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 수업_곽아람
극한 상황과 낯선 공간 속에서 진짜 내가 나타날 때가 있다. 일상은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해서 내가 나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냥 물줄기가 흘러가는 대로, 구름이 지나가는 대로 나를 보낼 뿐이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나를 던져뒀을 때는 사뭇 다르다.
낯선 타지와의 적응 속에서 나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알아간다. 따라서 여행은 낯선 곳과의 조우라고 할 수 있지만 나와의 조우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잘 몰랐던 나를 미지의 공간에 발자국을 남기고 나서야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약 1년간의 해외 연수로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단순 출장을 제외하고 해외로 가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해외연수는 기회였다. 일상을 벗어나 하고 싶은 걸 많이 하는, 기존의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기회.
그녀는 자신이 살던 방식과 다르게 살겠다고 하지만 그 과정은 결국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그녀가 운운했던 ‘괴테’의 삶이 아닌 ‘호퍼’의 삶으로 뉴욕을 거닌다. 즉, 고독이라는 그림자가 그녀를 삼키기 시작했다.
This is New York
볼 것도 많고 화려한 것도 뉴욕이지만 쓸쓸하고 고독한 것도 뉴욕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었다. 축제가 시작하기 전 기대를 높이기 위해 진행자가 하는 말 같기도 한 이 말은 여기는 더 이상 한국이 아니라는 현실을 자각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여기는 뉴욕이다. 아는 사람도 없으며 되려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 도시다.
그리고 ‘호퍼’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뉴욕의 밝은 면보다는 어둡고 고독한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어쩌면 그녀가 ‘호퍼’의 그림에 매료되고 ‘호퍼’의 삶을 살게 된 건 뉴욕이라는 공간과의 필연적인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사유’만이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고독 속에서 할 수 있는 자기 충족적인 활동이다. 그녀는 고독 속에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책 제목과 같이 뉴욕이 수업의 공간이 될 수 있던 건 바로 사유의 끝에 이른 그녀만의 결론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녀는 ‘호퍼’의 도시에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긴 고독의 끝, 낯선 뉴욕에서 그녀는 그녀를 만났나 보다.
내가 이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를 깨닫기 위해서다.
-요한 볼프강 괴테, 이탈리아 기행 中-
그녀는 그녀가 처음에 원했던 ‘괴테’의 삶을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그녀가 상상했던 여행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낯선 땅에서 자신을 알아갔다. 그 과정에 ‘호퍼’가 있었을 뿐, 여행이 끝나고 뒤로 돌아섰을 때 보이는 수없이 찍힌 발자국은 그녀의 여정과 낯선 뉴욕의 땅이 그저 쓸쓸하지만은 않았다고 명시한다.
저자가 소개한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운명이란 언제나 예측불허하며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을 보니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계획한 대로 이어지는 여행이 있을까.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예산이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고난 끝에 남는 건 좋은 추억이다. 저자가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의 감정에는 시원함도 있겠지만 아쉬움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책을 읽고 어제와 같이 똑같은 학교를 갔고 똑같은 지하철을 타며 똑같은 곳으로 일하러 갔다. 다음 날도 별다를 건 없을 것이다. 이런 일상이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지치기도 한다. 며칠 뒤, 마침 내가 타는 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을 탔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앉고 창밖을 봤다. 여행은 일상 속에서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기만 해도 가능하구나. 가끔은 낯선 풍경을 찾게 됐다.
글_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박성준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