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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Oct 01. 2022

행정고시 합격의 마지막 열쇠, 균형감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

 2차 시험이 끝난 지 오래고 면접 시즌이지만, 이 시기에 꼭 해주어야 할 말이 있어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었다. 오늘은 2차 시험은 물론, 실무를 할 때에도 가져야 하는 '균형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짧은 근황을 전하자면 그동안 나는 뉴욕으로 국외 출장을 다녀왔고, 지금은 국정감사에 대비하고 있다.




  2016년, 2차 시험에 네 번째 낙방했을 때, 처음으로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3년 반의 시간을 온전히 공부에 쏟아부었음에도 합격권에 들지 못하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쓴 답안 내용이 모범답안과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느껴 더욱 혼란스러웠다.

  당시 나는 합격선에서 평균 5점가량 부족했다. 2차 시험의 각 과목이 100점 만점(과목당 10페이지를 작성하며 한 페이지=10점으로 계산한다)임을 고려하면 과목당 5점씩만 더 얻어도 합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과목당 5점이란 대략 2쪽당 1점만 얻어도 확보할 수 있는 점수이니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 평균 5점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실은 석차순으로 따져보면 평균 1점만 차이 나더라도 합격권과 아득한 차이가 난다. 대개 합격선으로부터 평균 1점 내에 합격생 1배수만큼의 인원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지 부정적으로 볼지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가을부터 초겨울에 이르기까지 내게 부족했던 5점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고민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기본서를 정독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합격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균형 잡힌 사고'가 열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정고시 2차 답안은 '주어진 문제 상황에 대해 특정 이론을 근거 삼아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이론을 기반으로 내 주장을 펼치게 되고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바른 해결책을 제시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다수가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나의 주장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잠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행정고시의 시험과목은 사회과학(Social science)분야에 해당하며, 사회과학이란 사회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과학과 달리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과두제의 철칙'같은 이론들도 결국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법칙 :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ㆍ필연적인 불변의 관계 (국어사전)


  어떤 경우에도 예외가 없어야 법칙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회적 현상에는 '예외 없는' 경우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주장에도 결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경제학에서 케인즈와 프리드먼이 대립했던 이유도, 행정학에서 정치행정 이원론과 일원론이 끝없이 대립하는 이유도 같은 이치다. 행정법은 어떠한가, 학설이 3개~4개에 달하고 판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그 모든 내용을 외우는 건 결국 우리의 몫..) 사회과학에 완벽한 법칙이란 있을 수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비판함과 동시에 보완하는 일종의 변증법적 구조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줏대 없이 모든 견해를 비판하거나 모두에 찬성하는 양비론/양시론과는 다르다. (학원가에서는 양비론과 양시론으로 흐를 것을 우려해 균형 잡힌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잘해주지 않는다) 현업에 종사하다 보니 보고서를 쓰는 능력이나 회의를 주재하는 능력보다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능력이 공직자에게 중요한 역량임을 절절히 느낀다.

  다시 말해 행정고시가 우리에게 바랐던 능력에는 암기력, 학습능력뿐 아니라 수많은 이론을 바탕으로 '주장을 펼치면서도 스스로의 불완전성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하다 보면 중대한 판단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순간의 판단에 따라 정책현장의 5년 뒤, 10년 뒤의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부처 사무관의 판단은 더 큰 무게감을 지닌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데에다 예산 단위도 크기 때문이다. 나는 비교적 작은 분야를 소관하고 있음에도 담당하는 예산이 연 450억 원에 달한다. 10억 원 미만의 정책은 작아 보일 정도인데, 순간의 결정으로 최소 몇 천만 원에서 수십억에 달하는 돈의 용처가 결정되는 것을 생각하면 중압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3년에 불과한 짧은 경력 속에 뼛속까지 느낀 한 가지 사실은, 나의 판단을 맹신하거나 고집을 피워서는 안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다 알겠다고 생각할 때에도 현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로 깨닫는 점들이 존재한다. 결국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종합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인데, 이때 내 판단이 초래할 부작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특히 큰 변화에는 반드시 큰 부작용이 수반되는 만큼, 과감한 변화일수록 신중해야(과감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차 답안 점수를 올리는 이야기를 한다면서 왜 갑자기 일 이야기만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왜긴 왜야, 당연히 2차 답안 작성과 우리의 실무 간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2차 답안에서 주장을 펼칠 때 나의 주장이 낳을 부작용에 대해 한두 줄이라도 언급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경제학, 행정법, 행정학, 정치학, 재정학 등등 과목과 상관없이 어디든 적용되는 이야기다.


  행정법으로 예시를 들어보겠다. 특정 쟁점에 대해 긍정설, 부정설, 절충설 총 세 가지 학설이 있고, 이에 관한 판례도 있다고 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답안을 아래와 같이 작성한다. (실제는 아래보다 상당히 길게 써야 한다)

  학설은 긍정설, 부정설, 절충설로 나뉘며 ~~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긍정설이 타당하며 판례의 입장도 이와 동일하다. 따라서 사안에서 甲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때 1점을 더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문장만 추가하면 된다.

  학설은 긍정설, 부정설, 절충설로 나뉘며 ~~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긍정설이 타당하며 판례의 입장도 이와 동일하다. 따라서 甲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다만 국민의 권익구제를 중시하는 측면에서 부정설과 절충설이 갖는 의의가 있으며, 甲과 같은 경우 권익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향후 법령 개정 등을 고려함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나의 주장(긍정설, 판례와 동일, 갑의 주장 타당하지 않음)을 명시하되 다른 이론이 갖는 의의를 언급함으로써 나의 주장이 갖지 못하는 결점(국민이 입는 피해를 구제해주지 못함)까지 포섭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비/양시론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줄 수 있다. 교수님들은 이런 서술에 1점을 기꺼이 더 얹어줄 수 있다.

 

  사회 현상을 포섭할 진리나 법칙은 없다. 공부할 때 항상 반대의견에 더 신경 써보자. 장점이 큰 이론일수록 단점을 비춰야 하며, 모두가 퇴물이라고 평가하는 지나간 이론에 대해서도 존재 의의와 장점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노파심에 사례 하나 더 들자면, 행정학에서 NPM보다 New Governance가 좋다고 흔히 서술하지만, 그 와중에도 NPM이 지니는 의의와 뉴거버넌스가 갖는 맹점을 동시에 적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시각은 암기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의식적으로 균형 잡힌 사고를 훈련해야 한다. 습관이 들어야 2차 시험에서도, 훗날 실무자가 되어서도 신중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내년 2차 시험까지 9개월이 남았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전제 하에) 부족한 점을 채우고도 남을 넉넉한 기간이다. 공부한 지 6개월 차든 6년 차든 관계없다. 남은 기간 균형 잡힌 판단을 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균형감각을 답안에 녹여내는 것만으로도 과목당 5점은 올릴 수 있고 분명 내년 이맘때에는 올해와 다른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소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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