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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Feb 08. 2023

지금까지와 정반대로 하면 됩니다

이제는 PSAT그룹스터디 대신 PSAT단체훈련을 하자

 얼마 전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UN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정부대표단에 편성되었는데, 일전에 사무관의 업무를 줄줄이 열거했던 적이 있지만 이렇게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역할까지 맡게 될 줄은 몰랐다.

  네덜란드 공항을 경유해 제네바로 향하면서, 그리고 또 돌아오면서 어떤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스터디를 하지 말라고 말은 해놓고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언젠가 어떤 댓글에서 '언어논리'의 경우에 어떻게 스터디를 해야 하는지 대안을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착각인가?) 아무튼..! 오늘은 PSAT 그룹스터디가 아닌 PSAT 단체훈련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느닷없이 단체훈련이 뭐냐고 묻는다면, 여태까지 이야기했던 PSAT 훈련법을 '여럿이서' 하는 방법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사실 PSAT 훈련은 혼자 해도 되지만, 요즘 유행하는 크로스핏이나 F45(프사오) 등 단체 운동과 같이 여럿이서 하는 훈련이 갖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고독하게 공부하는 것에 질렸다면, 또는 여러 명이서 동시에 공부하는데 시너지를 발휘해보고 싶다면 PSAT 단체훈련을 시도해 보자.


1. PSAT 그룹스터디 VS PSAT 단체훈련


  우리네의 PSAT 그룹스터디(보통은 'PSAT 스터디'라고 말한다. '스터디'라는 단어가 곧 '그룹스터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대강 이러하다.


 ① 다 같이 모여 시간을 재고 PSAT 모의고사를 푼다.

 (최대한 실제 시험장처럼 근엄한 분위기를 낸다. 절대 소리 내면 안 된다)

 ②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함께 채점을 한다.

 ③ 둘러앉아 문제를 맞힌 사람이 틀린 사람에게 풀이법을 설명해 준다. 

 (또는 문제를 틀린 사람이 맞춘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 "이거 어떻게 풀었어?")


  맞춘 사람은 굉장한 비결을 알고 있다는 듯, 혹은 자신의 노가다(?)의 결실을 뽐내듯 설명해 준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스터디지만, 그중에서도 연차가 오래되어 문제를 여러 번 풀어본 장수생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 혹은 개중에 실력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스터디를 주도하게 된다.

  이게 지금까지의 PSAT 그룹스터디법이었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위 같은 방법은 쌩초시생일 때 조금의 효과를 보고 난 이후에는 큰 효과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도권을 잡고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나, 그 설명을 듣는 사람이나 어느 누구도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룹스터디를 하다 보면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정말 PSAT을 잘하는 친구들은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PSAT 단체훈련은 정반대다. 어떤 점에서 정반대라는 것인지 방법을 소개하며 설명하겠다.


 ① 다 같이 모여 시간을 재고 PSAT 모의고사를 푼다. (여기까지만 똑같다)

 * 기출문제면 더 좋겠지만, 단체훈련의 핵심은 '구성원 누구도 풀어본 적 없는 문제'를 푸는 데에 있기 때문에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 한이 있어도 낯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유는 후술 하겠다

 ②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문제 풀기를 그만둔다. 단, 절대 채점하지 않는다.

 ③ 둘러앉아 1번 문제부터 서로가 체크한 답을 비교한다. 모두가 답이 일치하는 문제는 바로 넘긴다. 단, 한 명이라도 다른 선지를 고른 경우 각자가 왜 해당 선지를 체크했는지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내가 3번 선지를 고른 이유는 ~~~ 때문이야" "그래? 나는 4번 선지가 ~~~ 리서 맞다고 생각했어"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풀어본 문제 거나 정답을 아는 문제여서는 안 된다. 대등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 "야 이거 답 3번이야~ 내가 풀어봤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④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교환했다면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시간에 쫓겨 생각을 교환하는 시간을 아끼지 말자. '내가 왜 이 선지를 택했는지'를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

 ⑤ 적절한 개수의 문제를 비교한 뒤 (5개 단위로 끊을 것을 권한다) 채점한다.  

 ⑥ 채점 후, 이견이 있었던 문제로 돌아간다. 답을 틀린 사람이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무엇을 '착각'했는지를 이야기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그 실수 또는 착각을 피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이야기한다. (그런 게 없다면 스킵해도 된다)

 ⑦ 모든 문제를 다 살펴볼 때까지 ③~⑥의 과정을 반복한다.

 (40문제를 다 살펴본 뒤 채점하지 않는 이유는, 서로가 주장한 논리를 기억하려면 적당한 개수로 끊고 채점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2. PSAT 단체훈련의 효과


  PSAT 단체훈련이 기존 그룹스터디와 갖는 가장 큰 차이점, 정반대의 포인트는 '맞춘 사람'보다 '틀린 사람'이 많이 말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PSAT은 실수와 착각, 나의 어리바리함을 통제하는 시험이다. 배경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을 맞힌 사람의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보다 PSAT 점수가 높은 사람은 단지 나보다 실수를 덜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비로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 모두는 자존심도 세고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방어기제로 중무장된 탓에, 남들 앞에서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정말 힘들어하고 대부분 인정하지 못한다. 그 방어기제를 발동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채점하기 전 서로의 선택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채점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가 문제를 맞혔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기에 너도나도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택한 선지가 왜 정답인지를 주장할 수 있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으므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특정 선지로 의견이 몰리거나 설득당할 수 있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괜찮다. 이 과정의 핵심은 모두가 자신의 논리를 상대에게 피력하게 된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상황에서 채점했는데, 틀렸다면? 창피할 수도 있고 멋쩍을 수도 있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때 이 훈련법이 빛을 발한다. 앞서 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나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로 둘러댈 기회도 없다.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사실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기에, 어디서 착각했는지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있는 그대로 바라볼 기회가 생긴다. 이때 우리는 실수를 고칠 수 있다.


  단체훈련을 반복하면 점차 착각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열변을 토했다가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낀 창피함의 기억으로 인해, 문제를 풀 때마다 습관처럼 '이 문제의 답이 이것인 이유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실수를 현저히 줄이는 일종의 셀프-필터링 효과를 발휘한다.


  이렇게 모의고사 한 세트에 대한 단체훈련을 진행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착각하거나 실수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모두가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느 구성원 누구 한쪽으로 스터디의 기운(?)이 쏠리는 현상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실수 앞에서 참교육 당한 나머지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3. 친한 사람이랑 훈련해도 될까?


  일반적인 스터디는 친한 사람들이랑 했을 때 역효과가 나지만, 단체 훈련은 다르다. 친한 사람들이랑 해야 더 효과가 좋다. 너무 어색한 사이라면 서로 조심하느라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뻔뻔하고 자신감 넘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틀렸을 때 참교육의 효과도 좋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다 같이 참교육의 시간을 가져보자.

  (다만 구성인원은 홀수가 좋다. 서로 의견이 갈릴 때 반드시 어느 하나의 선지로 의견이 몰려 논의가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짝수보다 홀수일 때 다수결 결정이 쉽다는 점을 떠올리면 된다)


4. PSAT 단체훈련법의 기원 (근본 있는 거 맞아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기원했냐고? 고등학교 선배에게 전수받은 일종의 비법이다. 내게 우상과 같은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연애도 하면서 무난히 서울대에 진학했는데, (지금도 아주 잘 살고 있다) 수능 국어과목 성적이 나오지 않아 고민하던 내게 직접 추천해 준 방법이었다. 나는 이 방법을 친한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을 설득해 실천했는데, 국어 3등급을 오가던 세 명이 불과 3~4개월 뒤 나란히 1등급으로 올라섰다. (결국 다들 대학도 잘 갔다)


  물론 수능 국어는 문학지문이 있어 일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지만, (아는 시 나오면 개이득) PSAT과 비슷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PSAT은 '실수 바로잡기'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수능 국어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참된 지식을 직접 가르치기보다는 대화와 문답을 통해 상대자가 스스로 무지와 편견을 자각함으로써 진리를 발견하게 했다. 이러한 귀납적 진리 탐구법을 '소크라테스 문답법'이라고 하는데, PSAT 단체훈련은 '소크라테스 문답법'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자신의 문제풀이 과정과 판단 근거를 말함으로써 스스로 무지와 편견을 자각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보나 마나 피셋형 인간이었을 듯)


  지금이라도 옆에 있는 친구를 꼬드겨서 단체훈련을 시작하자.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 어느 과목에 적용해도 상관없다. 자신이 고른 선지가 왜 정답인지를 열렬히 주장하고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는 기회를 갖자. 반복할수록 문제를 푸는 논리는 점차 완결성을 갖게 되고, 실수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어느덧 구독자는 1,500명을 넘어섰고요. 100만 유튜버가 속출하는 시대에 1,500명은 작아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볍게 써 내려갔던 한마디 한마디에 조금은 무게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요 근래 PSAT 관련된 글이 뜸했습니다. 연봉이니 뭐니 신변잡기적인 글을 썼더랬죠. 그간 고민이 많았습니다. 작문 실력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앞으로 글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펼쳐나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더 컸습니다.


  작년 초 구독자 분들을 대상으로 귀찮은 설문조사 한 건을 진행했었습니다. 이 글을 출판한다면 구매 의향이 있는지, 어떤 내용에 만족했고 어떤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이제 그 설문조사에답해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그간 썼던 글을 다듬어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출간을 해보려합니다. 글의 특성상 일반적인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는 어려운 소재라 (수험서 전문출판사에서 출판하기도 어렵다고 하더군요. '학원'에 다니지 말고 '기존 수험서'를 보지도 말라는 내용이니까요) 사비를 털어 책으로 엮어볼 계획입니다. 어쩌면 조금 더디고 힘든 작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다니는 여러분들이 보기 좋은 크기로,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필기할 공간을 넉넉히 제공하는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린다면 전자책을 먼저 발간하게 될 수도 있구요.

  다만 책을 출간하게 되면, 책에 들어간 내용은 브런치에 더 이상 올려두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출판을 하든 책으로 엮는 순간 온라인 공간에 본문 전체를 싣는 것은 도통 허락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책에는 여기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더 넣을 생각입니다. 최신 기출문제에 대한 '실수정리법'을 예시로 들고, 이곳에 올린 글도 더 다듬고 내용을 보완할 계획입니다.

  저도 제가 쓴 글과 비슷한 류의 수험서(?)는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어떤 책형으로 제본해야 하는지도 감이 안 오는 상황입니다. 자료조사를 위해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항상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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