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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Dec 24. 2023

음성메시지: 직접 얘기하고 싶었다면 내가 전화를 했겠지

스페인에 지내면서 가장 싫어했던 문화 중 하나가 바로 메시징 앱에서 음성녹음 메시지를 애용하는 문화였다. 음성 메시지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드물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바로 끊고 문자를 남기는 문화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던 문화였다. WhatsApp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거기에 죄다 보이스 메시지가 되돌아오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도저히 왜 이러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그 의문은 점차 은근한 분노로 변질되어 갔다. 여러모로 나는 이것이 게으르고 무례하다 생각했기에.

가장 직관적인 문제는 화면에서 곧바로 답변 내용을 알 수 없었다는 것.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떤 것을 하기로 했는지 결정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그 메시지의 내용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이들은 절대로 요지만 정리해서 대답하는 적이 없다. 메시지를 읽고 마치 통화하듯이 본인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말하는데 굳이 내가 그들의 추임새와 중언부언까지를 파헤쳐가며 원하는 내용이 나올 때까지 스피커에 귀를 대고 있어야 하는 건 고역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보이스 메시지가 발신자 중심적이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일을 하면서 답변을 쓰고 싶다, 아니면 양손이 번거로워서 타이핑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음성 메시지만이 선택지는 아니다. 음성입력으로도 문자화된 답변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여 작성하여 보낸 사람에게,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확인, 수정 그리고 정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보내버린다는 것은 수신자에게 그 과정을 맡겨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내용만큼이나 방식과 형태, 형식 또한 중요하다.

간단하게 통화로 끝낼 수 있는 의사소통이 있고, 보다 정중하고 공식적인 레터나 문건의 형태로 진행되어야 하는 교류도 있다. 그 사이에 이메일, WhatsApp 과도 같은 가벼운 문자 커뮤니케이션이 있고 내가 그 방식을 선택한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는데, 새롭게 등장한 보이스 메시지라는 형태가 보다 통화에 가까운 형태 탓에 그 의도를 정확하게 무시하게 되어버렸다.

심지어 음성 메시지를 1.5배속으로 듣는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음성 메시지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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