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고 끊임없이 듣고 있다.
2022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청각장애인인 ‘트로이 코처’를 배려해 수화를 한 ‘윤여정’ 선생님의 수상 발표도 화제가 됐었다. 최초의 청각장애인 수상자라는 타이틀로 들썩였지만 ‘코다’라는 작품도 같이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코다’는 여러모로 예쁜 작품이다. 여름이 주는 다채로움과 바다가 주는 시원함, 소녀의 사랑 이야기와 성장 이야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함께 성장해가는 한 사람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여름 햇빛 아래에서 노래하는 한 소녀의 사랑, 성장 이야기는 많다. 음악이라는 요소로 즐거움을 주고 사랑이란 요소로 과몰입을 주며 성장이란 요소로 감동까지 준다. ‘코다’는 이런 흐름을 따르지만 조금의 뒤틀림이 있다. 익숙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 뒤틀림, 차별점은 주인공 ‘루비’에게만 있지 않다. 영화 안에는 많은 갈등이 등장하며 그 갈등을 해결하는 ‘코다’만의 방법이 있다.
영화 내의 갈등은 주로 ‘소통’에서 비롯된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뭐가 있을까? 일차원적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신체의 한계다. 청각 장애인인 ‘루비’의 가족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들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루비’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렵다. 수화를 말로, 말을 수화로 변환해 주는 해석자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원인을 생각하면 경험의 유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소통을 이어가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보면 경험의 연장선에 있는 이해의 문제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이해할 수 있는지, 나와 다른 경험을 해온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지가 이에 해당한다. 영화의 표면적인 걸 보면 신체의 한계에 따른 소통의 문제가 보이지만 그 안을 보면 이해에 따른 소통의 문제가 보인다. 그리고 영화 속 갈등은 대게 이런 이유로 발생한다.
학교 아이들은 청각 장애인인 가족을 둔 적이 없기 때문에 ‘루비’를 놀리며, 정부는 어부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한만 가한다. 그리고 ‘루비’의 가족은 그녀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그녀가 음대로 가는 걸 반대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이런 갈등 속에서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해결 안에서도 혼자서 해결하느냐, 아니면 상대방과 같이 해결하느냐가 있다. 친구들과의 갈등은 거의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루비’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일스’와는 다르다.
‘루비’가 ‘마일스’를 좋아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이들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한다. 그 경험은 ‘두려움’이다. 12M 되는 바위에서 다이빙을 시도하며 같이 두려움을 극복한다. ‘마일스’는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에서 뛰어내리고 ‘루비’는 자신에게 기대는 가족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바위 끝에 섰을 때의 두려움과 부담감에서 전해오는 두려움을 같이 경험한다.
정부와의 갈등은 그들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경매에 맡기지 않고 그들이 직접 사람들을 모아 생선을 팔기로 한다. 갈등의 주체인 어부-정부가 아닌 어부들끼리 연합해 그 갈등을 해결한다. 하지만 이는 곧 가족 간의 갈등을 야기한다. ‘루비’와 부모님의 갈등이다. ‘루비’는 대학교에 가길 원하고 부모님은 ‘루비’가 자신들의 일을 도와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중심엔 소리가 있다. 부모님은 ‘루비’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그녀의 재능을 모른다. ‘루비’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부모님의 마음을 잘 모른다. 이들은 어떻게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까?
바로 제3자에 의한 경험이다. 음악회에 가서 ‘루비’의 노래를 들을 때 아빠는 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루비’의 재능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경험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목에 손을 대고 공기가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경험을 공유한다. 언어가 아닌 표정과 떨림으로 이들은 서로를 이해했다.
영화를 보면서 인물들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관객과 ‘루비’의 가족들 간의 이해의 문제도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루비’가 대학교에 가는 걸 반대하고 가족의 일을 도와주기만 바라는 그들을 볼 때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어려움도 물론 공감하지만 딸의 꿈을 몰라주는 그들이 조금 미웠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들의(청각장애인)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이해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 공간은 음악회다. 소리가 들리지 않은 이들에게 음악회는 지루할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 부모님은 수화로 저녁을 뭐 먹을지 얘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노래의 박자에 맞게 박수를 칠 때 이들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순간에 맞춰서 박수를 친다. 그래서 이들이 치는 박수에는 음악의 리듬감이 없었다. ‘루비’가 ‘마일스’와 듀엣을 부를 때는 영화의 소리가 사라진다. ‘루비’의 가족처럼 사람들의 반응과 표정만 느낄 수 있고 노래는 느낄 수 없다. 관객은 이를 통해 그들을 이해한다. 듣지 못했을 때의 불편함과 지루함, 그리고 ‘루비’가 음악대학에 가는 걸 왜 반대했으며 그녀에게 많이 기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청각의 한계로 소통이 어려울 수 있지만 감정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고 느꼈다. ‘루비’의 오빠가 대학을 가지 않고 가족을 돕겠다는 그녀에게 화를 내며 자신과는 다른 재능을 가진 동생에게 떠나라고 수화로 말하는 장면은 정말로 들리는 듯했다. 수화를 ‘본다고’, ‘읽는다고’ 느꼈던 적이 많다. ‘코다’는 수화가 ‘들렸다’. ‘루비’의 노래가, ‘루비’가 물에 뛰어드는 소리가 들리듯이 수화 또한 아름답게 들렸다. 감았던 눈을 뜨고, 막았던 귀를 열게 한 영화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고 끊임없이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