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성수 연방을 좋아했던 이유
성수 연방과의 만남은 꽤나 떠들썩했다. 우리 팀 과장님이 새로운 밥집(?)겸 카페가 생겼다며 이곳을 처음 데려왔다. 뻔한 점심 레퍼토리에 지쳐있던 찰나에 새로운 핫플레이스는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과장님을 따라나서긴 했는데, 자꾸만 후미진 골목으로 이끌어서 대체 이널 곳에 뭐가 있지 싶었다. 궁금함을 숨기며 몇 걸음 더 걸었더니 대림창고 뒤편 정비 공장 골목에 '성수 연방'이란 글자가 큼지막히 적힌 적색 벽돌 건물이 나왔다. 성수 연방에는 각종 브랜드와 식당이 중앙 공터를 중심으로 모여있었고, 그 모습은 흡사 건대 커먼그라운드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다만 그에 비해 성수 연방의 규모는 좀 아쉬웠다.
그럼에도, 중앙의 파빌리온 정원이 멋졌고 중앙 정원을 에워싼 독특한 건물 형태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곳이 곧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성수동에 놀러 온 날이면 어김없이 '성수 연방'을 소개해줬다.
새로 생긴 공간이어서도 있지만, 이곳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카페에서 떠는 '수다' 이상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은 날에는 늘 코스처럼 띵굴 스토어에서 큐레이션 된 다양한 소품을 구경하고, 작은 액세서리나 잡화를 사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건넛편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끼니를 이미 때웠다면 아크 앤 북을 들린다. 새로 매대에 올라온 책을 구경하고 재밌어 보이면 구매한다. 같이 온 친구와 책을 읽다 살짝 지루하면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잡화, 문구류를 쓰윽 둘러본다.
그럼에도 시간이 남는다면 천상 가옥 카페로 올라가 수다를 떤다.
나는 이렇게 친구, 애인 등 많은 사람과 이곳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띵굴 스토어와 그보다 더 좋아하는 아크 앤 북이 회사 가까이에 있어 이렇게 자주 들릴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OTD(성수 연방을 기획, 운영하는 회사)가 힘들다는 기사를 접하고 머잖아 성수 연방에서 아크 앤 북이 사라졌다. 아크 앤 북 자리에는 핑크색 간판의 팬케익 가게가 생겼는데, 내가 좋아하는 아크 앤 북을 밀어낸 공주풍 팬케익 가게는 그 존재만으로 성수 연방 고유의 분위기를 해쳤다. 왠지 얄미운 팬케익 가게를 곁눈질하며 둘러보는데, 아크 앤 북 전체 면적의 큰 식당엔 주문하는 사람 한 명이 없었다.
그런데 텅텅 빈 것은 비단 그 팬케익 가게뿐만이 아니었다. 성수 연방에 입점한 몇몇 식당도 가게 영업을 안 하고, 중앙 파빌리온은 사라진 지 오래였으며 그 주위로 자라난 무성한 풀이 관리자의 무신경함을 풀풀 풍겨댔다.
"아.. 성수 연방 이대로 망하는 거 아닌가!, 안되는데..."
성수 연방을 관리한다는 OTD는 띵굴 스토어, 아크 앤 북, 카페 '적당'등을 기획한 회사로 내가 애정 하는 몇 안 되는 회사 중 한 곳이다. 이곳이 론칭하는 브랜드마다 나의 취향을 저격했고 몹시 애정 했지만, 경영난 소식과 더불어 그 영향 때문인지 이곳 성수 연방도 초기의 콘셉트를 잃은 듯한 분위기였다. '성수 연방'의 변화가 내 아픈 손가락을 보는 것 같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