에 따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켜켜이 레이스로 덧댄 캉캉 속치마를 입으면 동화 속 공주 드레스처럼 넓게 퍼지고, 속치마 끝자락에 철사로 고정이 되어있으면 걸음을 걸을 때 치마폭이 다리를 감싸지 않고 넘실대어 더 이쁘다. 실내에서 움직일 때는 가지런한 속치마가 제격이다. 넓게 퍼지지는 않지만 적당히 온기도 있고 뒷 치맛자락이 벌어져도 속살이 비치지 않으니 움직임이 자유롭다.


어른이 되고 난 뒤, 한복을 입지 않게 되었다. 좋아하는 옷이지만 주방에서 일하기에 불편하고, 대소사가 있는 날 주방에 머물거나 집안 정리를 주로 하게 되어 한복보다는 일하기 편한 옷을 입게 된다. 시댁 식구들은 한복을 거의 입지 않아서 덩달아 한복을 입지 않게 되었다. 고운 비단으로 내 몸에 꼭 맞춘 한복은 곱게 손질되어 박스 속에서 잠들어있다. 앞으로도 입을 일이 별로 없을 듯하다.


한복이야기 2.

6살 즈음 구정에 한복을 입고 사직공원으로 사촌들과 함께 놀러 나가 그네를 뛰는 모습이 그날 9시 뉴스 날씨 뒷 배경으로 나왔었다. 어렸지만 TV에 나오는 나를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방송을 탄 사건이었다. 한복은 평상복으로 입는 옷이 아니라 명절, 잔치, 발표회 등 이벤트가 있는 날 입는 옷이어서 한복을 입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좋았다. 엄마가 한복에 동정을 갈아 끼우고, 다림질을 하시면 영락없이 얼마 뒤에는 좋을 일이 일어났다. 어릴 때는 맛있는 음식이 있고, 손님들이 많이 모이고, 짭짤한 용돈까지 주어지는 흔치 않은 날 한복을 입게 되니 한복 입는 날을 좋아했던 것 같다.


6살의 나
색 바랜 사진 속의 나는 어릴 때 노래를 잘 불렀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린 꼬마가 어른들을 관중으로 두고 독창을 했다. 떨리기도 했지만 오디션을 통해 선정되는 독창자 명단에 오르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난다. 한글도 채 떼지 못한 어린아이가 어른들이 불러주는 소리를 듣고 노랫말을 왼 후 천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가 무얼 알까 싶지만 그 시절의 나는 꽤 욕심이 많았나 보다. 어떻게 해서든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복이야기 3.

대통령 카퍼레이드 (출처 : 대한서당 대훈장 블로그 중 / 대한뉴스)

어릴 때 사직동에 살았었다. 한참 커서야 사직동이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은 직원들의 거처여서 방 한 칸에 작은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원룸이었다.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드문드문 남아있는 것을 보면 가난했던 그 시절 속 나는 그래도 행복했었나 보다.


사직동의 추억은, 대통령 카퍼레이드가 일등이다.

내가 살던 사직동 언덕에서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 광장까지는 어린아이 잰걸음으로 두 시간이 걸렸다. 대통령께서 해외순방 후 돌아오실 때마다 검은색 차량 행렬이 줄지어 광화문 광장을 지나갔다.  종이로 된 태극기를 흔들며 대통령이 지나가는 차량 행렬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며 환호를 했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이 없지만 그 시절(여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의 나는 카퍼레이드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침부터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 두 시간 거리를 걷고 또 걸어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갔었다.


카퍼레이드가 펼쳐지면 어디서 그렇게들 많이 모이는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낙들부터 남녀노소 상관없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 틈에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길게 드리워진 라인까지 가서 자리 잡고 서면 태극기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종이 태극기를 하나씩 쥐어주었다.


카퍼레이드 행렬이 시작되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대통령 내외를 멀리서 보는 것이 유치원 연령의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지만, 볼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카퍼레이드는 동네 빅 이벤트임에는 틀림없다. 행렬의 끝이 보이고 사람들이 흩어져 제 갈길로 가면 함께 갔던 동네 친구들과 무리 지어 두 시간여 거리를 되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동안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 걱정하며 발을 동동였을 부모님들은 언덕 아래 아이들이 보이면 이름을 부르며 내달려오셨다. 한 바탕 소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다시는 그 먼 곳에 가지 말라고 혼쭐이 났지만 일 년에 몇 번 없는 귀한 이벤트가 열리면 여지없이 두 시간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한복이야기 4.

명절에 고궁에 가면 구경을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한복을 입고 고궁에 가면 입장료도 무료이고, 곳곳에 가족들이 체험할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놀거리들도 많이 펼쳐놓는다. 산책을 하기에도 좋고, 소풍을 즐기기에도 좋다. 우리나라 고유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고궁인 것 같다.


인사동에 가면 한복을 대여해주는 곳이 많이 있다.

색다른 풍경이라면 한복을 입고 지나가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외국인이라는 거다. 더 재밌는 것은 그들이 입은 한복이 계절과 상관없이 '걸쳐 입혀졌다'는 것이다.


공단으로 만든 한복, 깨끼로 만든 한복, 계절마다 한복의 옷감은 천차만별임에도 색과 디자인만 골라서 진열된 아무 한복이나 권해주고 입다 보니 눈이 펄펄 내리는 맹추위에 여름용 깨끼 한복을 입고 겉옷도 없이 덜덜 떨며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도 있고, 한 여름에 공단으로 만든 겨울용 한복을 입고 조바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쓰고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도 있다.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운데 우리 옷에 대한 설명 하나 없이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빌려주는 대여점을 보며 속상할 때가 많다.


돈벌이 수단으로 뿐 아니라 한복을 입기 전에 갖춰야 할 속옷의 종류와 쓰임, 입는 순서 등도 함께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입고 있는 옷에 대충 겉치마와 저고리만 걸쳐 입고, 옷고름이 풀어헤쳐지고, 치마 자락 방향이 잘못 여며져 있는데도 산발한 머리를 흔들며 지나가는 꽃 단 여인들처럼 허허실실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을 보며 부끄러웠다. 그들이 자신들이 입고 있는 한복 차림새가 어떻게 잘못되었고, 그 잘못됨이 뜻하는 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고 기가 찰까 생각하면 시간당 대여료에 어떻게 입든 상관없이 물건만 건넨 이의 배려 없음에 마음이 불편하다.


* 한복 입는 순서

한복 입는 법 (출처. 다음 백과)


1. 여자 한복은 버선, 속옷, 치마, 저고리의 순서로 입는다.

2. 버선을 먼저 신고 치마를 입는다. 최근에는 버선 대신 흰 양말을 주로 신는다.

3. 치마를 가슴까지 올려서 어깨끈을 걸친 뒤, 겉자락이 왼쪽으로 오게끔 입는다.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치마끈으로 매듭을 묶는다. 매듭은 겨드랑이 근처에서 매는 것이 좋으며, 매듭을 지은 다음에는 안쪽으로 말아 넣어 단정하게 한다.

4. 저고리의 동정이 목을 감싸도록 걸치고, 소매 양쪽을 각각 당겨 옷매무새를 정돈한다.

5. 고름을 묶을 때에는 긴 끈과 짧은 끈을 구별하여 반 리본을 묶되, 리본의 크기는 섶을 지나치게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6. 저고리를 입은 뒤에는 소매 끝을 살짝 당겨 옷맵시를 잡으면 된다.


(출처. 다음 백과)


한복을 평상복으로 매일 입고도 살 수 있는 내게 앵글이는 조선시대에 딱 적합한 인물이라 얘기한다. (내가 보기에도 양장보다는 한복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실용성을 겸한 개량 한복도 많이 나오지만 아름다움으로 보자면 전통 한복이 제일이다. 한복 입을 일이 별로 없는 것이 아쉽지만 여느 드레스에서 볼 수 없는 한복의 아름다움이 있다. 인물들이 차려입은 곱디 고운 한복을 분석하며 보는 즐거움이 있어서 드라마를 볼 때도 사극을 즐겨보게 된다.


※ 별첨.


사진을 주제로 받아 들고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전통혼례식에 직접 참관해 본 경험이 없고 TV에서 접한 것이 전부이다 보니 사진 속 풍경이 낯설어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가 명패 속에 있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장례대중궁]


사진을 확대해서 보고 또 봐도 '장례대중궁'이라 읽혔다. 장례대중궁이 뭐지?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앵글이 찬스를 사용했다.


"앵글아, 여기 글씨 좀 봐줘. 엄마가 눈이 어두워서 잘 안 읽히네?"

"음... 장례대중궁?? 창례대중궁? 내가 봐도 그렇게 읽히는데?"

"그래? 장례대중궁이 뭐지?"

"장례이면 흰색으로 꾸며져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거 전통혼례식장이야."

"그래? 그럼 명패가 잘못된 거 아니야?"


오랜만에 둘이 스벅에서 우아하게 딸기 마스카포네와 커피 두 잔을 홀짝이며 바보 놀이가 시작됐다.


"엄마, 아무리 뜯어봐도 그렇게 읽히는데? 뭔가 이상해..."

"그냥 물어볼까?"

"그게 좋겠어..."

"그래. 그냥 물어보자!"


보글보글 톡방에 용기 내어 물어보았다.


우리 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것을 생각 못한 모녀는,


"맞다! 옛날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었었지..."

"우리 둘이 뭘 한 거니? ㅋㅋㅋ"


지혜로우신 유정 작가님께서 친절히 답변을 주신 덕분에 앵글이와의 말놀이가 박장대소로 마무리되었다.

궁중 대례청에서의 전통혼례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행한 왕과 왕비의 대례인 국혼례를 현대적 의미에 맞게 재구성한 것으로서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로 혼례가 진행된다고 한다.


궁금증 하나가 해결되고 난 후 사진을 꼼꼼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 두 아이가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무표정하게 주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5~7세의 아이라면....'이라고 생각하니 궁금증이 생길 만한 것들이 떠올라 대화 형식의 '동시'를 적어보았다.


"아~ 그렇구나..."


언니, 여기가 어디야?

응... 여기는 전통혼례식을 하는 곳 이래.

전통혼례가 뭔데?

나도 몰라!

전통혼례를 하는 곳이라며...?

응. 맞아.

그런데 전통혼례가 뭔지 모른다고?

응. 몰라! 여기 올 때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어.

아~ 그렇구나...


언니, 저 앞에 차려진 음식은 먹을 수 있는 거야?

글쎄... 아마 못 먹을걸?

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그런 게 어딨어?

궁금하면 네가 가서 먹어보든가...

아니야. 언니가 못 먹는다면 못 먹는 거겠지... 근데 왜 못 먹는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여기 올 때부터 저렇게 있었잖아.

그랬지?

그래서 생각했어. 장난감 같은 거일 수도 있다고...

아~ 그렇구나...


언니, 여기 의자들이 왜 이렇게 많아?

음...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오나 보지.

그래? 그런데 왜 아무도 없어?

글쎄... 그건 나도 몰라.

몰라?

응.

왜 몰라?

모를 수도 있어.

아~ 그렇구나...


언니, 여기 빨간색 길이 있잖아.

우리 지금 서 있는 곳?

응.

그게 왜?

왜 빨간색으로 길을 만들어놨을까?

글쎄... 이쁘라고??

아~ 그렇구나...


언니, 우리 지금 입은 옷 이름이 한복이지?

응. 맞아.

내꺼는 공주옷 같잖아. 그런데 언니 옷은 다르네?

응. 알아.

언니도 내꺼처럼 예쁜 공주옷 같은 거 입고 싶지 않아?

아니? 난 이게 더 마음에 들어.

왜?

여기 길도 빨간색이지? 내 치마도 빨간색이잖아.

그게 왜?

여기에서는 빨간 치마가 더 공주옷 같아서...

아~ 그렇구나...


("내 거"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지만 "내꺼"라고 적는 것이 더 어울려 단어 퇴고는 안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참 신기해요. 양력설과 음력설을 다 챙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만 있다고 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말로 2022년을 연 지 한 달이 지난 오늘 다시 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하는 날이 찾아왔네요... 복을 빌어주고, 인사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겠죠? ^^


올 구정 연휴는,

배려하고, 챙겨주고, 아껴주며,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주는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바라봅니다.

2022년!! 건강하고 많이 웃는 한 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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