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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Sep 05. 2021

작은 물건에도 마음을 담게 되었다.

물건들은 항상 깨지고, 부서지고, 으레 사라지기 마련이다. 핸드폰 같은 비싼 물건이 아닌 바에야 '새로 하나 사지 뭐'라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물건들을 써왔었던 나인데, 점차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에 마음을 쏟고 잃어버릴세라 조심조심 물건들을 쓰고 난 뒤에 악착같이 그 자리에 다시 놔두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살 수 있어도, 스페인에서는 쉽게 못 살 것 같은 물건들

그중 단연 내가 소중히 간수했던 것은 '손톱깎이'. 손톱깎이는 어디에나 있고, 마드리드 도처에 깔려 있는 중국 상점을 가면 손톱관리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굳이 싸들고 온 것은. 무려. 양쪽 귀퉁이가 막혀서 손톱이 이리저리 날리는 것을 막아주는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깔끔하게 날도 잘 들고, 손톱도 깔끔하게 깎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스페인에서 처음 알았다.

반대로,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에도 마음을 쏟기 시작한다

2017년 마드리드 월드 프라이드 때 샀던 자석,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산 스타벅스 시티 머그들, 산티아고 순레길의 끝인 피스테라(Fisterra)에서 샀던 크리스마스 복권까지... 지금 내 책상 앞에는 지난 스페인 생활이 남긴 잡다한 추억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미 종이의 색은 바랬고,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건 그 복권을 샀을 때의 추억과 그곳을 갔다는 기억을 유일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얇디얇은 종잇장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사라질 것들을 에둘러 붙잡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도착해, 혹시라도 깨질세라 시티 머그들을 버블랩에 싸고 기내용 캐리어  면을 투자해서 조심조심 들고 와서 꺼내는 나를 보고 부모님은 혀를 내두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컵들이 소중했던 것은 그때의 기억을 담고 있는 유일한 매개이기 때문일  같다.

시간은 지나고 모든 것은 변한다. 당시의 모든 기억들도 풍화되고 미화되기 마련이다. 평상시에 굳건히 닫혀있는 지갑이 해외여행만 가면 은혜롭게 열리는 이유도 그 순간, 그 때의 기억을 영원히 잡아두고 싶은 마음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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