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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Feb 01. 2017

세상 끝에서 커피 한잔

현대사회의 가족상일까?

며칠 전 "세상 끝에서 커피 한잔"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다. 꽤 철학적인 제목이라 제목에 끌렸음에도 요즘은 웃고만 싶어서 우울한 영화를 피해왔었다. 그러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던 일요일 오후 볼 영화도 유튜브도 없어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 없다가 생각이 생겼다. ㅋ


영화를 보기 전엔 커피는 그냥 상징적인 의미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포스터만 봐도 영화에서 커피는 참 직접적으로 쓰였다. 진짜 커피가 나온다. 메인 주인공 중 한 명의 직업이 커피 전문 가니까. 그렇다면 왜 세상 끝에서 일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원이던 아빠가 죽었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다림 플러스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생각보다 여운이 남았다. 요즘 영화들이 하도 자극적이다 보니, 이 영화에 담겨있는 강간하는 장면이나 자식이 있지만 접대부 생활을 해야만 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 부분은 잔잔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러나 충분히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새로운 가족의 모델을 제시해주는 것 아닌가 싶었다.

카페 주인은 아마도 오늘날의 가장의 모습 (여자이지만 가장의 역할을 한다는 뜻), 그리고 두 아이와 비참하게 살고 있는 여자와 그녀의 아이 둘. 어쩌면 두 아이의 엄마와 사귀고 있는 남자가 제대로 된 남자였다면 이야기가 달리 해석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선 어쨌든 그렇지 않다. 그는 머저리 었다. 어쩌면 현대 사회의 집안에서 가장의 역할을 하는 것은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족 구성원을 리드하느냐의 능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유행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 드라마를 본 적은 없다. 현대판 키다리 아저씨라고 쓰여있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현실이 하도 힘들다 보니,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면, 아니 신앙심이 있더라도)  나를 어려움에서 건질, 해결책이 안 보이는 현실의 상황에서 이끌어낼 그 누군가를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가족처럼 나를 돌봐줄 그 누군가를 열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두 아이의 엄마가 카페 주인의 도움으로 조금씩 빛으로 걸어나오는 모습에서도 그것을 보았고, 특별한 말없이 떠나간 카페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그것을 보았다. 

가족을 뛰어넘는 나를 건져낼 어떤 존재를 바라는 것.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나는 아직까지 나를 현실의 상황에서 건재 낼만큼 유능한 존재를 바랄 정도로 절망적이지 않다. 영화를 본 후 기분이 멜랑꼴리 해졌다. 아무래도 다음엔 희망이 가득 찬 영화를 선택해서 감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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