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스위치가 고장 난 사무관의 삶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지도 수년이 흘렀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덕일까, 언젠가부터는 워라밸이라는 키워드가 크게 화제 되지 않는 듯하다.
사무관의 워라밸은 어떠냐고 묻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때마다 퇴근 시간이 늦다고, 업무가 막중하다고 얘기해 왔다.
우리도 똑같아~ 다 힘들지 뭐
수험생과 달리, 대기업, 금융권, 법조계에 종사하거나 전문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에게는 내 하소연이 잘 통하지 않았다. 일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사무관의 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낀 이유다.
그저 “힘들겠다”는 한 마디 공감을 사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어떻게든 위로받기 위해 “나는 너네보다 월급도 절반밖에 안 돼”라는 금기어를 스스로 꺼내게 될 뿐이었다.
억울했다. 분명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원인이 있는데 그게 뭘까?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오늘 아침, 병원에 들러 약을 처방받고 차에 타 실내조명 스위치를 눌렀다. 약을 먹기 위함이었다. 입에 약을 털어 넣고 조명을 끄고자 스위치를 한 번 더 눌렀는데, 되려 밝기가 밝아졌다. 스위치가 고장 났나? 생각하던 차에 ‘뭐야 이거 내 삶 같잖아’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명 스위치는 고장 난 게 아니었다. 한번 더 누르면 밝아지고, 거기서 한번 더 눌러야 꺼지는 것이었다. 설명서를 안 읽은 내 탓이다)
다른 글을 통해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중앙부처는 사무관 한 명이 ‘특정 분야를 전담하는’ 업무 구조를 띤다. 같은 분야를 함께 담당하는 주무관님이 있기는 하지만, 사무관은 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주무관은 예산을 비롯한 잡다구리한 자료에 대응하는 역할이다. 같은 식당에서 근무해도 요리사와 홀담당의 역할이 다르듯 서로 업무가 조금은 다르고, 그래서 서로를 완전히 대신해 줄 수 없다.
이런 업무 분장에 경직적 조직문화,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이 더해지니 일과 삶을 전환하는 스위치가 고장나버리고야 말았다. '나라를 이끈다'는 점에서는 광의의 국방 개념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국방에 낮밤이 없듯 행정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형식적 출퇴근이 존재할 뿐 실질적 퇴근은 부재하다.
물론 24시간 회사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집에는 간다. 회사와 집의 거리도 가까워서 집까지는 금방이다. (긴급 시 회사에 다시 출근하기도 쉽다) 집에서 저녁도 먹고 넷플릭스도 보고, 친구, 선후배와 술 약속도 잡을 수 있다. 다만 언제 회사에서 연락이 올지 알 수 없기에 퇴근 후에도, 아침 이른 시간에도 항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연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년 전 애플워치를 구매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손목이 먼저 징징~ 울려 모를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의 진동은 자는 데 찬물을 뿌리듯 나를 놀라게 한다면, 애플워치는 따뜻한 손길처럼 아주 부드럽게 알려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상위 모델이 예뻐 보여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모델을 거쳐 얼마 전에는 애플워치 울트라까지 구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존 애플워치에 비해 추가된 기능이라곤 해발고도 체크, 수심체크 등 5층도 안 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내게는 하등 쓸모없는 기능이다) 점점 더 화려한 족쇄를 찾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현타가 와 쓴웃음을 짓게 되지만 내 족쇄는 제법 예쁘긴 하다. ^^..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등.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있지 않는 자유인을 비웃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예들을 묶고 있는 것은 사실 한 줄의 쇠사슬에 불과하다.
- Leroi Jones(Amiri Baraka), 1968
중앙부처에서는 대외 비공개 정보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텔레그램을 흔히 쓰는데, 이 문제의 어플은 내가 몇 분 전에 접속했는지, 메시지를 읽었는지, 답신을 작성 중인지 등을 모두에게 투명하게 알려준다. 연가 중이라도, 주말이라도 회신이 늦으면 눈밖에 나기 십상이다. ‘나라가 망하면 어쩌려고 감히 개인 시간을 보내?’ 느낌이다. 마치 판옵티콘에 갇힌 기분이 든다.
그래도 새벽이나 밤중에 갑작스러운 연락이 올 일은 예산(4-6월), 국감(10월), 국회(11-12월) 등 바쁜 시즌을 제외하면 좀처럼 없다. 진짜 문제는 주말에 발생한다.
월요일에 장관 보고가 예정돼 있으니 토요일까지 초안을 만들고 일요일까진 최종본을 보고할 것
금요일 하루 몸이 아파 병가를 낸 내게 과장님이 내린 지시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우리 과장님은 조직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상사다. 이런 업무 지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주중-주말 구분이 없는 조직 문화가 낳은 결과다. (나라를 위하는 데에 주말이 어디 있으랴) 주말에 근교에 나들이를 갔다가 ‘지금 당장 A보고서를 보내달라’는 지시라도 받으면 연신 ‘죄송한데 바깥이라 지금 당장은 작업이 어렵다’는 말을 하고 밤늦게라도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렇듯 주 7일 24시간 회사 업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이 없으니 정신적으로 피로할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머리 한편에는 회사 업무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모처럼 여가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끝없이 드는 업무 생각을 애써 무시할 뿐.
사무관의 업무 스위치는 ON만 기능할 뿐 OFF는 먹통이다.
며칠 전 회사 동기가 ‘휴가는 진통제, 휴직은 치료제, 이직은 백신(사기업만 세 군데를 다닌 그는, 백신의 효력은 길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이라는 말을 했다. 6년 차에 접어든 우리 동기 단톡방은 종합병원 8인실 병동과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매일 누군가의 고통 섞인 하소연과 나머지의 동병상련으로 대화가 채워진다. 때때로 휴가를 다녀온 동기로부터 진통제의 효능을 듣거나(ex : 너네도 꼭 다녀와 치앙마이 기가 막혀), 타 부처에서 치료제를 투여받은 동기들의 성공담(ex : 이번에 공정위 000이 독일로 유학 간대)을 부러움 가득 실어 나누기도 한다. 최근에는 같은 부처 동기 중 한 명이 유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단톡방이 엄청난 축하와 부러움들로 가득 찼다.
평소 업무로부터 떠나 있을 시간이 없으니 기를 모아 며칠이라도 휴가를 써야 참았던 숨을 내뱉을 여유가 생긴다. 나는 휴가를 쓰면 단 며칠이라도 외국에 다녀오는 편인데,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여행 기간에 합법적(?)으로 연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해외 유심을 쓰자 꼭)이 제법 큰 유인으로 작용한다.
휴가(진통제)는 1년 21일 정도(참고로 8호봉 기준이다)로 제법 많이 나오지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여름휴가로 월-금 5일을 붙여 쉬는 사람도 있다지만 이마저도 바쁘지 않아야 가능하다. 결국 휴직을 하거나 유학을 가는 등 나름의 살 방법을 찾아야 멈추지 않는 업무의 콘센트를 통째 뽑아버릴 수 있다. 공직사회에 남녀를 불문하고 육아휴직자가 넘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물론, 얼마 전 셋째를 낳은 친한 형은 “참고로 진정한 육아에는 휴직이 없어”라고 말했다)
요즘 동기들끼리 장기재직 휴가(aka. 진통제 과다복용)의 필요성을 많이 이야기한다. 휴가는 지금도 자유롭게 쓰도록 되어 있지만 경직적인 조직에서 이는 말뿐인 자유다. 「예비군법」상 예비군 훈련에 동원되었을 때 고용주가 이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됨을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근무 기간에 비례(만 3년 근무 시 3일, 5년 근무 시 5일, 7년 근무 시 2주, 10년 근무 시 1개월 정도면 참 좋겠다)한 장기재직 휴가제도를 도입하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적자 재정 상황에서 공무원 월급 올려주기는 어차피 글렀는데 쉴 시간이라도 좀 더 주면 어떨까? 나는 대찬성이다.
「예비군법」
제10조(직장 보장) 다른 사람을 사용하는 자는 그가 고용한 사람이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을 받을 때에는 그 기간을 휴무로 처리하거나 그 동원이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업무 대체자도 없는데 길게 자리를 비우면 어떡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글쎄, 모르긴 몰라도 모두에게 장기재직 휴가가 보장된다면 품앗이하듯 서로 기꺼이 업무를 대신해 줄 것이라 믿는다.
갑자기 삼천포로 빠져 장기재직휴가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정책제언을 위해 계획적으로 쓰는 글은 절대 아니다. 눈 뜬 모든 시간에 업무에 매여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다가 2019년 이후로 지금껏 스위치가 꺼진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충격 속에 휘리릭 쓴 글이다.
내가 연차가 쌓여서 그런 건가, 요즘 들어 몸과 마음이 아픈 동료나 선후배가 많이 보인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입사했던 후배들이 동태눈이 되거나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도 편치 않다. 이번에도 새로운 후배 기수들이 회사에 들어왔다. 분명 꿈과 희망이 가득할 텐데, 그들의 밝은(너무 밝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앞날이 예견되어 씁쓸하다. 우리 모두에겐 OFF 스위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