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지 않는 장막에 대하여

플로리다 프로젝트 / 2018, 미국(브라질)

by Journey of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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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홍보는 이렇게 시작한다. "201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 아하... 흐음...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가, 보고 나서 찾아보니 나오는 이 문구는 나에게 다른 영화 한편을 떠올리게 했다. 그 이름 '지구를 지켜라'. 휴먼 가족 코메디인 줄 알고 갔다가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고 나왔던 그 영화. 그래서 영화도 망하고 감독도 한참동안 힘들었던 그 영화. 그리고 지금도 명작으로 꼽혀 망한 마케팅의 한 예로 잘 나오는 영화. 그 영화가 떠올랐다는 건, 그만큼 이 영화와 홍보문구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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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

이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색감이었다. 플로리다의 쩅한 날씨와 보라색이 만나면서 동화같은 느낌을 주었다. 보라색 호텔. 보라색. 보라색.... 내가 생각하는 보라색은 튀는 색이었다. 다른 색과 섞이지 않는 색이지만, 동시에 다른 색을 주도할 수 도 없는 색, 튀지만 메인이 될 수 없는 색, 이방인 같은 색, 조금 더 연해지기를 강요받는 색, 다른 색과 비슷해지길 강요받는 색. 그래서 이 영화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색처럼 보였다. 어울릴 수 없는 주도할 수도 없는 색이니까.


바비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나에게는 낯설었다. 외국 문화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막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나마 가장 열심히 살고 정상처럼 보이는 바비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바비의 눈으로 헬렌과 무니를 보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짜증과 화남과 연민을 느꼈다. 마치 나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바비 너도 문제가 있어. 너도 부모님한테 생일축하 했다고 화내고 하잖아. 결국 너도 문제가 없지 않은걸? 바비가 자신의 문제를 지적당할 때 느꼈던 당황을 영화 밖에 있는 나도 느꼈다면 영화 감독이 ''너도 별 다를 거 없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현생

현생이 현생이다 보니, 교사의 관점이 영화 보는 내내 자꾸 끼어들었다. 애를 저렇게 두면, 애가 저렇게 크면, 저 말은 안하는 게 좋은데, 저렇게 할 거면 왜... 등등 내가 아닌 교사 카레빵맨이 자꾸 끼어들어서 영화보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영화는 도덕성을 던져야 한다. 영화 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이 도덕성을 던지고 그 작품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죄와 벌'은 그냥 살인자의 이야기가 될 것이고, '안나 카레리나'는 바람핀 여자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도덕성을 던지고 작품을 보아야 작품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헬렌

도덕성 카테고리와 교사 카레빵맨을 지우고 보는 헬렌은 나이브하고 영악했다. 세상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고민하지 않는 것과 무니가 잠들면 나가서 놀고 싶어하는 마음은 나이브했고, 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영악하다고 느꼈다. 애슐리와 사과하고 싶을 때도, 사과와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애슐리의 가게에 가서 애슐리를 불편하게, 짜증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나를 보고, 못되게 굴지 않을테니 나를 용서해라는 태도로, 나이브 하고 영악하게 사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늘 통할 수는 없다. 애써 포장해달라고 한 음식을 버리는 것에서, 결국 그 방법이 실패했음을 통렬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어린이 같은 이 모습에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라는 무니의 어른스러운 말이 겹쳐지는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른이 빨리되는 아이들의 옆에는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이 있으니까.

헬렌에 있어서 또 흥미로웠던 점은 헬렌이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 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헬렌에 역사에 대해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뭐 그게 사는 거야 라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부분은 영화 마지막에 더 자세히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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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

헬렌의 나이브함과 영악함을 체득한 무니. 그러기에 무니의 행동에 잘못한 일은 없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 영화처럼. 그러기에 무니는 큰 실수(방화)를 하고도 말하지 않는다. 물론 묻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그냥 흘러간다. 영악함인지도 모르는 채 나이브하게, 천진난만하게.

그래서 무니에게 있어서 헬렌은 그냥 '엄마'다. 좋은 엄마, 나쁜 엄마의 판단 잣대가 없이 그냥 엄마다. 망가진 향수를 가져다가 싼 값에 팔고, 디즈니 랜드 입장 팔찌를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로 팔지만 그냥 엄마다. 싸구려 향수가 안팔릴 때는 무니를 팔아서 구걸을 하지만, 무니에게는 그냥 엄마일 뿐이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이 영화의 의미는 그래서 무니가 주인공이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눈에는 그냥 엄마로 보이는 헬렌, 그래서 자신의 가장 큰 문제는 엄마랑 잠시 떨어지는 게 아니라(왜냐면 엄마니까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친구랑 떨어지는 게 더 걱정인,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


나무

이 영화에서 감독이 아 이건 말해야해! 라고 꼭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듯한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무니와 젠시가 나무에 가는 장면. 감독은 무니의 말을 빌려 말한다. "쓰러져도 계속 자라거든."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진실. 결국 자란다 라는 지점. 물론 당연하게도 현실은 무자비하게 무니를 덮쳐온다.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애슐리와 싸우고 결국 아동보호국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쓰러지고 현실이 덮쳐와도 무니는 자랄 것이다. 그냥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랄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찰리 채플린의 말. 아름다운 노을과 햇살이 있는 플로리다에 관광객이 많이 오는 그 디즈니 랜드의 주변에는, 가까이서 보면 정말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 가까이 가야만 보이는 것들이다.

사실 영화는 여러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자고 설득하거나, 공공 제도를 비판하거나, 교육을 말하거나 혹은 주인공들의 삶의 태도를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즘 한참 시끄러운 단어인 "계몽"하지 않는다. 그냥 그게 삶인 것이다.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 지 그냥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가지는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관심을 주든지, 제도를 비판 하든지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프로젝트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보여주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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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영화의 홍보문구인 "201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 이라는 문장은, 결국 나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바뀌었다. "2018년 우리를 삶 자체로 데려가는, 그래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가장 진짜 같은 가짜이야기의 걸작" 가리지 않는 장막에 대한 영화. 삶 자체의 영화. 그렇게 이 영화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또 하루도 정리하기로 했다. 삶은 이어진다. 쓰러진 채로도 자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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