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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8. 2020

[악인전]뒤바뀐 역할놀이를 통해 기성권력을 냉소하다



 



“나쁜 놈 둘이서 더 나쁜 놈을 잡는 거지.”



영화 악인전에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다. 공권력이 권위를 잃은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하고 사회규범의 균형을 맞추는 주체가 조직폭력배라는 넌센스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사회악의 한 축인 조폭이 연쇄살인마를 처단하며 사회적‘대의’를 실현해가는 상황에서 관객은 이들에게 과연 기성사회의 도덕준 준거를 들이댈 수 있을까? 이원택 감독은 이런 패러독스와 뒤바뀐 역할놀이를 영화적 장치로 전개해 부패한 공권력과 기성사회를 비웃고 있다. 

  











관료제에 찌든 불합리한 공권력과 외골수 기성권력에 대한 냉소



영화 속에서 경찰로 대변되는 공권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력함으로 점철된 존재다.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연쇄살인에 대해 경찰은 자그마한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내홍만 겪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사건이 발생해 정태석(김무열 분)은 비상사이렌을 차에 올리고 출동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런 경찰을 냉소하듯 비상차량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응대한다. 경찰이 시종일관 헛다리를 짚는 동안 범인은 동일한 수법과 도구로 범행을 자행하며 사회를 선혈 낭자한 공포로 계속해서 물들이고 있다.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또 사건이 터지자 사건은 광역수사대에 배정되는데, 광역수사대의 등장은 ‘여전히’ 무능한 공권력의 번복일 뿐이었다. 그들은 사건에 대해 어떠한 스키마(배경지식)도 갖추지 못했으며 지역수사대에 대해 고압적인 자세만 보일 뿐 협업 혹은 도움을 받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사건해결에 관한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사건과 함께 무기력함까지 인계받은 광역수사대는 한국 관료조직의 불합리함을 풍자하고 있다.










경찰과 조폭, 묘한 역할 바꿈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긴장감은 ‘뒤바뀐 역할놀이’에서 온다. 경찰력은 사내 정치와 내홍에만 몰두할 동안 조폭과 더 깡패같은 경찰이 범인 검거를 내걸고 도박하듯 힘을 합치면서 사건 전개는 급물살을 탄다. 수사 인력도, 비용도 조직폭력배가 대고 경찰이 이에 부수적으로 참여를 하는 아이러니함은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조폭두목 장동수는 경찰 정태석에게 ‘니네는 월급받고 일하지? 우린 목숨 걸고 일해’라며 소명의식을 질타하는가 하면 ‘내 밑으로 들어올래’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또 탐문수사 중에 조폭이 같은 조의 경찰 배지를 뺏어 들고는 ‘경찰입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뒤바뀐 역할놀이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공권력이 답보상태에 빠져있을 때 조폭이 속도감있게 범인을 추적하며 ‘사회정의를 구현’해가는 아이러니함은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호소력의 근간을 이루었다. 














마지막 ‘살인’미소, 뒤바뀐 역할놀이에서 오는 강력한 카타르시스



어쩌면 마지막 한 장면을 위해 영화는 2시간여를 달려오지 않았을까? 법률로 대변되는 공권력은 ‘피의자 인권’의 미명 하 범인을 교도소에 가두어둘 뿐 그 어떤 심리적 복수도 용인하지 않는다. 법에는 맞으나 관객이 생각하는 ‘정의’에는 합치되지 않는, 또 다른 무능한 모습이다. 조폭두목 장동수는 그간의 범행을 자수하며 연쇄살인마가 있는 교도소로 수감되면서 의중이 명명백백한 미소를 짓는다. 장동수로 분한 마동석의 미소는 살인범을 물리적으로 응징하는 사전적 의미의 ‘살인’미소였고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함을 영화는 마동석式 폭력으로 일순 해소하며 관객에게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기성권력의 무능함에 질릴 대로 질린 관객들은 어쩌면 뒤바뀐 역할놀이를 통해서라도 조금 더 속 시원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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