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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Jan 03. 2022

이렇게 공부하면 불합격한다

그 시절 나의 잘못된 다짐들

  새해가 밝았다. 매일 비슷한 일을 하고 현안에 치여 살다 보니 한 해가 훌쩍 가버렸다. 2021년은 코로나 때문에 반쯤 가린 얼굴처럼, 반쯤은 잃어버린 듯 지나갔다. 이 어두운 시기에 공부하는 여러분들은 더 힘들겠지만, 어떻게 보면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하고 여행도 가지 못하는 이 시기에 차라리 공부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2020년 이후에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맘 편히 놀지도 쉬지도 못하고 일을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 고시에 합격한 내 입장에선 합격 후 만끽하는 자유가 얼마나 행복한 지 너무도 잘 알기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러분이 합격할 즈음엔 분명 지금보다 나은 상황일 테니, 어차피 놀지도 못할 거 공부나 한다 생각하고 새해 마음을 다잡길 바란다.

   



  오늘은 내가 고시생이던 4년 반 동안 스스로 세웠던 목표와 다짐 중, 이제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해볼 참이다. 나도 누군가가 그러지 말라고 조언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수험생끼리는 서로의 공부 스타일에 대해 조언할 처지가 못 되기에 수험기간 내내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PSAT 이야기보다 이 글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1.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대로 인강을 듣겠어!


  군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나는 시간을 내 짬짬이 인강을 수강했다. 다소 특수한 곳에서 군 복무를 했기에 주간 근무와 야간근무가 교대로 있는 시스템이었고, 내 체력만 된다면 매일 인강을 들을 수 있었다.

  패기 넘치는 초시생이던 나는 2013년 공부를 시작하면서 (14년 초 전역예정이었다) 전역 후 신림에 들어가 3순환을 수강하고 바로 최종 합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곤 13년 말까지 1년간 예비순환부터 1순환, 2순환까지 모두 완강하고 전역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 와서 보면 그 계획은 나의 수험기간을 최소 1년에서 2년은 늘린 잘못된 것이었다. 12개월 동안 예비-1순환-2순환을 듣는 계획은 보통의 수험생이라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계획이지만 나는 나의 신분이 주는 한계를 간과했다. 군인 신분으로 일반 수험생보다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음에도 정신력으로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녁 여섯 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하는 야간 근무일에도, 새벽 내내 출동이 반복되는 와중에 사무실에 돌아오면 쉬는 대신 책을 붙잡고 공부했고 (원래는 출동 없을 때 짬짬이 잠을 청해야 아침까지 버틸 수 있다) 심지어 퇴근 후에도 자는 대신 인강을 듣거나 공부를 했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2014년 새해가 밝을 때 계획대로 2순환까지 인강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전역 후 3순환 강의를 들을 때 강의 내용을 거의 따라갈 수가 없었다. 답안을 작성하면 50점 만점에 10점대 받는 날이 수두룩했다. '올해 내로 완강한다'는 목표 탓에 배운 내용을 이해했는지와 관계없이 인강을 일정에 맞춰 듣는 데 급급했고 결과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을 수없이 놓쳐가며 데드라인만 맞췄던 것이다.

  당시에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놓친 부분이 있어도 얻은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앞으로 공부하면서 놓친 개념들을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 과목에 등장하는 여러 개념 간에도 중요도와 우선순위가 나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수요공급곡선을 이해하지 못하면 학파 간 견해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되는대로 이해하면서 퍼즐을 맞추듯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정량적 계획'만을 갖고 내가 얼마나 소화하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덮어두고) 공부한 결과 2순환까지 인강을 다 들었음에도 3순환 수강할 때 모르는 내용이 많아 고생을 많이 했다. 한 해만 힘들었던 게 아니다. 수험기간이 3~4년이 지나서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기본개념이 남아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지막에는 기본서로 돌아가 초시생의 마음으로 기본서를 정독하며 내가 잘못 이해한 것들을 '색출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했다.  


  인강을 하루에 3개씩 꼬박꼬박 듣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무 빨리 뛰려 하면 넘어지기 마련이다. 공부는 건축과 비슷하다. 청사진을 그린 후 토대를 다지고 주춧돌을 세우고 골격을 잡아가며 한 층 한 층 차례로 올려야 한다. 건물을 빨리 완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갖은 풍파(어려운 문제)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건물을 짓는 것이다. 아기돼지 삼 형제 동화를 어릴 때 읽히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느리더라도 성실하게 튼튼한 벽돌집을 지어야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잊지 말자. 당장은 남들보다 느리다고 느껴져도 속도에 연연하기보다는 기초를 다잡는 공부를 하자. 성실한 것과 빠른 것은 다르다. 빠르게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고 불성실한 게 아니며 친구의 진도가 나보다 빠르더라도 불안해할 필요 없다. 느리더라도 올바르게 공부하자.


  내 주변 6개월, 1년 만에 합격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기본 강의를 착실히 듣다가 얼떨결에 붙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흔히 남들의 2~3배 속도로 공부해서 빠르게 붙었다고 착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남들보다 짧은 시간 내에 개념들을 올바르게 익혔을 뿐이다. 즉 빠른 합격은 남들보다 착실히 공부한 결과이지, 남들보다 빠르게 공부해서 얻은 결과가 아님을 명심하자.


 * 첨언 *

  이렇게 공부하면 하염없이 스케줄이 늘어지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아직 없었음) 덧붙이자면, 복습 시간을 계획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습할 시간도 확보하지 못한 채 진도 나가는 데 급급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지, 인강을 이틀에 한 개씩 들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겠다.


2. 휴식은 나약한 애들이나 하는 거야. 난 남들 쉴 때도 공부할 수 있어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나는 남들이 쉴 때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는 성격이었고, 나 자신에게 독하게 채찍질하는 성격이었다. 중학교 때는 새벽 3시까지 학원에서 자습을 했는데, 집에 와서 새벽 5시 라디오가 끊기는 시간까지 더 공부하곤 했다. 그렇게 공부하니 몸이 버티지를 못했는데, 당시 500원이던 레쓰비 캔커피로 잠을 달랬고 어느 날은 레쓰비를 5캔째 마시다가 속이 울렁거려 하루를 망친 적도 있었다.

  고3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상에서 졸기 싫어서 4시간에 달하는 야자 시간 내내 교실 뒤에서 서서 공부했다. 1년을 꼬박 그렇게 했다. 수능을 몇 달 앞둔 여름부터는 저녁시간에 친구들에게 빵 하나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빵셔틀 아님 ㅠ) 야자시간 시작할 때까지 쉬지 않고 공부했고, 야자시간 중간에 있는 쉬는 시간(20분)에도 쉼 없이 했다.


  이렇게 공부를 해서 어쨌든 원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했으니 내 딴에는 필승의 공부법이라고 생각할 법했다. 그런데 고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공부였다. 휴식 없이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합격하던 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출처 : 이말년씨리즈 '잠은행' (단언컨대 이말년 작가님 작품 중에서도 레전드 시리즈다)


  고시공부를 하던 초기 3년 간은 쉬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결심으로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과 중에도 강약 조절 없이 공부했다. 자리를 떠서 쉬는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고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청춘을 바쳐가며 (ㅠㅠ) 3년을 공부했는데 성적은 오히려 하락했다.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공부를 3년이나 하다 보니 몸이 축나서 예전 같지 않았다. 확실히 체력도 떨어졌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쳤다. 두 번째 시험을 치른 2015년에 비해, 무려 1년 더 (쉬지 않고) 공부했던 2016년의 시험 점수가 훨씬 낮았다. 2016년 시험 결과를 받아 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내 지난 1년은 무의미했다는 생각에 많이 좌절했다. 나와 함께 공부한 모두가 합격선에 근접했고, 일부는 합격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창피했다.

  처절히 반성했고 패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패인은 휴식 없이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에 있었다는 걸.

  

  휴식 없는 공부란 허상에 불과했다. 제때 쉬지 않으니 불규칙하게,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시간에 쉬게 되었다. 마치 위 만화의 장면처럼 일종의 '수면차압'을 당하곤 했다. 수면 차압만 당하면 다행이고 병이 나서 며칠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남들이 주 6일 공부하고 일요일 하루를 쉰다고 할 때, 나는 7일 내내 공부하면서 하루를 더 벌고자 했다. 처음에는 가능했다. 한달 두달도 쉬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고시공부는 일 년 내에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입시공부나 수능은 기껏해야 몇 달이거나 일 년 정도 하는 공부라 단거리 달리기처럼 스퍼트가 중요했다. 그런데 고시공부를 단거리 달리기 하듯 하니, 뜬금없이 다른 사람들 모두가 한창 공부하는 주중에 몸이 퍼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점점 휴식이 필요해지는 주기가 짧아졌다. 그 결과 남들 아무도 쉬지 않는 주중에 혼자 쉬고 있었고, 남들이 쉬는 일요일엔 죄책감에 젖어 혼자 독서실에 나가곤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언제 쉴 것인지 계획해두지 않고 '진짜 너무너무 힘들면 그때 쉬자'라는 애매모호한 휴식 기준을 잡았다는 데 있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쉴지 말지 결정하다 보니, 마음이 나약해지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휴식의 주기가 잦아졌던 것이다.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깨끗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규칙적인 휴식은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마지막 시험 보던 2017년, 나는 매일매일 점심식사 후에 반드시 20분은 낮잠을 청했고 잠을 잘 자기 위해 낮잠베개도 사서 독서실에 두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엔 맥주 한 캔과 닭강정을 사서 (딱히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아도 우선 샀다. 제사와 같은 일종의 의식행위였다) 예능을 한 편 보고 새벽 1~2시까지 핸드폰 하며 놀았다. 일요일엔 푹 늦잠을 잤고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은 뒤 카페에서 정~말 느린 속도로 느긋하게 주중에 밀렸던 내용이나 부족하다 싶었던 부분을 되짚어 보았다. 어쩌면 합격 요인 중 '계획적인 휴식'을 취한 것이 가장 주효했을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비밀(?)을 하나 얘기하자면, 내 필명 '할때하자'도 여기서 유래했다. 사실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쉬자'가 나의 모토였는데 필명으로 쓰긴 너무 길어서 살짝 줄였다. (ㅎㅎ)



3. 아무렴, 이젠 좀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지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운 문제만 풀었다. 기본기는 다 익혔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에서는 RAD-RAS, AK모형과 같은 난해한 모형들에 집중했고 행정법에서는 학설 대립도 복잡하고 암기도 어려운 파트에 치중했다. 기본적인 것들은 다 알고 있으니, 모르는 것들이 새로 등장할 때마다 두더지 때려잡듯 하나씩 잡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합격할 무렵에야 느낀 사실인데, 매년 기출문제를 보면 기본개념을 묻는 문제가 대다수였다. 소위 불의타(불의의 타격)라고 하는 낯선 문제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보통 '질문이 짧을수록 답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질문이 짧을수록 근본적인 물음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공부를 오래 할수록 기본 개념에 충실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사상누각식 공부를 해서는 안된다. 수험기간이 3년, 4년 길어질수록 기본서를 붙잡을 여유를 잃게 되는데 한 번만 초심으로 돌아가서 기본서를 정독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읽힌다) 기본서에 딸린 기초 문제들을 풀어보자.

  어려운 문제를 풀기에 앞서 기본적인 문제는 다 풀 수 있는지, 기본 개념은 숙지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경제학의 MRS의 개념은 무엇인지? 행정학에서 정치행정 일원론과 이원론을 구분하여 논의하는 실익은 무엇인지? 즉답할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 즉답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문제를 다 풀 줄 알고 기본 개념을 확실히 익혀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물어봐도 막힘없이 답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


4. 난 나를 믿어. 스마트폰이 있어도 딴짓하지 않을 수 있어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했던 거짓말이다. 이건 사실 다짐이나 목표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일종의 다짐(?)이니 짚고 넘어가려 한다.

  공부할 때 스마트폰 있으면 방해된다. 애초에 폰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폰이 있으면 연락도 오고, 세상 소식은 궁금해지고, 괜히 쇼핑도 하고 싶고, 웹툰은 또 왜 이렇게 재밌는지.

  공부할 때 나 자신을 믿는 건 중요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믿으면 안 된다. 무슨 말이냐고? 나 자신의 가능성은 믿되, 자제력은 믿지 말라는 이야기다. 여러분은 분명 능력 있고 대단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욕망을 자제하는 것은 원래 쉽지 않다. 스마트폰은 마치 절대반지처럼 여러분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잠깐만 보고 다시 공부해야지', '휴식 좀 취해야 하니 5분만 봐야지', '급한 연락이면 어떡하지 확인해봐야지', '아 오늘 야구하는데 소리만 끄고 켜 둘까' 등등.. 반지의 제왕에서 괜히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절대반지에 현혹되는 게 아니다.


(스포 주의) 절대반지를 제거하기 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뒤,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프로도는 절대반지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구글, 영화 반지의 제왕)

  나는 공부할 때 스마트폰을 원룸에 두고 출근(?)했다. 피쳐폰을 쓴 해도 있었다. 모두 초시생 때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가 계속해서 욕망에 굴복하고 (폰을 쓰고) 좌절을 반복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가능성은 믿되 나의 자제력은 믿지 말자.






  오늘은 고시생 시절 나의 패인들을 돌아보았다. 글을 끄적이면서 혹시 나만 이랬던 거 아닐까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이 들기도 하였지만, 내 경험상 사람은 다 비슷하다. 내가 했던 고민을 여러분도 하고 있을 것이고 내가 했던 실수와 실패를 여러분도 답습하고 있을 게 뻔하다. 새해가 되어 갖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을 텐데, 계획도 좋지만 마음속 다짐 중에 잘못된 것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2022년, 슬픈 일은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기쁜 일은 햇살처럼 오래 머무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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