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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Aug 26.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일장춘몽

"야 너가 운전해."


상기된 진호의 얼굴. 분노의 폭발이 임박 했음을 알리고 있다. 뒷 좌석에서 양말을 벗어 던진 채 반쯤 누워 있던 김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킨다.


"너 이 자식 지금 뭐라고 했어?"


진호는 빽미러로 김사장의 얼굴을 스윽 쳐다 보더니 그대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 버린다.


"끼이이익."


누가봐도 고급진 검은 외제차 한 대가 도로 위에 새까만 타이어 자국을 남기며 멈춰선다.


경부 고속도로 한 복판에 멈춰선 차량.

운전석 문이 열리며 진호가 내린다. 넥타이를 반 쯤 풀어 헤치더니 그대로 뒷 좌석으로 향하는 그 였다.

김사장은 열이 바짝 오른 진호의 모습이 마치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로 보였다. 겁을 잔뜩 먹은 그는 차문을 걸어 잠그려 했지만 나이 탓인지 행동이 굼뜬 탓인지 차문은 이미 열린 상태였다.


"내려."


차분하다 못해 지독하게 가라앉은 저음의 목소리가 김사장의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으응? 내..내리라니? 자네..지금 뭐하자는 것인가?"


진호는 한숨을 깊게 내 뱉더니 이내 김사장의 멱살을 잡아 채어 차에서 그를 끌어 낸다.


"어이쿠...이 놈이 사람 잡네..."


그대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김사장.

천천히 아주 조심스레 진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진짜 더 이상은 엿 같아서 못해 먹겠다.오늘부로 사표 쓸테니까 더 이상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야!! 내가 무슨 네 놈 시다바리냐? 뭔 잔소리가 그리 많아?"


"시..시다바리...는 아니더라도..자네는 내 수행 기사 아닌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슬그머니 입을 여는 김사장의 음성이 심하게 떨린다.


"후....우... 좋아. 그래... 내가 수행기사였지...후우.."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 한개비를 꺼내드는 진호.

김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호의 담배에 라이터를 갔다 댄다.


"일단은 담배 한 대 피면서 흥분 좀 가라 앉히게...자네 지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지? 암...이해해..

일단은 진정 하면서....커억.."


김사장이 복부를 움켜쥔 채 바닥을 뒹근다.


"아이고오....이 놈이...기어코..."


와이셔츠 단추를 두 어개 풀어 헤치며 진호가 다가 온다.


"내가 왜 스트레스 받는지는 알고 이야기 하는 거야? 앙? 그래 운전이야 내 업무니깐 한다 이거야. 그런데 뭔 놈이 뒤에서 그렇게 궁시렁 궁시렁... 이빨을 확 다 뽑아 버릴라!!!"


이게 무슨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김사장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현재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다. 하지만 자신의 턱 관절을 움켜쥔 채 강한 눈빛을 쏟아 붓고 있는 진호를 보니 이것은 현실임이 분명함을 실감한다.


"이 보게 진호...내가 어떻게 해야 자네의 화를 풀어 줄 수 있는지..말 좀 해보게? 우린 배운 사람들 아닌가...그 주먹 좀 내려 놓고 우리 현명하게...대처 해보세..응?"


김사장의 말에 진호의 귀가 쫑긋해진다. 이 내 턱을 움켜쥔 왼 손의 힘을 풀더니 김사장을 놓아 준다.


"허허..지금 내 화를 풀어 주겠다고 말한 건가?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삼정유통 사장 김만복씨 당신이???"


진호는 흥미롭다는 듯이 김사장을 쳐다 보았다.


"그..그래..내가 자네 화를 풀어 주겠네.. 어떻게 하면 그 화를 진정 시킬 수 있을지 말해보게..."


순간 자동차 한대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진호는 화들짝 놀라며 정신이 번쩍 깬다. 고속도로 한 복판에 세워진 자동차, 바닥에 반쯤 널 부러져 자신을 향해 무릎끓고 하소연하고 있는 김사장의 모습.


'히익...뭐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너무 흥분한 탓에 정신줄을 놓고 있던 진호의 상태가 되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은 되돌릴 수 없어 보였다. 여전히 무릎끓고 죄인의 모습으로 사죄하는 김사장은 쉴새 없이 조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동안 자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준 것 같아 미안하네...하지만 나도 ...."


진호의 머릿 속은 복잡해졌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아마도 이대로 서울에 입성해서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모가지가 날아 가는 것은 기정화 된 사실 이렸다.


'그래...기왕 이리 된 거... 서울까지 나도 갑질이나 해보자...'


진호는 굳은 결심을 했다. 크게 호흡을 들이마신 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당신이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운전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해."


김사장과 진호의 위치가 바뀐 채 자동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상석에 앉은 진호는 그 기분을 만끽하며 빽미러를 통해 김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잔뜩 긴장한 채 앞만 보고 운전하는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내가 평상시 저 표정으로 살고 있는 건가....'


순간 기분이 씁쓸해지면서 화가 치밀었다.


"1차선으로 진입해라."


"그..그러지..."


김사장의 대답에 순간 진호는 울컥 하더니 운전석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뭐? 그러지? 대답 길게 안하냐? 지금부터 대답은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라고 한다. 알겠어?"


김사장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대꾸 하지 않은 채 차를 몰았다. 그런 그의 태도가 또 다시 진호의 화를 돋구고야 말았다.


"차 세워...내 말 안들리냐? 차 세우라고!!!"


그제서야 진호의 광기에 겁을 먹은 김사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알겠습니다."


진호는 그런 김사장의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됐다... 그냥 계속 운전해."

서울로 향하는 차 안. 진호는 그 동안 김사장이 자신에게 했던 사람 이하의 대우를 상기 시키며 그대로 되갚아 주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김사장의 셔츠는 땀으로 뒤 범벅이 되었고,옆으로 곧게 넘긴 머리는 헝크러져 속알머리를 환하게 드러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빨리 서울 톨케이트가 보이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까지는  한 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충청북도 라는 간판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뒷 좌석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팔자 늘어졌구만....나도 졸려 미치겠는데....말 나온김에 좀 쉬다갈까...'


김사장은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세상 모르게 골아 떨어진 진호의 모습. 그런데 그 순간 김사장은 무언가 찐한 감정을 느꼈다. 깊은 잠에 빠진 진호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고생하긴 했구만....이렇게 성깔 더러운 놈이 화를 삭이고 살았으니....쯧..."


안스러운 마음에 김사장은 옆 좌석에 놓여진 진호의 자켓을 들어 그의 몸을 덮어 주었다.


"내 통크게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해주겠네...."


김사장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다시 차량을 몰기 시작했다. 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살포시 눈을 뜨는 진호.

사실 그는 잠들지 않았었다. 자는 척을 하며 김사장을 시험했던 것이다.만약 그가 자신이 잠든 틈을 타 허튼 짓을 했다면 담판을 지으려 했는데 의외의 행동을 보인 김사장의 모습에 진호의 가슴 밑바닥에선 알 수 없는 뭉클함이 피어 올랐다.


"저...저기... 김사장....힘들지....않으"


그 때였다. 차 안에 지독한 냄새가 퍼지면서 진호의 미간이 찡그러졌다.


"아악... 이게 무슨 냄새야 젠장......"


평소 자신을 열받게 했던 김사장의 생리현상이 터진 것이다.화해 분위기에 찬 물을 껴 앉는 지독함이었다.


"아악 짜증나... 뒈지기 싫음 운전 똑바로..."


그런데 이상했다. 그의 가스를 들여 마신 순간부터 몸에 힘이 빠지고 팔 다리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희미 해지는 눈동자.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검은 그림자.

김사장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온다.


"아아악...오지마... 안돼."



쾅쾅쾅!!!!!


창문을 부서질 듯 요란한 두드림에  놀라 잠에서 깨는 진호.

김사장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거칠게 통변한다.


"야 이놈새끼 좀 보게...대기하고 있으랬더니 아주 모텔을 차렸네! 퍼득 문 안 열어?"


정신을 차려 시계를 보는 진호.

오후 4시 30분이었다.


진호가 김사장을 기다리며 대기를 탄지 정확히 8시간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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