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2025, 한국
난 영화광이 아니다.
사실 박찬욱이나 봉준호나 뭐나 뭐나 그런 것도 잘 모른다.
그리 저명하거나 뛰어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을 주저리 쓰는 사람이다.
이렇게 시작하면 조회수 10을 넘지 않을 글에 대한 반응이 이상해도 스스로 잘 방어를 해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저도 잘 몰라서 '어쩔 수가 없다'고.
어쩔 수가 없다. 를 봤다. 아. 어쩔수가없다. 이다. 붙여야 하는구나. 띄어쓰기를 안 해도 돼서 아주 마음에 든다. 뭐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한 깊은 뜻보다 그냥 띄어쓰기 생각 안 해도 돼서 좋다. 대충 알고 있었다. 원작이 액스(The Ax)라는 소설이라는 것도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고, 뭐 그래서 영화 초반에 그 이야기를 잠깐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봉준호와 박찬욱
우선 감독이 너무나 유명한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가타부타 말이 많았다. 심사위원 점수는 아주 높은데 우리나라 실관객 점수는 낮고... 뭐 뭔 말하는 영화인지 모르겠고.. 이런 이야기들. 심지어 기생충의 아류작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두 감독이 결이 아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나는 두 감독의 영화를 미친 듯이 좋아해서 여러 번 보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앞서 언급했듯이 영화광도 아닐뿐더러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냥 몇 개 영화를 보고 그들의 스타일을 나 스스로 생각할 뿐이다. 그런 내 좁은 식견에서 보았을 때, 둘은 시작부터 좀 다르다.
내 사견으로는 봉준호 감독은 인물을 통해 사회를 보여주려고 한다. 내가 본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 「기생충」 모두 그 주인공의 서사를 따라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그 사회가 가진 이면을 보여주려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주 사랑해 마지않는 '밀란 쿤데라'의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장막을 찢어 그 뒤를 보여주려고 한다. 「살인의추억」에서의 폭력성, 「괴물」에서의 공권력, 「기생충」에서의 계급(다른 이야기지만, 기생충이 좋은 영화인 이유는 계급주의의 허점을 찢어서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빈자는 착하고, 부자는 악하다는 허점).
반대로 박찬욱 감독은 사회를 투영하고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사견이다, 있으시겠지..). 그는 그 인물 자체에 집중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부분을, 그래서 그의 행동이 가져다주는 결과를, 그냥 그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드보이」의 이우진이나, 「아가씨」의 숙희나, 「헤어질결심」의 해준이나,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어쩌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 일지도).
그렇기에 두 감독을 굳이 내 머릿속에서 나눠보자면, 개인을 통해 사회를 보여주는 자와 개인을 통해 개인을 보여주는 자. 이렇게 나누어져 있다. 그렇기에 이번 리뷰도 그냥 개인을 보여주는 자의 이야기에 초점이 가 있는 리뷰이다.
세 종류의 줄타기, 부채를 든 박찬욱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이 영화는 줄타기 영화다. 부채를 펴고 줄을 타면서 우리에게 줄타기를 보여줄 것 같았던 그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 우리를 줄을 태워 영화 끝까지 데려간다. 친절하고 쉽게 영화를 설명해 가면서 쉽지?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마치 디스코 팡팡의 디제이처럼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마지막까지 우리를 데려간다.
이 영화의 줄타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클리셰와의 줄타기. 영화 속에 클리셰처럼 넣어둔 점핑 포인트, 소위 떡밥을 우리에게 아주 친절하게 던져주며 알려주고,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변주를 준다. 영화의 시작인 해고자 명단을 짜는 사람에서 해고가 되는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이다.
직장을 잃은 가장, 그리고 그 가족에게 닥친 현실, 무릎까지 꿇었지만 무시당한 경험. 원래대로라면 복수심에 불타 그 대상을 죽여야 한다(현실은 아니지만 영화라면..). 하지만 만수(이병헌 역)는 자본주의적인 마인드(아귀처럼)로 접근한다. 아니 쟤를 죽여서 나에게 돌아오지 않잖아? 하며 면접을 볼 만한 사람을 먼저 죽인다. 아주 계획적이게.
과정 역시도 그렇다. 첫 번째 살인 대상(구범모 - 이성민역)을 찾아가 보니 공감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만수. 그를 이해하며 감정이입하고 만수는 크게 상처받고 너무나도 힘들 것처럼 망설이지만, 결국 만수는 해낸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만수, 아라(염혜란 역), 범모의 연기는 가히 타짜들의 한판을 보는 기분. 그렇게 첫 번째 살인을 힘들게 힘들게 마무리 지었으니 두 번째는 더 어렵겠지?라는 우리의 예상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빵! 이렇게 쉽게 끝내버린다. 탄피가 떨어져 있어서 용의 선상에 오르고 그렇게 파멸될 거라는 클리셰를 비튼 건 덤으로.
캐릭터 하나하나를 보자. 미리(손예진 역)의 설정부터가 시작이다. 이혼의 사유가 나오지 않은 애 딸린 이혼녀. 관객들은 어쩌면 그녀가 현실에 힘들어하다가 새로운 가정을 찾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친절하게도 그럴 것 같은 장면과 요소를 넣어 우리를 열심히 꼬신다. 치과에서의 어깨를 잡는 오진호(유연석 역), 들어주는 첼로 가방, 창문을 내리지 않는 만수, 무도회에서의 복장, 만수의 속옷 소동 등. 하지만 그 모든 클리셰를 결국은 박살 내버리며 우리를 방방 띄운다.
사고를 치고도 피스트범프를 거절하는 아들(아버지와 아들 관계 역시 만수의 음주 문제로 간극이 있음을 암시하고)과 아들을 위해 아빠 친구와의 섹슈얼한 접근도 마다하지 않은 엄마, 전형적인 가족의 고통을 보여주며 가정이 붕괴될 것 같지만 만수의 한방으로 상황 반전이 되는 것 역시도 관객을 훌륭하게 띄우는 장면이다. 물론 그 이후의 관계 회복의 상징인 담배로 인해 다시 갈등을 만드는 것이 가장 킬포. '끊었는데..'라는 아들의 대사와 그로 인해 발견하게 되는 아버지의 이면의 연결은 정말 클리셰 파괴자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불안정한 딸도 마찬가지다. 첼로만 할 줄 아는 불안정한 딸을 통해, 마지막엔 결국 다 탄로 날 거야라는 암시를 계속해서 준다.(다른 사람의 말을 메아리치기만 하는 장면, 개집에 들어가서 슬픈 음악을 들으며 울고 있는 장면,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장면) 하지만 그 역시도 빵! 자 관객분들 공중제비하실 시간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만수의 설정 역시도 그러하다. 술로 인해 자그마치 9년이나 고생한 그. 술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그. 그런 그가 마지막에 최선출(박희순 역)과의 대결에서 결국 술을 마시고 짓는 부르르르 댄스는 가히 압권이면서도, 결국 파멸로 가는 거야라고 관객들을 속이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만수)는 가장이기에 이겨냈고, 그(박찬욱)는 우리를 한번 더 공중에 띄우며 미소를 띄웠을 것이다. 이렇듯 박찬욱 감독은 본인이 부채를 들고 우리를 공중에 띄우며 멋진 줄타기를 완성시켰다.
두 번째 줄타기는 '신파'와의 줄타기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신파와의 줄타기. 직장을 잃은 가장,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가족의 해체, 그 아픔,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적인 모습으로 이를 극복해야해 라는 대표적 신파와 눈물과 줄타기한다. 마치 그 신파를 주인공에 세워줄 것처럼, 그로 인해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 것처럼 줄을 태운다. "자 이 장면은 슬플 거야 슬퍼야 해 이제 눈물 샷 준비한다. 자 가자" 이렇게 해놓고 사실 그런 장면은 짧게 편집하고 제거해서 김을 새게 만든다. 얼마든지 넣을 수 있었다. 실직하고 나서 직장 동료와 소주 한 잔을 하는(소주는 마시지 않겠지만 슬픔을 나누는) 만수, 범모의 눈물나는 취업 도전기와 알콜 중독으로 인한 고통, 사람을 처음 죽이고 당황하는 장면이나 너 도대체 뭐 하고 다니니 라는 미리의 대사에 사실은 이러이러 해 라며 눈물을 흘리는 만수, 그리고 그를 위로하며 어쨌든 한 패가 되는 가족, 마지막 모든 걸 알게 된 미리가 화장실에 눈물을 흘리고, 만수는 선출을 처리하고 집에 오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마지막 장면에서 가족을 지켜내었다고 공장에서 오열하는 만수 등. 이런 신파를 정말 넣으려면 너무나도 많이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찬욱은 신파에게는 단호하게 말한다. "오늘 네가 탈 줄은 없어, 내려와."라고.
이외에도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표정 이야기도 그 꼭지 중 하나. 지금 잠깐 떠올려 봐도 선출의 영상을 보던 부부의 웃음이 사라지던 표정, 고시조(차승원 역)의 표정 불안한 표정 클로즈 업, 자신을 찾아온 만수를 손짓으로 들어오라던 선출의 불안한 차 안의 표정, 미리의 복잡한 표정까지(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연기를 한 것은 손예진 배우가 아닐까), 그들의 표정으로 모든 영화를 이끌어 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많은 이야기와 장점을 다 집어삼킬 만큼 박찬욱 감독의 줄타기는 훌륭했다.
점잖고 심각하지만 웃기고 싶은, 놀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사람
이 영화를 마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소리 내어 웃었다. 아 박찬욱을 영화화하면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기고 싶고 놀리고 싶어서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가는 사람. 나는 그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경찰에게 서에 가서 다 말씀드리겠다는 만수, 세 사람의 완벽한 연기 트리오(너 이 뱀새끼는 덤), 음악을 최대로 올려서 자막으로 처리한 참신함, 여기가 제일 전파가 잘 터지는 곳이야 라는 범모의 대사까지. 정말 웃기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는 영화다.
글을 마치며
세 개의 줄타기. 당신이 잊었던 세 번째 줄타기는 무엇일까? 바로 당신(관객)과의 줄타기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면 박찬욱에게 묻는다.
"아니 저기요, 왜 앉아만 계세요? 저 줄타기하는 거 보러 왔는데 왜 앉아만 계시냐고요?"
그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부채 뒤에 웃고 있는 표정을 숨긴 채 한 마디만 한다.
"출구는 저쪽입니다."
그는 그렇게나 유쾌한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한다. 어리둥절하게 관객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줄타기를 하느라 흘린 땀으로 흥건한 좌석을 둔 채로. 그러니 관객들은 나가면서 두 부류로 나뉠 수밖에 없다. 줄을 탔다는 걸 아는 관객은 화색과 함께 너무 즐거웠다고 말할 것이고, 줄을 탄지 모르는 관객은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마치 이 영화가 계급투쟁이나 AI에 대한 비판만 들어있고, 기생충의 아류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앞서 말했듯, 결과 길이 아주 다른 두 감독의 영화다.(기생충이랑 비슷한 건 비중 있는 아내의 배역과 예술계의 자녀 정도)
이 영화의 본질은 줄타기다. 줄을 내가 탔는지 네가 탔는 지를 몰라서 그렇지. 그러니 얼른 극장으로 가서 「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처럼 신명나게 줄을 타보며 한번 더 영화를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