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War(2024)>
수다
<시빌 워>의 예고편을 본 건, 작년 초였던 것 같다. 'A24' 제작이라는 소식 말곤 특별히 기대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미국에서 <시빌 워>가 개봉하고도 그럭저럭한 평을 받는 걸 보며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오고, 한국의 정치상황이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하며 점차 이 영화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포토저널리즘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선, 관심이 세포분열하듯이 증식했다. 때마침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이 생겨 책과 사진을 뒤적이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를 예매하두고 전날 밤에 <시빌 워> 보는 꿈을 꿨으니 말 다 했다.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바로 후기를 쓰려 했으나, 졸림+귀찮음 관계로 목차만 써두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관저로 경찰과 공수처가 들어가는 뉴스가 나왔다. 기시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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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 필름과 디지털
먼저, 두 포토 저널리스트가 쓰는 카메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베테랑인 '리(커스틴 던스트)'는 SONY의 알파7 R4 바디에 라이카렌즈(확실친 않지만 라이카 렌즈 후드는 분명 썼다)와 망원 줌렌즈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고 싶은 '제시(케일리 스패니)'는 니콘의 FE2와 바디에 달린 렌즈 하나만을 사용한다(적어도 렌즈 교체 장면이 영화상 등장하진 않는다). 프로는 디지털을, 뉴비는 필름을 사용하는 상황이다.
보도사진(용어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다던데, 여기선 편의상 보도사진이라 쓴다)을 촬영할 때 필름은 치명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필름카메라는 초점과 노출 조정 등 기술적인 숙련도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필름 한 롤의 개수만큼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총을 재장전하듯이 새 필름 롤을 재장전 해야한다. 현장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보도 사진의 특성상 제한된 촬영 횟수는 큰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디지털 카메라는 이런 일이 발생할 걱정을 애초에 할 필요가 없다. 여전히 필름 카메라가 존재하고 사용되지만, 보도사진에서는 디지털 카메라가 주로 활용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퓰리처상 사진을 촬영한 카메라 모델만 확인해보더라도 디지털 카메라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필름은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필름은 촬영된 사진을 물리적으로 저장한다. 필름에 맺힌 상은 'Delete'키를 누른다고 삭제할 수 없다. '리'는 '새미'의 죽음을 촬영한 사진을 삭제하지만, '제시'는 '리'의 죽음이 기록된 사진을 삭제할 수 없다. '리'의 죽음에 셔터를 누른 '제시'의 본능적인 행동은, 앞으로 '제시'를 평생동안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성장시킬 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진이 될 순간을 기록한 '제시'는 포토저널리스트가 되고, (아마도)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며 현장을 누비겠지만 그녀가 눌렀던 필름카메라 셔터의 묵직함을 잊진 못할 것이다.
▶불나방
'새미'가 총격을 입은 후, '리' 일행은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내달린다. 그러던 중 산불 지대를 통과하게 되는데, '새미'는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자신을 덮쳐오고있지만, 불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한다. 영화는 생존과 죽음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불을 지독하게 아름답게 연출한다. 생사가 공존하는 불의 이미지가, 생사가 공존하는 현장과 동일하다고 놓고 보면, 포토저널리스트들은 그 현장의 아름다움에 불나방처럼 이끌리는 것이다.
'위험하기 때문에 약간 두려움 반 왜냐하면 눈 앞에서 무엇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또 반은 몸 안에서 솟구치는 이 아드레날린'
- YOUTUBE 지윤&은환의 롱테이크 채널 [퓰리처상 수상 사진 기자가 알려주는 사진 잘 찍는 법] 中
로이터 통신 김경훈 기자의 위 말이 머리를 스쳤다.
▶Shooting
좀 유치한 지적이긴 하지만, 총과 카메라는 모두 shoot을 하는 도구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속담의 '펜'과 '칼'은 이제 '카메라'와 '총'으로 대체되는 시대다. 두 도구의 차이점이 있다면 총의 shooting은 살인만을 위한 것이지만, 카메라의 shooting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시빌워>의 마지막 백악관 시퀀스에서 셔터와 방어쇠는 함께 당겨지며 일종의 화음을 쌓는다. '리'는 등 뒤에서 총알을 쏟아내는 기관총과 연사를 갈기는 '제시'의 카메라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한다. 살인도구와 소생도구 사이에서 사로잡힌 '리'는 의학적으론 사망하지만 필름에 포착되어 순간을 영원히 살게된 것이다.
▶내전은 은유일 뿐
영화 제목인 <Civil War>의 양상은 영화 내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군vs서부군의 구도만 드러날 뿐이다. 그래서 내전의 격렬한 전투 시퀀스를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대신 영화는 세계 곳곳에서 지금 현재진행형인 여러 모습을 미국 내전 속에 심어두었다. 민간인 학살, 자폭 테러, 전쟁에 눈을 가리고 모른척 하는 사람들, 정부의 붕괴 등 미국에서 일어난 적 없고(아마?) 그래서 미국인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영화에 담았다. 미국인에게 이 영화는 허구이지만, 비(非)미국인에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이렇게 영화로라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미국인들이 제발 세계 곳곳의 분쟁을 실감해보길 바라는 연출가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비약일까.
▶어떻게 보도되는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총격전, 사적 제재, 민간인 학살 등 각종 보도 사진이 촬영되지만, 해당 사진이 어떻게 보도되는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왜곡되고, 어쩌면 가짜뉴스라고 보도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해당 부분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리'는 그저 현장에서 찰나를 포착할 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풀에서의 20일>에서는 AP통신 기자들의 취재과정과 촬영한 이미지가 어떻게 보도되는지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촬영된 이미지가 러시아의 선전에 활용되어 촬영의도가 곡해되는 모습까지 담아낸다. <시빌워>에는 이런 모습까지 등장하진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이미지가 그럼에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우직히 촬영하는 포토저널리스트만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때로 의도보다 결과가 더욱 중요해지는 씁쓸한 순간이 존재한다.
▶기록 저널리즘의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
<시빌워>는 로드무비다. 워싱턴 DC까지 1000km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공간적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동시에 <시빌워>는 기록매체의 발전사를 역행하는 시간적 여정도 담고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을 포착한 건,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제시'의 흑백 필름카메라다.
비디오와 오디오를 갖춘 방송용카메라는 대통령 사살 현장과 무관한 엉뚱한 곳에서 녹화를 이어가고 있고,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던 '리'는 대통령 집무실 복도에서 사망한다. 결국 현장을 기록한 건, 최초의 기록매체였던 흑백 필름이었다. <시빌워>는 내전이라는 혼란 속에서 기자들마저 사살당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근원으로 돌아가 기록의 가치를 건져내자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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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
본론을 길게 적긴 했지만, 가슴보단 머리로 와닿는 영화였다. 한국전쟁의 사진, 4.19와 5.18의 영상, 그리고 해당 이미지를 재가공한 영화를 보며 자라온 한국인에게, <시빌워>는 팔자좋은 미국인의 허구 이야기로 다가왔다고 말하지 않으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 그리고 IMAX로 봐서 그런지 총소리와 전투기 소리가 군대에서 들었던 실제 소리의 크기와 비슷해 여러번 깜짝 놀랐다. 덕분에 군대 PTSD가 떠올랐으니, 영화는 의도한바를 달성했다고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