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넷>, 그리고 디즈니플러스 <운명전쟁 49>를 보고.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라는 햄릿의 독백은, 단순히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의 선택(choice)에 대한 고뇌가 아니었다. 삶이 냉혹하고 갑작스럽게 던지는 차가운 시련을 개인은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자문(question)이었다.
정말로 뜬금없지만,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 회자되었던 샤머니즘 서바이벌 예능이 떠올랐다. 불가지론자로써 종교, 신과 무당, 그리고 사주조차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이런 방송이 너무 기괴했지만, 영험한 존재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확신에 기반해 거침없이 내뱉는 그들의 말을 실재와 연결시키며 놀라는 패널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인간의 상상력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두 명의 참가자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흡사 데스매치와 같은 구도 속에서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고 보듬어주는 광경에서, 이윽고 이 분들이 어떤 소명으로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지를 느끼고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햄넷은 논리적 인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당대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시련에 대해 개인들이 어떻게 극복하려 노력하는지를 그린다. 극복의 과정에서 개인적인 것이 어떻게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어 모두의 시련과 극복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문학과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상상이 얼마나 큰 가교 역할을 하는지를 절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두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지킬 것이라는 아녜스의 예언은, 한 영혼을 나눠 찾아온 쌍둥이의 모습으로 운명의 도전을 받는다. 주디스를 걱정하며 숲을 떠나지 못하는 아녜스의 필사적인 노력은 도리어 쌍둥이들이 죽음에 대해 용감하게 도전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맞닥트리는 고전적 아이러니로 치닫고, 큰 상실의 고통 속에서 아내는 내면의 슬픔으로 파고드는 반면 남편은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자식 대신 자신을 죽음으로 치환시키며 슬픔을 거대한 무언가로 승화한다.
클로이 자오는 노매드랜드, 그리고 이터널스를 통해 목가적이고 장엄한 분위기로 관객을 어떻게 압도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왔다. 그리고 그 장점이 맥스 리히터의 스코어와 두 주연의 호연과 맞닿아서 엄청난 공명으로 관객에게 그대로 휘몰아친다. 관객은 거대한 운명처럼 실재라고 믿기 힘든 여러 광경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는 전적으로 여러 재능의 중심에 있는 감독의 역량이라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