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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Aug 04. 2023

책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땐 미래를 그리자

뚜렷한 꿈은 의욕을 솟구치게 하는 초전도체가 된다


  무더운 여름이다. 이런 날에는 쉽게 지치고 불쾌지수도 높기 때문에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7급 수험생이라면 당장 임박한 2차 시험에 눈코뜰 새 없이 달릴 유인이 있겠지만, 행시생에게는 요즘만큼이나 공부하기 어려운 시기가 없다. '하.. 공부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하루하루 허비하기 십상이다.


  2차 시험(6월 말~7월 초) 모든 걸 불태워 체력이 바닥난 데다, 2차 특성상 가채점이 불가능해 합격 여부를 알 도리가 없으니 모두가 '예비 합격자'의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공부가 손에 잡힐 리 없다. 그렇지만 남들보다 앞서가려면 모두가 쉬는 이 시기에 공부해야 한다. 타고난 천재가 아니고서야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는 대동소이하고, 하루에 공부에 쏟을 수 있는 시간도 큰 차이가 없다. 결국 당락을 가르는 건 '공부하는 방식'이 얼마나 현명했느냐, '얼마나 밀도 있게' 공부했느냐, 그리고 '투자한 시간'이 얼마나 많으냐 정도다. 이중 마지막, '투자한 시간'에서 남들보다 차이를 둘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모두가 쉬는 '2차 시험 직후'다.


  행시생 기준, 매년 9월부터 6월까지는 모두가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나 7~8월은 대부분 논다. 경험상 7월에 풀어진 마음을 8월까지도 바로잡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의 8할은 되었다. 물론 1년 간의 레이스를 재시작하기 전 휴식은 필수다. 그러나 7월 한 달이면 충분하다. 8월은 다시 달려야 한다. 같은 시험을 10개월(9월~이듬해 6월) 준비하고 보는지, 11개월(8월~이듬해 6월) 준비하고 보는지는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후자가 전자에 비해 10%나 더 공부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나태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접 겪어본 입장에서 오늘은 풀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방법을 한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 나는 이런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나는 공부를 시작할 무렵, 복지 정책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순히 복지부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사회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내내 했던 생각은 복지 정책은 결국 다 '돈'의 문제로 귀결됨에도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원은 어떻게든 마련되겠지, 누군가 기부해 주겠지~ 이런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많은 비영리조직이 결국 수익창출 구조를 만들지 못해 사라지듯, 재원 마련 방안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지 않는 복지정책은 국가의 쇠락을 낳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재정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재부에서 정부의 운영 구조를 재정적,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10년 정도 일하다가 복지부로 넘어와, 재정적 측면을 고려한 복지정책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

  이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는 데에는 2~3년이 걸렸다. 공부하며 점차 합격하는 친구들, 선배들이 늘어날수록 부처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조직문화가 어떤지 들을 일이 많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재부에서 일하다가 복지부로 전입해 커리어를 이어가겠다는 생각이 '내 삶'에 얼마나 나쁜 짓인지 깨달았다. 부처를 옮기는 일도 쉽지 않지만 (기재부는 한번 들어온 사람을 내보내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보다 내가 과로에 시달릴 게 분명했고 행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표를 대폭 수정했다. 그다음 목표는 공정거래위원회였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는 그 일이 너무도 멋져 보였다. 재경직렬 합격생 중 최상위권만이 공정위에 가는 걸 보면 다들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수석들이 많이 간다) 공정위가 멋지고 매력적인 일을 한다는 데에는 아직도 동의하지만, 직렬을 바꾸면서 (재경→일행) 공정위는 선택할 수 없는 꿈이 되었다.


  마지막 목표는 '내가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 목표는 이루게 되었다. (1지망 부처에 합격했으니 이루었다고 봐야겠지?) 수험생일 때 꿈꿨던 그 일을 직접 맡으니, (오글거려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일하는 중간에도 문득 벅찬 보람을 느끼곤 했다.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손에 익은 업무를 놓아야 할 때면 여자친구와 이별하듯 홀로 오래 속앓이를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수험생일 때 그렸던 허무맹랑해 보이던 그 꿈들이 결코 '허무'하지도 '맹랑'하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오늘의 나는 몇 년 전 꿈꾸었던 그 일을 하고 있다.


2. 어떤 공무원이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어떤 공무원이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너무 정보가 없다고? 우선 관심 가는 부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직도를 살펴보자. 과 이름을 보면 대략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이 부처가 소관 하는 업무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직도, 대략 무슨 업무를 하는지 파악하기 좋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예로 들어보자. 공정위에 들어가면 위 조직도에 명시된 곳 중 하나에 반드시 들어가게 된다. 이중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과를 생각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는 식으로 목표를 구체화해 보자. 너무 주제넘은 생각 아니냐고? 절대 아니다. 합격하게 되면, 공정위를 지망하게 되면 면접장에서 하게 될 말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일 뿐이다. 훗날 멘트가 거짓말이 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지금 꿈을 미리 그려두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000입니다. 저는 고시 공부를 처음 시작하던 때부터 공정위를 꿈꿨습니다. 조직도를 펼쳐 공정위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파악했고 그중 시장감시국과 카르텔조사국의 업무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이하 생략)"


  이렇게 가고 싶은 과를 정했다면, 독서실 책상이든 어디든 붙여두자.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 국제카르텔조사과 000사무관". 이 문구를 여러분의 명함에 새길 그날을 고대하며 마음을 다잡자.

 

3. 5년 뒤 내 모습을 그려보자


  가고 싶은 부처를 정하는 것도 모자라, 5년 뒤 내 모습까지 상상하라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이때 내 모습이란 '내가 하는 업무'를 상상하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모습'을 상상하라는 이야기다. 옷이든, 차든, 외모든 뭐든 좋다. 외적으로 비치는 나의 이미지, 역할 등을 생각해 보자.

  나는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를 보며 공부 의욕을 키웠다. 드라마에서는 중앙부처 사무관이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데, 일할 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퇴근 후 넓은 아파트에 들어와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뽕(?)이 차 올랐다.

  그 드라마를 본 게 약 6년~7년 전인데, (아마 지금과 비슷하게 공부가 안되던 여름쯤에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랍게도 지금 내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로봇청소기 돌리고 쉬고, 가끔 날이 좋으면 퇴근하고 곧바로 호수공원으로 가서 자전거를 타곤 한다. 특별한 하루가 아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일상이다 (물론 야근하는 날이 더 많다)


퇴근길 노을이 예뻐 무작정 자전거에 올라탔던 어느 가을날 (세종 호수공원)


  그 외에도 멋진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이나, 좋은 차를 몰고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 큰 회의장에서 회의를 주재하거나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정책설명을 하는 모습 등.. 꿈꾸던 그 모습들을 더 구체화해 공부 의욕을 끌어올리자.


마음껏 꿈꾸자. 아참, 우리 역할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다 (출처 : 전자신문)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수험생 시절에는 합격 후 어떤 일을 할지, 합격하면 내 모습이 어떨지를 주제넘는다고 생각해 꺼리는 경향이 있다. '에이 PSAT도 겨우 합격했는데 벌써 김칫국 마실 수는 없지'라는 식이다. 그러나 꿈에 대해 '주제넘는다'는 평은 적절하지 않다. 주제넘지 않으면 그게 꿈이란 말인가. 현실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우니 꿈인 것이다. 정말 잘 다듬어진 꿈은 마치 초전도체처럼 여러분의 의욕을 그치지 않고 뿜어 나오게 해 줄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꿈을 꾸자.


  여러분 누구나 뚜렷한 목표를 잡고 최선을 다 한다면 몇 년 뒤에는 퇴근 후 동기들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거나, 노을질 무렵 음악 들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집에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TV 리모컨을 손에 쥘 수 있다. 희망하는 부처에서 꿈꾸던 업무를 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자신을 그려보자. 고대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여러분 눈앞에 현실로 펼쳐질 것이다. 그때 꼭 이렇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아 할때하자님이 그때 그렇게 말했는데,, 진짜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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