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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r 14. 2022

꽃은 춤추고 바람은 노래하는 계절

(에피소드) 봄이 오면 생각나는 노래 [별, 남촌, 추천가]

꽃은 춤추고 바람은 노래하는 계절


"1학년 4반에서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 손!"


2교시 쉬는 시간,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며 영어 선생님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곁눈질을 하더니 이내 웅성웅성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선생님은,


"얘들아~ 혹시 피아노 배운 사람 없어??"


한껏 목소리를 높이더니 간절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선생님을 주시하던 한별이는 머뭇거리며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어? 한별? 너 피아노 칠 줄 알아?"

"네..."

"어휴 다행이다. 우리 반에 피아노칠 줄 아는 녀석이 한 명도 없어서 반마다 지원군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잖니... 미안한데 우리 반 좀 도와줄 수 있어?"

"네..."

"고마워~ 이따 6교시 마치고 1학년 6반으로 오면 돼. 알았지?"


선생님이 돌아간 후 아이들은 우르르 한별이 곁으로 다가왔다.


"꺄~~~~ 너 남자반 피아노 치러 가면, 경훈이도 볼 수 있겠다."

"1학년 6반이면 민석이가 있는 반 아니야?"


저마다 남학생들 이름을 하나씩 읊어가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좋겠다... 피아노 칠 줄 알아서... 우리 엄마는 피아노 좀 가르쳐주지 맨날 무슨 주산, 태권도 이런 학원만 보냈나몰라."

"그러니까... 한별이는 좋겠다. 그럼 한 달 동안 매일 1학년 6반에 가겠네?"


정작 반주를 맡은 한별이 보다 아이들이 더 들떠서 난리법석이다. 왁자지껄 난리통을 뚫고 반장이 다가오더니,


"야~ 그럼 우리 반 합창은 어떻게 해... 너 소프라노잖아. 6반 연습시키러 가면 우리 반 연습은 못 하는 거 아냐...?"


뾰로통한 표정의 반장은 싫은 내색 일색이다.


"그래서 손을 안 들려고 했는데,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쳐서..."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우리 반도 연습해야 하는데 넌 입만 뻥끗뻥끗하려고??"


화가 나도 단단히 났다.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게 있나?' 싶었지만 이럴 때는 입을 꾹 다무는 것이 상책이다.


새봄중학교의 춘계 합창대회는 지역에서 꽤 유명했다. 학부모 초청 행사였고, 국회의원과 장학사, 지역 인사들도 초청되어 축사를 했다. 해거리로 하는 합창대회가 올해 있으니 한별이는 1학년, 3학년 두 해 동안 합창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셈이다.


합창대회지정곡 한 곡과 자유곡 한 곡이 주어진다. 전 교생이 참가하는 연간 행사 중 제일 큰 행사였다. 합창대회가 마쳐지면 엄선된 심사위원들의 평가 점수에 따라 학년별로 1, 2, 3등을 뽑고, 각 학년 1등 중 전 학년 1등을 차지한 반은 전국 청소년 합창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상장과 풍성한 상품이 수여되는 교내 합창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모두 연습에 진심을 다했다.


새봄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여자 4반, 남자 8반으로 성비가 맞지 않아 분반으로 운영되었다. 남관에는 여학생반이, 동관에는 남학생반이 있어 ㄱ자로 꺾인 계단에서만 남녀 학생들이 마주쳤다. 남녀공학이라고 해도 사실상 남학교, 여학교와 진배없었다.


등굣길 교문을 들어서면 남학생들이 창문 너머로 몸을 반쯤 걸친 채 예쁘장한 여학생들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댔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져도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풋풋한 감정까지 어찌 막으랴... 선생님 심부름이 아니면 남학생 교실에 여학생이 들어갈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한별이가 6반에 반주 지원을 나가게 된 일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한별이도 합창 연습을 해야 하므로 4반과 6반 반장은 일정 조율을 했다. 4반이 전체 연습을 하는 날, 6반은 파트 연습을 했다. 4반이 파트 연습을 하는 날은 한별이가 6반으로 반주 지원을 나갔다. 한별이는 반주자 없이 연습하는 6반을 위해 파트별로 녹음을 해서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한 달간의 합창 연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해, 1학년 4반은 춘계 합창대회에서 1학년 전체 1등을 했다.


지정곡 "별"


4반 자유곡 "추천가"


6반 자유곡 "남촌"


중학교 1학년 합창대회에서 3학년 남자 선배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홀딱 반해 발을 동동거리던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가서 말이나 시켜볼걸, 여린 소녀는 이름조차 묻지 못했네요. 그때 그 선배가 피아노로 쳤던 "별"은, 제가 쳤던 별과 많이 달랐습니다. 악보 그대로 치는 저와 달리, 피아노의 88 건반을 모두 사용하는 스킬로 현란하게 연주하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설레던지요. 그 후 지금까지도 남성 피아니스트를 보면 마음이 울렁입니다. 아쉽게도 남편은 피아노만 빼고 악기를 다루네요. 동글이가 피아노를 좋아하니 제 마음을 설레게 했던 소녀 감성이 동글이를 통해 되살아날지 아들의 성장을 기다려봐야겠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교과서에 수록된 [남촌]을 가르치시며 가곡 "남촌"을 불러주셨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남촌"을 떠올리면 아이들 앞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시던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봄이 되니 저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 노래, "남촌"을 함께 듣고 싶습니다.


봄맞이로 설렘 가득한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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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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