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ria(2020)
바스크 ETA 무력 투쟁을 감내하는 두 가족을 세밀하게 그린 이야기
2019년부터 스페인은 지나간 과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2019년에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두 편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고, 2020년은 북쪽의 바스크 독립과 관련된 TV 시리즈물이 모비스타 플러스(Movistar+)와 HBO에서 연달아 공개되었다.
페르난도 아람부루(Fernando Aramburu)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2011년 무력 투쟁의 중단을 발표한 ETA의 소식과 함께 시작한다. 이웃사촌과도 같이 친했지만, 바스크에 대한 애국심으로 무력 투쟁에 참여한 장남이 ETA에 의해 처단 대상으로 낙인찍힌 이웃집 가장의 암살에 가담하게 됨으로써 오랫동안 멀어져 버린 두 가족의 이야기.
남겨진 세 사람, 세 종류의 애도
시리즈가 시작되면 이야기의 촉발점이 되는 차토(Txato)의 사망을 마주한다. 그의 사망 이후 남겨진 세 명의 가족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장을 애도한다. 고향을 잠시 떠나 있던 어머니 비토리(Bittori)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자 이미 사법부의 벌을 받고 있는 호세 마리(Joxe Mari)와 ETA의 사과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장남인 샤비에르(Xabier)는 암묵적으로 그에게 놓인 '가장'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장녀 네레아(Nerea)는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만 PTSD와도 같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슬픔을 매번 힘들게 억누르며 살아간다.
ETA가 폭력 노선을 선택한 최초의 순간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 La Linea Invisible와는 달리, Patria는 바스크 무력 독립 투쟁에 휩싸여서 고통받게 된 두 가족의 구성원들이 각자 어떠한 방식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애도하는지를 세밀하게 그린다. 시리즈의 시작 직후에 정신없이 번갈아가며 놓이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약간 혼돈스러울 수도 있는데, 초반부의 정신없음을 잠시만 넘어가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점묘화처럼 각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애도의 방식과 이야기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휩쓸린 네 사람, 세 종류의 투쟁
차토(Txato)를 살해한 호세 마리(Joxe Mari)의 가족은 총 다섯 명이다. 가장 혈기왕성하게 ETA에 가입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호세 마리. 아들에 대한 모성애로 인해 비토리(Bittori)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를 거침없이 불태우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호세 마리를 더욱더 몰아세우게 되는 어머니 미렌(Miren). 소시민이기에 친한 친구인 차토에게 선뜻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결국 친구를 떠나보낸 죄책감을 계속 끌어안고 사는 남편 호시안(Joxian). 호세 마리와는 달리 최전선에 나서지는 않지만 바스크의 문화와 에우스케라(Euskera)로 된 텍스트를 만들며 나름의 투쟁을 하고 있는 고르카(Gorka), 그리고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지만 결국 발목이 잡히고 두 입장의 화합과 새로운 방향을 위해 노력하는 아란차(Arrantxa).
Patria는 이 가족들을 통해 각기 다른 방식의 투쟁들을 보여주고, 그들이 반목하고 서로를 압박하는 양태를 통해 군중심리와 또래의 압력이 것이 한 개인을 어떻게 몰고 가며 파괴와 공허함에 이르기까지 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쉬운 지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착실하게 쌓아서 간결하게 터트리는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 특히 여성 캐릭터(네레아와 아란차)가 수동적이고 전형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성소수자인 고르카 캐릭터 또한 그러한 전형성에 기반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모든 인물들이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강렬하게 호소하는 지점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켜켜이 쌓인다. 그리고 모든 에피소드들을 지나 광장에서 두 여성(미렌과 비토리)이 마주치는 마지막의 짧은 순간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감정의 작은 배출구가 잠시나마 열렸다가 닫히는데 그 울림이 꽤나 오래 이어진다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Patria는 쇼 러너와 감독, 주/조연 배우뿐 아니라 음악 감독까지도 모두 바스크 지방 출신으로 꾸려진 팀에 의해 만들어져 2021년 Forqué 시상식과 Ferroz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로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