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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09. 2023

엄마, 그땐 철이 없어 엄마맘을 몰랐어요

보글보글 1월 2주 차 "졸업"

"요즘 길거리에 졸업식 꽃다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던데 너희 학교는 졸업식이 언제니?"


엄마의 질문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난주에 했는데요?"


라고 답했다. 순간 엄마는 정색을 하며 버럭 화를 내셨다.


"12년을 학교 보내고 20년 키워놨더니 조금 컸다고 저 혼자 컸는 줄 알지!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니?"


듣고 보니 엄마의 말도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왜 난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저 별 생각이 없었다. 졸업이 달갑지 않았던 건지, 북적이며 유난 떨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 모든 이유가 다 인지, 그리 중하다 생각되지 않았다.


"졸업식이 뭐 대단한 날이라고... 친구들도 혼자 온 애들 많았어요."


화를 부르는 답이었다. 딱히 핑계 댈 말이 없어서 한 소리였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지고 얼굴은 상기되었다.


"뭐!!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니?"

"엄마가 졸업식을 중요하다 생각하실 줄 몰라서... 죄송해요."


사실 난, 그다지 죄송하지 않았었다. 얼른 이 잔소리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을 뿐...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졸업이 대수롭지 않았고,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채 홀로 졸업장을 받아온 것,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 졸업을 묻는 엄마에게 시큰둥 대답했다가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이 좀 낯설었다는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사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중학교 졸업식 이후,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이후 각종 졸업식이 있을 때마다 난 혼자 갔다. 가족도, 친구도 부르지 않았고 때로는 졸업식 날짜를 훌쩍 넘긴 후 졸업장만 수령하러 간 적도 있었다.


보글보글 1월 2주 차 "졸업"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딱 내 아이 자라는 만큼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앵글이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불쑥 나의 고등학교 졸업 즈음이 떠올랐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사춘기가 고3 때 시작되었고, 늦깎이 사춘기를 호되게 겪었던 것 같습니다. 졸업식에 가족들을 초대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알량한 반항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앵글이에게 졸업식에 가족을 초대하지 않았던, 엄마에게 말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열아홉 나'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열아홉 딸'의 마음을 엿보며 그때의 심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후 졸업식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학생들은 강당에서, 하객들은 각 교실에서 모니터로 졸업식을 관람하다가 졸업식이 마쳐지면 자녀를 찾아가 사진을 찍습니다. 앵글이는 친구들을 매일 만날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운지 친구 찾아 삼만리를 떠났습니다. 남은 세 식구는 앵글이가 우리에게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마음껏 아쉬워하고,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강당에서 교실로 올라와서도 풍경은 여전합니다.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도 여전히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앵글이의 사진사가 기꺼이 되어주었습니다. 의무교육 12년을 마칠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앵글이의 졸업을 기념하며 아빠가 그린 가족화

집으로 돌아온 앵글이는,


"엄마, 나 오늘부터 고졸이야. 지금 이 시간부터 소속이 없어졌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고... 음, 그럼 난 백수인가? ㅎㅎㅎㅎㅎ 동글아~ 누나는 오늘부터 고졸이야. 음... 동글이는 그럼 유졸? 아니, 어졸인가?"

"누나~ 어졸이 뭐야?"

"넌 유치원이 아니라 어린이집을 졸업했잖아. 줄여서 어졸... ㅎㅎㅎ"


해맑은 두 아이의 말놀이를 들으며 평안한 오늘이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엄마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했던 옛 기억이 솟았습니다. 엄마가 화를 내셨던 그때 그 마음은 서운함이셨겠죠. 무뚝뚝하고 살갑지 않은 딸이 어렵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내가 엄마의 나이로, 두 아이가 내 나이로 다가오면서 깨닫게 되는 이해와 사랑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내 일을 하느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고, 어린 딸을 돌볼 여력이 없어 시어머니께 양육을 맡겨 키우다 보니 엄마와 딸 사이의 잔정이 덜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젊은 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려다 보니 겪을 수밖에 없던 빈자리를 그때의 어린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역시 당연한 걸지도 모릅니다.


앵글이의 졸업과 함께 나도 내 아이의 졸업을 처음 겪으며, 30년 전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제 조금쯤 알 것도 같습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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