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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y 09. 2022

"선생님, 덕분에 잘 자랐습니다."

"살아있는 것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품고 살아라!"

말을 잃은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한쪽 구석진 자리에서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던 아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미리 챙겨 온 소설책 따위를 읽거나,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을 자던 아이, 누군가 말을 붙여도 단답형 짧은 추임새에 그쳤던 아이, 교실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던 아이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번째 담임선생님.


선생님 시선에 아이가 머문 것은 운명이었다. 한 줄기 빛과 같던 선생님의 관심은 외로운 아이에게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몇 해가 지난 후 선생님께서는 아이에게 '그땐 네가 위태로워 보였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마음이 쓰였노라며 밝아진 아이가 신기하고 놀랍다 말씀하시며 기뻐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일기 쓰기 과제를 내셨다. 반 아이들의 원성이 있었지만 아이에게 일기 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매일 쓰던 일기였다. 일기장 바꾸기도 귀찮았던 아이는 그대로 냈다. 훗날 알고 보니 위태로운 아이에 대해 알고 싶은데 아이에게만 일기장을 내라할 수 없어 반 전체 아이들의 일기장을 걷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이가 궁금했던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셨고, 숙제조차 선생님의 배려였음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가끔씩 불러 근황을 물어보셨고,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다. 아이가 보낸 편지에 정성스러운 답장도 주셨다. 집에 초대하여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셨고, 삶에서 사춘기에 겪는 외로움과 갈등은 누구나 겪는 일이니 조금 힘들어도 기운을 잃지 말라 조언해 주셨다. 아이에게 선생님의 관심은 안정감을 선물로 주었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中>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의 편지

두 번째 담임 선생님.


작은 키에 목소리가 다부지셨던 한문 선생님은 아이가 2학년 때 결혼을 하셨다. 반 아이들 모두 축가 연습을 하고 결혼식에서 58명의 아이들이 합창을 했다. 신랑, 신부와 하객 모두 기쁨의 눈물로 화답해 주었다. 기억 속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생님께서 수업 중 말씀해주신 '잠'에 대한 철학은 살아가며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지침이 되었다. 열다섯 제자들에게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고, 허투루 쓴 시간으로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라며 조언해 주셨다.


그때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깊이 와닿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다시 꺼내 본 편지 속에는 사람이 살아가며 잊지 말아야 할 주요한 진리가 숨겨져 있었다. 고이고이 모아둔 편지는 그 어떤 책 보다 소중한 기록이고 선생님께 받은 사랑이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中>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의 편지


대문 사진 : 중학교 2학년 국어 선생님께서 적어 주신 한용운 님의 '시'


그리운 선생님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선생님...
열넷의 소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까지 매해 선생님을 찾아뵙고, 편지도 보내 드렸었는데 사는 것이 분주하여 이후 삼십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안부조차 여쭙지 못하였네요. 죄송합니다. 세월이 흘러 선생님께서는 정년을 맞이하셨을 듯합니다. 건강하신가요? 선생님?   

중학교에 갓 입학하였을 때, 키워주신 할머니와 사별하고 사춘기를 겪으며 많이 힘들었습니다. 또래와 달리 조용하고 말 없던 저를 사랑으로 살펴주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제가 드린 편지마다 답장을 주셨던 것도 엇나갈까 염려하신 선생님의 배려임을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선생님 댁에 갔던 날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거실에서 보이던 푸른 산도, 선생님을 닮은 예쁜 아이도 사진처럼 남아있습니다. 함께 쌀보리,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미리미리미리 뽕 주먹 뽕, 가위 뽕, 보자기 뽕 아무거나 냅시다!' 불렀던 노래도, '아침 바람 찬바람에' '꼬마신랑' 율동을 함께하며 까르르 웃던 그날의 모습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사춘기를 호되게 보냈던 열네 살 소녀는 열아홉, 열하나 두 아이 엄마가 되었고, 자주 바뀌던 진로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소녀가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바로 잡아 주신 덕분에 거친 비포장도로와 같은 시기를 딛고 올곧게 제 길을 찾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해가 바뀌고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삶이 분주하여 잊고 지냈습니다. 서른 조금 넘어 찾아뵈려 하니 전근 기록이 어느 순간 끊어져 연락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잊고 지냈던 시간들이 죄송하고,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음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찾다가 멈춰버린 그때로 돌아가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고 싶습니다.

오십이 다 되어서야 선생님을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으려니 죄송한 마음이 더해집니다. 다시 뵐 그날을 기대하며, 선생님의 발자취를 찾아 꼭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열넷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가 선생님을 찾아 뵐 수 있도록 내내 건강하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편지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2022년. 5월. 9일. 로운 올림.)

5월 2주(5.5 ~ 5.14) 스승의 날 특집 "선생님"


● 스승 :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
● 선생님 :
1.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두루 이르는 말
2.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성 또는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존대하여 이르는 말

(출처 : 다음 어학사전)


'스승의 날'

있지만 없는 것 같이 유명무실하게 지나가는 날이 된 지 오래입니다. 차라리 공휴일로 지정하여 출근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동료 교사들과 스승의 날이 12월이나, 2월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새 학년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스승의 날이 있으니 참 애매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정든 선생님을 뒤로하고 새 학년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좀 이상합니다. 학기초에 있으니 마치 잘 보이려고 하는 행위인 듯 보일까 멈칫거리게 됩니다. 학년을 마칠 즈음 스승의 날이 있다면 마음을 전하는 작은 선물에 오해가 생길일도 없어 보입니다. 가정의 달에 어 5월을 기념일로 도배할 것이 아니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지혜롭게 분배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와 선생님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긴밀하게 형성된 관계에서 더 나은 상승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님도 서로의 관계에 소원해진 것 같습니다. 청렴학교로 촌지가 사라지고, 학부모의 학교 참여가 줄어든 것도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행위'조차 사라진 요즘,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이들에게 학창 시절 기억하고 싶은 선생님, 성인이 되어서도 찾아뵙고 싶은 선생님이 계신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은 그나마 선생님의 성함과 몇 학년 때의 선생님이라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지만, 중학교 이후의 학생들은 시큰둥합니다. 선생님을 직업의 한 형태로 바라보기도 하고, 선생님의 교과지도능력,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와 훈육방법 등등의 이유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기억을 먼저 떠올립니다. 앵글이도 예외는 아니라서 안타까울 때가 습니다.


저 또한 직업이 교사이기에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열심을 다해봅니다. 맡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지대한 관심으로 다가가려 하고,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는 마음을 나누려고 애를 써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를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2022년, 스승의 날을 맞아 그동안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과 가르쳤던 학생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상처를 주었던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청산 작가님의 [교사는 노동자인가]입니다.

4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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