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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Sep 15.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한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클 때까지 버텨. 크크크"

친구들의 응원 속에 진탕 마신 어젯 밤의 열기. 난 아직도 취해 있는 상태인가? 
분명히 기억 난다. 친구들을 하나 둘 택시 태워 보내고 마지막으로 택시에 올라

"아저씨 면목동이요."

그런데 도대체 난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눈 앞에 펼쳐지는 모래사장과 사방을 포위한 새파란 바다.
사람은 나를 제외 하고는 없다. 즉 이 곳은 무인도라는 결론이 나온다.

"우우웅 우우웅~~"

짧지만 강렬한 진동이 내 뒷 주머니 에서 울린다. 핸드폰의 존재를 깨 닫는 순간이다.
문자가 한 통 날라왔다. 회사였다.

(오늘 오전 10시까지 지정된 자리에 착석 하길 바랍니다. 자리에 없을 시 합격 무효 처리)

일방적이었다. 나쁜 자식들 어떻게 합격한 회사인데...무효 처리라니...핸드폰을 들여다 보니 부재중 통화도 5통 와 있는 상태였다. 물론 전부 회사로 부터 걸려 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지금 시각 오전 9시 30분.
밧데리 전원은 곧 소멸 될 것으로 보인다. 화면 속 밧데리 표시 화면에 분명하게 떠 있는 1%라는 글씨가
내 예상에 힘을 더한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전화가 걸려오고 문자가 날아 왔다는 것이다. 문명의 손길이 완전히 끊긴 무인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다라는 사실 자체가 이 곳을 빠져 나간다 한들 오전 10시까지 회사로 출근하여 자리에 착석하는 행위는 불가능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사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회사를 잘린다는 것 보다 이 곳이 무인도라는 것. 먹을 것...마실 것...그리고 그 흔한 대화상대....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난 굶어 죽거나 ...아무튼 죽는다. 그리고 그 사실이 기정 사실화 되는 이유는 난 수영을 할  지 모를 뿐더러, 물 공포증 환자라는 것이다. 어릴 적 물 속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간신히 살아 나온 경험이 트라우마로 강력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난 바다를 쳐다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라 하지 않던가? 섬을 알고 나를 알면 분명히 돌파구는 있을 것이다.

 섬은 생각보다 작았다. 학창 시절 뛰 놀던 운동장의 반 정도 사이즈? 섬을 살펴 볼수록 의문점 투성이었다. 

"엥? 어떻게 야자수랑 소나무가 한 곳에서 자라고 있지?"

열대기후의 대표 활엽수인 야자나무 그리고 그 옆을 버젓히 지키고 있는 대표 침엽수 소나무.
이것은 도대체 어느 기후의 무인도란 말인가?  그 뿐이 아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모래사장에 커다랗게 구호 문구를 적던 나는 또 다른 의문점을 발견했다. 최대한 크고 굵직한 글씨를 새기기 위해, 깊숙히 땅을 파고 내려 가던 그 순간, 굉장히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 막혔다.

"뭐..뭐지 여기 왜 콘...콘크리트 바닥이.."

순간 확신이 들었다. 이 곳은 무인도가 아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세트장이라고 말이다.그리고 난 최대한 감각을 살려 주변을 살피다가 뜻 밖의 소음에 청각이 곤두 섰다. 그 것은 어디선가 울려대는 경고음이었다. 

 그 때였다. 구름 한 점없이 펼쳐진 하늘에 600 이라는 글씨가 생겨났다.

600....599..........598......597 줄어들기 시작하는 숫자.
본능적으로 내 두 눈은 손목에 채워진 시계로 향했다. 9시 50분...회사가 요구한 출근 시간 10시
남은 시간은 십 분. 분을 초 단위로 바꾸면 60초 거기에 곱하기 10을 하면 600....!!!!!

"제길 이건 테스트구나!!!"

빌어먹을 회사. 최종 면접에 합격 했다는 통보로 긴장감을 풀게 만들더니 이렇게 보란듯이 마지막 면접을 강행하고 있다니...갑질의 끝을 보여주는 기업의 행동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하지만 이번 취업의 기회를 어떻게 얻었는데...

 시간이 없다. 아무리 얄밉고 못 미더운 회사의 방식이라지만 난 이번 취업 만큼은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이 곳을 빠져 나갈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흘러가는 시계. 줄어드는 시간 하지만 난 그 조급함 속에서도 꼼꼼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땅을 파보면 밖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지, 어울리지 않는 나무의 조합에 비밀열쇠가 있다던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고 행동에 옮겨 보았다.

277......276......275.......................187 남은 시간은 이제 삼 분. 사실 상 내 상태는 망연자실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도무지 탈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공학도인 나는 수학문제는 자신있다. 차라리 계산하고 통계를 내는 문제가 주어 졌다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이 테스트는 나에게 어떠한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난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속절없이 흘러가는 초 시계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00.........99......97

그 때였다,. 초 시계 옆에 아주 작은 영문의 글씨가 내 눈에 들어 온 것이. 눈을 찡그려 가며 글자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집중했다.

"E? X..............I..... 엑시트? 비상구?"

그랬다. 숫자 옆에 작은 글씨로 그 곳이 비상구 즉 탈출구 임을 알아내는 순간이었다. 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난 또 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아무리 세트장이고 인공 파도라 한들 
그것이 물임은 변하지 않았다. 물을 두려워 하는 내게 있어 그것이 인공 풀장이든 해수욕장이든 변하지 않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두렵다. 이대로 합격의 기회가 코 앞에서 날아가는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난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그 어떤 상황보다 심한 내적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마지막 관문이 물이란 말인가....  그 순간 내 뇌리를 스쳐가는 이력서.
그리고 그 곳에 있었던 4번째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이 살면서 겪은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무엇이며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서술 하시오. 2000자)

웃음이 났다. 이 빌어먹을 회사의 치밀함에 두 손 두 발 드는 순간이었다. 시계를 바라 본다. 웃음이 더욱 커진다. 분명한건 웃고 있지만 눈가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나온다. 내가 웃는 게 웃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단들 하시네요. 진짜.. 당신들 끝까지.... 이렇게 사람 가지고 노니까 즐겁습니까? 젠장!!!"

난 세트장이 떠나갈 듯 크게 외쳤지만 아무도 답변하지 않았다. 결국 터져 나온 건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모래를 한 웅큼 움켜 쥐고 서럽게 울었다.

5....4....3......2.............1 종료.

난 결국 탈출하지 못했다. 아니 두려움 때문에 그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물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또 다시 내 발목을 붙잡는 순간이었다. 초 시계가 멈추자 사방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시계가 있던 자리만 불이 들어 오더니 속 안이 비춰졌다. 그리고는 남자의 음성이 흘러 나온다.

"서주형씨 분명 주형씨의 이력서에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더욱 단단한 존재가 되었다 서술 하셨습니다.하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 당신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남자의 이야기가 끝이나자 세트장은 또 다시 어둠이 찾아 오더니 이내 밝아졌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비상구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어느 덧 세트장을 매섭게 몰아치던 파도도 잠잠해진 상태였다.

"수고 하셨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 난 망치로 머리통을 세게 얻어 맞은 듯한 큰 충격에 빠진다.내게로 다가오는 남자. 그리고 내가 그토록 두려워 하던 물. 
물의 깊이는 남자의 무릎팍을 조금 적실 정도로 얕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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