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지방선거의 결과는 놀라웠다.
직전 지방선거에서 PSC, Junts per Catalunya와 비등한 득표를 얻고, Pere Aragonès를 주 수반에 앉히기도 하며 실질적으로 카탈루냐 내의 여론을 주도하다시피 했던 ERC가 크게 주저앉으며 제3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4년 지방예산안 협의가 되지 않던 상황에서 ERC가 도박처럼 시도한 조기 지방선거는 큰 실패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지난 21년 선거에서 비등하게 30석 남짓을 균등하게 가져가던 ERC/Junts/PSC 사이의 균형은 PSC를 향해 크게 기울었고, 모든 책임을 지고 당 대표는 사임을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정당만으로 과반이 되지 않는 상황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Junts, ERC, Comuns, CUP는 각각 35, 20, 6, 4석을 가져갔고 이를 다 합쳐도 65석에 불과하여, 과반인 68석이 되지 못한다. 과반이 가능한 유일한 조합은 PSC(42)+ERC(20)+Comuns(6)=68석으로, 가장 큰 의석을 얻은 PSC, 즉 중앙 정부 PSOE의 카탈루냐 지부가 정부 구성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Procés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도 꾸역꾸역 움직여야 했던 Junts
2017년부터 카탈루냐를 숨 막히게 만든 독립에 대한 갈등과 반목은 어느덧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동일하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읊고 있으나 우파와 좌파라는 근본적인 이념 차이로 인해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Junts per Catalunya와 ERC 사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고, 그 사이 ERC가 페드로 산체스의 집권을 지지하는 등 PSOE와 묘한 연대감을 유지하며 Junts와 도리어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아 보였다.
10년 넘게 답보상태에 놓인 독립운동은 카탈루냐 사람들을 분명 피곤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21년에 결정된 일부의 사면을 통해 어느 정도는 18년에 벌어진 독단적 독립운동 이후의 국면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 같다.
2021년, 수감된 카탈루냐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개별사면이 결정되며 ERC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오리올 융케라스(Oriol Junqueras)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 반면 여전히 브뤼셀에서 망명 중이며 법적 판결을 받지 않은 Junts의 수장인 카를레스 푸지데몬(Carles Puigdemont)은 당연히 이 사면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21년 사면 이후의 후속 조치로 카탈루냐 독립선언 전체에 대한 사면(amnistía)이나 푸지데몬 개인에 대한 사면(indulto)이 논의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Junts와 중앙정부 사이의 갈등 국면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
동일하게 독립운동의 피로감을 느끼는 ERC/Junts 중 여전히 해소되어야 할 목표가 분명히 남아있는 Junts의 지지자들이 더 많이 움직였기에 의석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PSC와 PP의 엄청난 약진: 보다 실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열망?
선거 결과를 축하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PSC를 대표했던 살바도르 이야(Salvador Illa)는, 45년 만에 제1당이 되는 데 성공한 PSC의 성공이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든 간에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카탈루냐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분명 카탈루냐에 대한 독립을 둘러싼 내분을 종식하고 결국 2017년 10월 이전의 상태, 즉 스페인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자주성을 가지고 있었던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의 회귀를 언급했다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2021년에 있었던 카탈루냐 독립운동 수감자들에 대한 사면에 대해 PSOE/PSC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수혜를 얻은 ERC는 도리어 지지기반을 뺏긴 것처럼 보였다는 점.
PSC의 성공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PP당이 이전에 갖고 있던 3석에서 훨씬 더 많은 15석을 가지게 된 점이다. Vox가 이전과 동일한 11석을 가져간 것에 비해서는 확실한 성공이라 볼 수 있겠다. 다만, PP는 이 선거의 주축에 있었던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Alejandro Fernández)에 대해서는 섣불리 공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번 선거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존재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Ciudadanos당을 흡수하여 당세를 늘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탈루냐 내에서도 보이는 극우화: Aliança Catalana
가장 적은 의석을 얻은 정당으로 알리안사 카탈라나(Aliança Catalana)가 있다. 2020년에 창당된 이 정당은 카탈루냐 독립을 강하게 지지함과 동시에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극렬한 반대를 표방하는 극우정당으로, Vox의 카탈루냐 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카탈루냐 독립과 무슬림 이민자를 제외한 다른 사안에서는 의외로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인데 임신 중절권 혹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는 묘하게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선거에서 2석을 얻었다는 점에서, 2006년 창당 이후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 2014년 15-M의 거대한 흐름을 타고 존재감을 얻었던 Ciudadanos보다는 더 유리한 시작을 한 것도 같지만 그러한 지점에서 결국 더 공격적이고 스펙트럼의 극단에 위치한 메시지가 더 쉽게 불타는 것일까 씁쓸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