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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Jan 03. 2023

나 고시공부 시작했어

더 이상 공부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말자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인사혁신처에서는 5급 공채 선발인원을 발표했다. 일행직 121명(지역직 19명 포함), 재경직 60명 등 총 305명을 선발한다고 한다. 당장 작년(2022년)만 해도 일행직 135명(지역직 20명 포함), 재경직 68명 등 총 322명을 선발했는데, 선발인원이 줄어든 연유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고시 선발인원이 더 늘어야 한다고 보지만, (중앙부처 사무관은 일이 너무 많다) 선발 인원을 이와 같이 결정한 데에는 여러 사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선발인원은 모든 수험생의 초미의 관심사임을 알지만,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체 선발인원의 7배수 선에서 1차 합격선을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PSAT의 관문이 좁아지긴 하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다면 PSAT을 올바르게 준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

  사족이 길었는데, 오늘 할 얘기는 선발인원과는 무관하다. 오늘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종의 멘탈관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1.  아직도 숨어서 공부해?


  생각해 보자. 내가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야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명절에 만나는 사촌들은 내 근황을 알고 있나? 친구들은 또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다수 수험생들은 자신이 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도통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실은 숨기고 싶어 한다. 누군가 근황을 물으면 취업 준비 중이라고 말하거나 별생각 없이 학점이나 따고 있다고 둘러대기 일쑤다. 일부는 그마저도 부담을 느껴 연락을 두절한 채 잠적하기도 한다. (야, 걔 요즘 어디서 뭐 한대? 나도 몰라)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고시는 경쟁률이 30~40:1에 육박하고, 합격한 사람보다 포기한 사람을 찾기가 더 쉬운 시험이다. 그뿐인가? 알게 모르게 꽤나 많은 사람들이 발을 들이는 시험이기도 하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한 번쯤 기웃거려본 애들 엄청 많을걸?"이라는 누군가의 짐작은 예리한 통찰이거나 본인의 경험담일 테다.


2. 공부는 티 내며 하자


  미안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부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감춰서 좋을 게 하나 없다.

  단지 진로를 탐색하는 차원에서 기웃거리는 상황이라면 주변에 말할 필요도 없다. "나 요즘 고시판에 기웃거려"라고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주변에 알리고 떳떳하게 공부하자. "나 고시공부 시작했어" 담담한 한마디가 우리를 합격에 한발 가깝게 만든다.


  주변에 공부한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은 자신에게 퇴로를 확보해줄 뿐,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낳지 못한다.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게 공부하다가 그만두면 창피할 일도 없고 주변에 왜 그만두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일도 없으니 속이 편하기는 하겠다. 그렇지만 애초에 실패할 경우를 생각하며 공부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합격할 거야'를 넘어 '합격해야만 해'라는 배수진을 쳐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중도에 포기했을 때 "거봐 안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할 주변의 시선이 두려울 수 있다. 당연하다. 오히려 두려워야 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3 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인 모두가 내가 올해 수능을 봐야 함을 알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내가 고3인 사실을 모르고 심지어 올해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보자. 공부를 덜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주변의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고시생임을 숨기는 것은 비유하자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과 같다. (고시 합격에도 통상 2년~4년 정도가 걸리므로 고등학교 재학기간과 비슷하다) 내후년에 수능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어서 공부하는 꼴이다. 어리석은 행동이다. 내가 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으면 배수진이 없어 나약해질 뿐 아니라, 남들이 베풀어줄 배려와 도움, 응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3. 나의 수험생활


  나는 군대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하던 날, 동기들에게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 롤(여러분이 아는 그 게임이 맞다)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루 1시간씩은 하던 게임을 대뜸 안 하겠다고 하니 동기들은 믿지 않았다. 정확히 2012년 12월 19일,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한 그날부터 2017년 최종 합격하는 날까지 정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마 군대 동기들에게 선언하지 않았다면 절대 지키지 못했을 약속이다. 물론 롤을 그만하겠다는 말만 한 것이 아니다. 동기들에게 행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그럼으로써 나 자신이 나태해지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했다. 결과적으로는 동기들이 의도했든 안 했든 나를 감시해줌으로써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게끔 만들어주었다.

  나는 (소방서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소방서 직원들(=소방관)에게도 행정고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공표(?)했다. 그날부터 직원들은 출동이 없는 빈 시간에 기본서를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사무관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건 비밀이다. 맨날 ‘아유 우리 사무관님’이라고 장난스레 부르곤 했다. 어찌나 민망했던지 ㅎㅎ) 만일 내가 숨어서 공부했다면 그런 배려도 없었을 것이다.

  난 전역 후에 복학하지 않고 신림동에 들어갔는데,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 친구들에게도 솔직하게 말했다. 고시공부를 시작했다고.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물었다. "몇 년이나 하려고?"


                              “될 때까지? ㅎㅎ"


  항상 같은 답변을 했다.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와 얘 진짜 되겠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될 때까지 하면 무조건 되겠지 그런 마인드였다. 이로 인해 수험기간이 길어졌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는 큰 힘이 되었다.


  2017년, 될 때까지 하다가 정말 되어버린 그 해에 친구들은 "진짜 되네"라는 짧고 굵은 소감을 남겼다.

  몇 년 새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 중 꽤 많은 이가 청운의 꿈을 접고 고시판을 떠났다. 합격에 여러 가지 방도가 있듯 불합격에도 여러 사연이 있기 마련이라 한 마디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끝내 합격하지 못했던 친구들의 상당수는 자신이 고시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밝히기 꺼려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참고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패션고시생이라는 조롱을 들을 수 있다. (패션고시생은 고시공부한다고 젠체는 다 하면서 실상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는 나이롱 고시생을 의미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시공부한다고 사방에 말해봐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이상 합격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말보다 행동이 앞설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자. (혹시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패션고시생이라는 말을 들을까 두렵다면, 나를 평가절하하는 그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된다)


 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설에는 "요즘 뭐 하고 지내?"라는 친척들의 물음에 고시 공부 중이라고 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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