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일기
요 며칠간 감기에 걸려서 고생을 했다. 지금은 콧물이 조금 남아있는 상태다. 그래서, 쓰려던 주제보다 감기에 대해서만 쓰는 게 훨씬 이야기할 거리도 많고, 임의의 실습 기간에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제를 바꾸었다. 원래 임의의 실습 기간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실습생이 본 전공의'를 먼저 쓰려고 했지만, 감기를 먼저 쓰게 되었다.
어쩐지, 실습 후반부 그렇게 놀러 다녀도 독한 감기에 안 걸리는 등 운이 좋더라니, 으슬으슬하기만 했지 이틀 정도 쉬면 좋아졌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독감 바이러스 백신을 맞아서 그나마 수월하게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습 첫 감기
실습 첫 감기는 실습 2주차였다. 실습은 한 텀, 2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텀은 1주차와 2주차가 다른 파트에 참여하는 과였다. 전체 일정은 적은 편이고, 각 파트에서의 일정이 많은 편이었다. 첫 주 교수님께서는 인자하시고 학생을 편하게 해 주시려고 노력해 주신 분이었다.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 모두 첫 주 실습을 시작한 학생에게 잘 할 필요 없고 긴장하지 말고 실습하고 가라고 하셨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본과 1, 2학년 동안 교수님과 대면하는 자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첫 주 긴장을 많이 하고 실습에 임했고, 그렇게 그 주 토요일부터 아팠다. 그러고 그다음 주 수요일 정도까지 콧물에 시달렸다. 주중에 감기가 심하지 않지는 않았지만, 알레르기성 비염과 감기가 같이 와서 심하게 앓았다.
긴장 풀리면 아프다.
코티졸과 관계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고, 항염작용을 한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코티졸 농도가 올라가고, 스트레스가 갑자기 줄어들면, 즉 긴장이 풀리면 코티졸 농도가 줄어들어 면역에 취약해진다. 그래서 아프다. 아무리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께서 긴장 많이 하지 말고 중간만 하고 가라는 마음가짐으로 실습하고 가라고 해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지만, 한번 아픈 뒤로는 몸이 알아서 긴장을 적당히 하게 되었다. 어쩌면 교수님들과 선배들이 말한 ‘실습 초반의 학생과 후반의 학생은 다르다’가 이런 뜻일까.
긴장을 할 순간들이 엄청 많았다. 첫 번째로는 실습을 돌다 보면 '힘든 과 1, 2, 3등'과 같은 소문들을 듣게 된다. 매년 달라지는데, 올해는 1등과 3등이 다른 해들에 비해 조금 달랐고, 2등이 작년의 1등이었던, 어찌 보면 순위가 한 단계 내려갔다. 1등과 3등이 많은 사람들이 겪기 전 실습 초반 참여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게 1등인가?' '이게 3등일까?' 하기 전 실습을 완료했다. 이런 과들에서 실습이 힘들다니, 망하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말 내내 침대에서 쉬긴 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힘든 과를 끝내고 쉬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힘든 순위 2등 실습 전에 긴장을 할 뻔했다. 그즈음 한 달 동안 힘든 과를 돌았다. 그때 너무 긴장을 하면 안 되고 편하게 생각하자는 마인드를 가져 다행이었다. 그때는 일부러라도 ‘내가 너무 오버하지 않고 과제 검토를 중지하고 쉰다면, 이미 과제의 완성도는 높을뿐더러 컨디션도 좋아지기 때문에 더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사실이었다.
시험이 끝난 뒤
보통 시험 때 긴장을 한다. 실습 학생으로서 가장 큰 시험은 9월, 12월 임상의학종합평가가 아닐까. 생각보다 시험 준비를 할 때 긴장하지 않았다. 목표를 높지 않게 잡기도 했었고, 첫 파트에 있었던 심장내과 문제를 풀면서 본과 4학년 말 국가고시를 볼 때까지 다 알기로, 먼 길을 천천히 가기로 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었는지 시험 끝나고 꽤 열심히 놀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건들 때문에 아팠다.
놀던 사람들이 잘 논다니까
아마 브런치에 썼을 것이다. 실습 후반부, 여러 경험을 하고 편하게 살기로 하고, 그 결심을 하고 난 뒤 열심히 놀러 다녔다. 노는 게 힘들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놀러 다니다가 몸이 안 좋아졌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며칠 실습 후 침대에서 쉬게 되었고, 핸드폰을 보면서 누워 있어야 할 시간이 아니라 놀러 다녀야 할 아까운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며칠 후 다시 괜찮아졌고, 주제를 알고 놀자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실습 후반부는 적당히, 그리고 서서히 놀았다. 천천히, 주제에 맞게, 행복하게.
어느 순간이던지 감기에 걸리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앓고 있어서 문제였다. 짧은 실습은 5일 만에 끝나므로, 그중 3일만 감기를 앓아도 반 이상을 날리게 된다. 실습이 지나면서 감기에 대해 막연히 무서워하는 것보다, 안 걸리도록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올 것 같은 때 충분히 쉬었다.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를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보다 그에 대한 대비가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