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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u Poloi Dec 26. 2018

이젠 화산_목숨걸고 다녀온 아름다운 곳

Kawah Ijen과 반유왕이

 인도네시아는 활화산이 가장 많은 나라 중에 하나다. 물론 인도네시아는 아름다운 해변을 가지고 있고, 서퍼들에게도 다이버들에게도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자국에서 제일 볼만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몇몇 활화산 트래킹을 단연으로 꼽는다.

 발리를 여행하다 만난 인도네시아 사람들, 혹은 발리에 사는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하던 말. '자바에 가면 꼭 카와 이젠에 올라가야해. 정말 유일무이한 절경을 볼 수 있을 꺼야.'


 이젠 화산은 화산활동이 현재진행형인 활화산으로 거대한 산성 호수와 곳곳에서 끓어오르는 순도 99%의 유황을 볼 수 있다.
화산 봉우리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산성 호수인 칼데라호는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을 지니고 있는데, 그 아름다움 뒤에 산도 0에 달하는 위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젠 화산의 아름다운 풍경 외에도 유명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아이슬란드와 이젠 화산, 세계에서 딱 두 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블루 파이어’ 때문이다. 이 블루파이어는 분출되는 유황 가스가 화산의 고온 고압에 연소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독성의 유황 가스가 마구 품어져 나오고, 트래킹 코스가 험한 데다가 순수산성의 호수까지 가지고 있는 이젠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여행지 중 하나로도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젠 화산만이 가진 진귀한 광경을 보러 많은 해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배를 타고 자바에 들어서자마자 자리하고 있는 반유왕이라는 도시에서 이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발리를 떠나기 이틀 전 전, 카우치 서핑 호스트를 구하고, 온종일 걸릴 거라 예상했던 발리 아메드에서 자바 반유왕이까지는 반나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스트는 마침 그날 대학교 연극공연제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날 우리는 도시의 어느 대학교 조그만 강당에 가 연극공연까지 볼 수 있었다. 물론 인도네시아어로 진행됐지만, 중간중간 사회자가 우리를 배려해 영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줬고, 덕분에 우리는 강당 안에서 가장 특별한 손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날을 벅참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반유왕이 지역의 전통춤이 주 무대였는데, 전통 춤이 참 특별하고 자바스러운 것 같아, 이곳 이슬람은 다른 분위기의 이슬람 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도 종종 보였는데, 대학교 학생들은 히잡을 쓰고 다들 정갈한 이슬람교도 복장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가 사립대학인걸 생각하면 보수적인 부잣집 자녀들이 다니는 대학이 아닐까 생각했다.

 반유왕이에 처음 도착해서 호스트를 만나러 약 1시간을 걸어갔는데 반유왕기의 골목골목을 지날 때 마다 온 동네 아이들이 우리 근처에 모여 헬로우 헬로우를 외쳐댔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이곳 사람들의 순수성을 눈치챘다. 자바에 들어서도 반유왕기에 들어서자마자 '관광객 바가지'가 싹 없어졌다. 우리는 레스토랑에 가서도 현지인들이 내는 가격을 내고, 어디서 무얼 하든 현지인들이 내는 가격을 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주려고 했다. 발리에서는 아주 허름한 현지인 식당을 가도 바가지요금은 받기 십상이다. 아무래도 돈 많은 서양사람들이 한 해에 몇만 명이 다녀가는 탓일 거다. 하지만 현지인 요금의 ‘무조건 두 배’는 때때로 우리를 실망하게 했었다. 발리 사람들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격 덤터기를 맞는 게 끝났음이 기뻤을 뿐이다.

 반유왕이에서의 이튿날은 온종일 거센 비가 내렸다. 우리가 이젠에 올라가기로 계획한 날이었다. 이젠에 올라가려면 자정에 출발해 2시에는 이젠에 도착해 약 1시간 반을 등산하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젠과 아이슬란드에서만 볼 수 있다는 블루 파이어를 만날 수 있다. 이 불꽃은 해가 떠 있을 때는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새벽 올라가 블루 파이어를 보고 에메랄드 빛깔의 독산성의 호수를 해 뜰 녘에 본다고 한다. 이젠은 화산섬인데 이 모든 일들이 화산 봉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난생처음 화산봉우리를 오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거세게 내리는 비 따위는 상관없었다.

 오후에 일찌감치 오토바이를 빌려, 이젠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앞으로 닥쳐올 일을 모른 체.

 저녁 내내 푹 자고 일어나 우리는 자정 정각에 길을 나섰다. 편의점에 들려 물도 사고 간식도 사고, 아주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하늘도 우리를 배려하는 듯 비도 우리가 출발할 때 즈음에 맞춰 그쳐주었다. 오토바이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걸 잊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우리는 이미 도시를 벗어나 조용하고 어두운 숲길에 접어들어 있었다.

 오토바이에 남은 반 정도의 기름이 충분하길 바라며 우리는 한참을 더 달렸다. 어두운 비탈길을 끝없이 달렸고, 어느 순간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길에 흙탕물이 고여있는 것이 보였고 우리는 속도를 줄였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우리 오토바이는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남자친구는 빠르게 일어나 오토바이를 일으켰고 나도 내 몸을 일으켰다. 몸에 큰 이상은 없었다. 한 삼 분간 우리는 멍하니 서 있었다 손도 옷도 바지도 다 흙탕물 범벅이 되어있었고 입고 있던 옷들은 찢어져 있었다. 정신줄을 잡고 나니 팔다리에 상처가 가득했다. 나는 오토바이에서 넘어지면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다행으로 우리는 속도를 거의 내지 않은 상태였고, 뼈는 아주 멀쩡한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오 분 정도 고민했다. 계속 달려 이젠까지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여기서 길을 돌려 반유왕기로 돌아가야 할까. 사실 불빛하나 없는 어두운밤에 비에젓은 내리막길을 달려가는 게 훨씬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 열려있는 작은 상점에 들어가 흙탕물을 씻어낼 수 있었다. 손과 비옷에 묻은 흙탕물을 씻어내고, 가방에 들어있는 잠바로 갈아입고 커피를 한잔 마신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정말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고, 우리는 온 정신을 다 해 조심히 달리려고 노력했다. 온종일 내린 비 때문인지 길에 조그만 돌멩이도 많았고, 주위는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우리가 의지할 불빛은 오토바이 전조등뿐이었다. 20분쯤 달렸을까, 흙탕물을 다시 만났고 오토바이는 이번엔 왼쪽으로 쓰려졌다. 이번에는 다리가 미친 듯이 아팠다. 걸을 수 있는 것을 보아 뼈는 멀쩡한 것 같았지만 아픔은 10분이 지나서야 서서히 사라졌다. 넘어지는 것도 요령이 생겼는지 이번에는 옷도 멀쩡했고 살도 찢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멘탈이 붕괴되는 것 같았다. 더는 오르막길을 달리고 싶지도 않았고, 내려갈 수도 없었고, 어두운 그곳에 그대로 있을 수도 없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시 달렸다.                    


 정말 무서웠다. 오르막길을 끝없이 달리는 것도 아찔했고, 혹시라도 다시 미끄러질까 너무나도 겁이 났다. 나는 뒤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내가 제어할 수 없어서인지 더더욱 무서웠다. 남자친구 등을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아보여해도 무서운 건 똑같았다. 무슨 길로 그 길을 달렸는지, 가끔 우리를 지나가는 현지 오토바이들은 그대로 속도를 내려 우리 옆을 씽하고 지나갔고, 도대체 이 길을 어떻게 저런 속도를 내며 달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만원만 더 내면 투어 가이드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오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투어가이드와 혹은 택시기사에게 어느 정도 돈을 주고 이젠에 간다고 한다. 하루 예산이 둘이 합해 겨우 이만원밖에 안되는 우리는 돈을 아껴야 했고, 이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래보야 만원 이만원 차이인데 이 차이에 우리 목숨을 담보로 걸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때는 이미 늦어 있었고,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달려야 했다. 그래서 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이젠 화산 봉우리에 올라가는 등산로에 도착해 있었다. 그때의 안도감이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는 길, 광부를 만났다. 들것을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보통 몇 킬로의 유황 캐서 내려오는지 물었다. 75킬로 정도라고 답했다. 남자친구 자신의 몸무게보다도 무거운 유황을 그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광부가 매일 들어 옮기는 것을 상상하니 우리는 놀라운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이 들었다. 우리는 광부에게 오는 길에 작은 오토바이사이가 있었다고 하자, 전 날 2명의 여성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는 덤으로 해주셨다..

 등산로는 듣던 대로 험하고 가팔랐다. 어느 정도 오르니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있었고, 넘어진 다리고 아파져 왔다. 게다가 올라갈수록 공기가 부족해서인지 화산 봉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성 가스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속까지 메슥거렸다. 쉬고 걷고는 반복하고, 스카프에 물은 묻혀 코와 입을 감싸고 숨을 쉬어 보았다. 조금은 숨쉬기가 편했다. 위에 올라가자마자 가스 마스크를 빌렸다. 숨쉬기 한쯤 더 편해졌다. 이곳에서 일하는 광부 중에서 가스 마스크를 떠나 일반 마스크를 쓴 사람조차도 없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일하다가 십 년에서 이십 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다 죽는다고 한다.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일하니까 말이다. 독성가스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이곳에서 자신의 몸무게보다도 무거운 유황을 들고. 샛노란 색의 유황은 보기는 신비로워 보였지만 마냥 신기해할 수만은 없었다.

 유일무이하다는 블루퐈이어를 보기 위해서는 봉우리 안으로 내려가야 했다. 광부들이 매일 유황 덩어리를 들고 올라가는 이 험한 길을 말이다. 가파른 돌길을 삼십 분 정도 내려갔다.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혹시나 블루파이어를 못 보는 것은 아닌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봉우리 아래쪽에 도착해서는 정말 막바지의 타오르는 파란색 불꽃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연기에 둘러싸여 드문드문 보이는 파란색의 불꽃일 뿐이었고, 우리가 갔을 때는 사라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늘이 하늘빛과 분홍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봉우리 안에 있는 에메랄드색의 산성 호수와 하얀색과 노란색의 암석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를 수밖에 없었다. 한쪽으로는 여전히 독성가스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광부들은 열심히 유황을 위로 나르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광경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그 이면의 안타까움은 카메라에 미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내려가기 전에 인도네시아 십대들과 한바탕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길에 스페인에서 온 스페인 독일인 커플과 말동무를 하며 내려왔다. 남자친구는 독일인 남자와 독일어로 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왔다는 여자와 스페인어로, 서로 같지만 다른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스릴이 넘쳤다. 비에 젖었던 길은 금세 말라 있었고, 아침이라 세상이 환해 멀리까지 길이 잘 보여서 어젯밤처럼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리막길 오토바이는 나에게 너무 무서웠고, 얼른 이 길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내려왔다. 반유왕기에 다다라서는 살았다!! 를 외치고 서로에게 큰 포옹을 했다.

 길고 길었던 밤. 무섭고 두려웠던 밤. 그 밤 끝에 찾아온 아름답고 오색 빛이 가득했던 아침.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밤이 될 것 같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유황을 들고 올라가는 광부.

이젠의 해뜰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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