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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Sep 08.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뭔 개소리야!!!"


거울을 보며 수염을 다듬고 있던 승헌에게 전해진 소식. 그의 화는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그게 아랫 녀석 중 하나가 청소를 하던 중 그만..."

면도 거품을 닦아 낼 틈도 없이 승헌은 빠른 걸음으로 서재로 향했다.

"이런 젠장!!!"

그 의 두 눈에 들어 온 풍경. 바닥에 널 부러진 물건들. 그 물건들 속에 선명하게 보이는 깨진 도자기 파편들. 그리고 그 잔재들 위에 멍하니 서서 그를 바라보는 한 청년.

"이 병신 같은 새끼가 진짜!!!"

승헌의 분노를 대변하듯 그의 발길질이 청년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그 충격에 균형을 잃은 청년이 한 쪽 벽면까지 밀려 나 벽에 부딫혔다. 그에 멈추지 않고 승헌은 격하게 청년을 향해 달려 들었고 그 바람에 책상에 세워져 있던 액자 하나가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며 유리 파편을 튀겼다.

"니가 뭔데 감히 이 서재에 있어 누구 허락도 없이..엉?"

"아니 저..그게."

청년이 변명할 틈도 없이 또 다시 거칠게 날아드는 승헌의 주먹과 손바닥.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부하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한 번 폭발하면 거의 사람을 반 죽여 놓는 승헌의 성질머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헉...저 그게....오해가...."

자신에게 뭔가 변명하려 하는 청년의 행동에 화의 정점을 찍은 승헌.

"퍼억.."

그대로 주먹이 청년의 명치를 강하게 강타해 버렸다.

"아....ㅇㅇ,.으ㅡㅡ"

앞으로 고꾸라지는 청년. 승헌의 주먹이 얼마나 심한 구타가 발생 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손이 청년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건"

광경을 지켜보던 부하 중 하나가 서둘러 그에게 수건을 건넨다.

"아 젠장 진짜 엿 됐네...이 도자기....BOSS가 굉장히 아끼는 골동품인데...이제 어쩌냐.."

깨진 도자기 파편을 바라보는 승헌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 때 수건을 건네 준 부하가 우물쭈물하며 승헌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왜 새꺄... 너도 쳐 맞고 싶어 근질근질 하냐?"

부하가 승헌의 눈빛에 압도당해 말을 더듬는다.

"저..그게 뭔가 ..착오가 있으 신 것 같은데....이 도자기는 저 녀석이 깨.....뜨..."

"뭐? 어쩌라고? 암튼 이미 깨진 건 깨진거 아냐. 근데 넌 왜 그걸 이제 말해 엉?"

승헌은 살짝 당황하며 바닥에 쓰러진 청년에게 다가간다.

"이봐...어이.."

반응이 없다. 다른 부하 중 하나가 다가와 청년의 몸을 뒤집는다. 퉁퉁 부어 오른 얼굴. 그의 뺨을 가볍게 터치하며 그를 깨워 보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다.

"저....녀석이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승헌의 표정이 굳어진다. 부하의 말이 믿기지 않는 지 청년의 얼굴로 다가와 숨을 확인해 본다. 역시 반응이 없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이런 큰일 났군....'

다급해진 승헌이 청년을 똑 바로 눕히고 가슴 압박을 시도해 보지만 그의 호흡은 여전히 정지 상태다.

"시..신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겁먹은 부하 중 하나가 조심스레 핸드폰을 건네며 승헌의 눈치를 살핀다.

"이런 병신 새끼!! 너 우리 조직 산산조각 나는 꼴 보고 싶냐? 젠장...BOSS가 신신당부 하고 갔는데..."

숨이 멈춰버린 청년. 그 청년을 중심으로 좁은 서재에 모여 있는 다섯의 남자.그들은 그렇게 멍하니 서서 공간의 고요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적막을 깨며 부하 하나가 구원의 말길을 열었다.

"제게...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이 사건을 단순한 사고사로 위장 하는 건 어떨까요?"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 같은 건달들한테 사람 한 두명 죽는 거야 일도 아니지 말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서재를 청소하던 이 놈이 실수로 발을 헛디뎌 뇌진탕이 온 겁니다. 우리는 뒤 늦게 죽어있는 녀석을 발견한 거죠."

부하의 말을 듣고 있던 승헌이 의문을 제기했다.

"뭐 너 말대로 죽은 놈이야 어떻게든 처리하면 되지만.....그럼 도자기는 어떻게 하냐?"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뭐 사실 도자기를 깬 범인은 명백히 이 녀석이지 않습니까...우리는 그저 사건을 우연으로 위장하기만 하면 되는 거죠."

"크....자네 이름이 뭔가...내 오늘 일만 잘 처리 되면 자네를 꼭 기억 하겠어."

"김동훈 입니다. 저에게 맡기시고 어서 BOSS를 마중나갈 준비를 하시는 게..."

그제서야 승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난 면도를 마무리 할테니....자네가 책임지고 일을 마무리 짓게... 믿는다."

승헌은 동훈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방을 나섰다.



"오셨습니까!"

승헌이 허리를 잔뜩 구부려 새하얗게 머리가 새어버린 노인에게 예우를 표시한다. 그는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승헌의 안내에 이끌려 검은 세단에 몸을 싣는다.

"그래 별일이야 물론 없었겠지?"

"그..그렇습니다. 특히 신경을 많이 써서 별일이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씨익 웃으며 차 시트에 몸을 기댄다.

"역시 승헌이 자네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차세대 리더야. 암..."


자동차는 공항도로를 지나 어느 덧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노인은 창 밖을 바라보며 무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고, 승헌은 자꾸만 그의 눈치를 살피며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 승헌이..."

한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노인의 입이 열렸다.

"내 사실...자네한테 하고 픈 이야기가 있네."

노인은 안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지갑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그 남자의 모습이 유난히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승헌이었다.

"누구...누구 입니까?"

노인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내 하나밖에 없는 혈육. 늦둥이 아들일세. 자네도 봤을거야.내 특별히 서재 정리를 시키고 있지.자네도 알다시피 내 원체 의심이 많지 않은가. 나를 포함해 내 서재에 드나드는 사람. 자네...그리고 내 늦둥이 아들 뿐이지.."

끼이이이이익~~~~~

노인을 테운 검은 세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로 갓길에 멈춰섰다.

"무...무슨 일이야?"

노인이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승헌의 눈치를 살핀다. 빽미러에 비친 승헌의 표정이 몹시도 불안해 보인다.

"조...죄송 합니다. 어젯 밤 잠을 설쳐서..."

"자네 괜찮은가?"

승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노인의 두 눈을 응시하며 묻는다.

"그...그러니까... 아..아들이라는 것 입니까? 하나 뿐인..."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놀랐구만 자네도 역시...그렇지 내 하나뿐인 아들일세. 서재를 드나들며 한 번정도는 봤을 거라 생각했다만...왜 있잖아... 내 책상 위에 액자. 그게 가족 사진인데...음.. 오늘 사무실에 도착하면 직접 소개 시켜 줄 생각이었네. 오늘 서재 정리를 시켰는데 잘 했을려나 모르겠군.."


노인의 말에 승헌은 눈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서둘러 가세. 내 아들과 자네의 조합이라..이거 생각만 해도 떨리는 군.."

승헌은 패닉에 빠졌다. 자신이 쉴새없이 구타해서 황천길로 보낸 청년. 그는 분명 BOSS의 하나뿐인 혈육임이 분명해 졌기 때문이다. 승헌은 자신이 어떻게 운전대를 잡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영혼이 나간 채 손에 들린 핸들만이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을 뿐이다.

"내 아들은 말야... 이 쪽 일을 하기엔 너무 곧고 올바르지. 녀석이 공부도 잘해서 이번에 로스쿨에 들어 갔네. 녀석이 빨리 성장해서 검사나 변호사가 되 주면..."

노인의 이야기가 이어 질수록 점점 더 심해의 깊은 미로에 갇히는 듯한 승헌. 급기야 이성의 끈을 놓기 시작했다. 세상은 흑백 티비 속 화면처럼 어두워지고, 현기증이 일었다. 이미 그의 두뇌는 그의 몸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고, 오로지 손만이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부여 잡고 있을 뿐.....

자동차는 직진 코스의 끝인 교차로에 접어 들었다. 조금 있으면 정지 신호가 뜰 타이밍인지 신호등은 노란불을 가리켰다.하지만 승헌의 눈에 신호 따위는 들어 올리 없었다.

'젠장..제길...젠장....이제 어쩌지...'

노인의 아들을 죽인 승헌의 정신 상태는 이미 카오스에 도달했다. 무의식 속에 그는 가속 페달을 밟은 오른 발에 체중을 실었다.자동차 계기판의 속도계가 점점 큰 숫자를 향해 나아갔고, 뒤늦게 노인의 다급한 음성이 승헌의 귀에 파고 들었다.

"시..신호 지켜!!!"

하지만 이미 그들의 차량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접어 들었다. 승헌의 왼편으로 거대한 화물차 한대가 그들이 탄 차량을 향해 달려왔다.


"오늘 서울 IC 근처에서 일어난 충돌 사고로 조직 폭력배 두목 박상천씨와 백승헌씨가.....
두목 박상천의 아들 박거세씨 역시 자택에서 뇌진탕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승헌이 원하는대로 사건은 잘 마무리 되었다.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걸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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