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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8. 2020

원더키디가 '반상 위의 우주'를 지켜낼 수 있을까?

원더키디가 '반상 위의 우주'를 지켜낼 수 있을까?

                                                                                                                                                          



때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5G기가인터넷에 AI인공지능, 빅데이터에 블록체인 기술, 자율주행, 첨단 바이오산업 등 신문지상에는 생경한 용어로 도배된 기사들이 연일 올라온다. 분명 한글로 표기된 단어이지만 아직 스마트폰도 익숙하지 않은 시골 무지렁이가 척척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결국은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대강의 뜻을 알아차리곤 한다. 



이미 시작한 4차 산업혁명, 인류에게서 ‘반상 위의 우주’를 앗다. 

2016년 3월, 한 왜소한 한국인은 컴퓨터와의 바둑대결을 펼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과는 5전 1승 4패, 지구인들은 이세돌이 승리할 때 선보인 제78수를 신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수라며 극찬했지만, 인류의 대표로 나선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컴퓨터에게 패했다는 당혹스러움과 그 뒤에 밀려온 무력감을 세계인들이 감출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장기와 체스와는 달리 바둑은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가 펼쳐지기에 제아무리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그 수를 모두 학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대다수의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은 이세돌의 승리를 점치는 상황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해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메가 트렌드다. 사전적인 의미를 들여다보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풀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초연결, 초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변화의 속도와 범주가 기존의 산업혁명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크다는 데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첨단기술의 패러독스? 개천에서 용 안나오고, 인류는 골동화되어가는 中...

통신정보 기술의 발달과 인공지능의 개발로 사회 시스템은 더욱 촘촘하고 거대화되어가고 있다. 홍길동과 같은 사회 변혁적인 인물은 이제 설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체계적이면서도 거대해진 현대의 사회 조직망은 그런 걸출한 인물 몇 명의 출현으로 뒤집히거나 변모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암기식 교육과 획일적인 문화보다는 인간의 개성과 자기 주도력이 중요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데, 오히려 인간은 기계와 시스템에 종속되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한 마을에 한두 명 정도는 출중한 인물이 나왔고, 이들을 가르켜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개인은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충분히 풍요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고 이는 사회구성원들이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회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조직될수록,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정보의 비대칭이 심화되고 개인이 조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져 선천적인 신분 층위를 변경하는 것이 과거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 많은 전문가들이 내다보고 있다. 이른바 인간이 만든 기술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는, ‘첨단 기술의 패러독스’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고를 선보인 구글은 “사실 알파고는 우리 회사가 가진 딥마인드 기술이 어디까지 와있나 테스트하기 위해 만든 임시적 창조물이다. 우린 딥마인드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차량 자율주행, 바이오헬스산업 육성 등 인류의 삶을 한층 발전시켜갈 것이다”고 밝혔다. 가장 똑똑한 사람과의 창의성 게임에서 완승을 거둔 알파고가 구글의 베타버전이라니, 이쯤 되니 기술의 발전이 달갑지 않다. 아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인류가 기계에 종속되는 미래사회가 앞당겨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이미 나는 거대한 시스템에 속박되어 있다. 포털사이트를 열면 광고 배너에 엊그제 내가 검색한 물품들이 추천상품으로 떠있다. 카카오톡으로 취미가 같은, 일면식도 없는 온라인 지인들과 단톡방에서 인사를 나누고 특정 바이오주식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으며 투자를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손실을 내고있는 친구에게 ‘도박하지 말라’며 주제넘은 면박을 주기도 한다. 모든 대화가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질 뿐 친구들과 현실에서 면대면으로 대화를 나눈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5G망이 전국에 깔릴 테고, IT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례해 인간의 소외감도 더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해 가는데 사람의 신체와 지적능력은 기술만큼 빠르게 변모할 수가 없는 현상을 보며 어떤 철학자는 ‘인류의 골동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원더키디가 보고싶어할 방송, ‘나는 자연인이다’

내년이면 내 나이 불혹.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닐진대 기술의 속도에 발맞출 재간이 내게는 없다. 최근 한 초등학교 중견 교사가 유투브와 첨단 IT 디바이스로 수업하는 것이 힘에 부쳐 명예퇴직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나 역시 기술 발전과 거대 사회조직 앞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통신 기술이 발전할수록 친구의 정이 더 그립고 이동 기술이 발전할수록 들꽃이 반겨주는 친숙한 동네 뒷산이 더 그립다.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방송사의 ‘자연인’ 프로그램이 전체 채널 중 꾸준하게 6~7%의 우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건 기술과 사회 앞에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방증일 테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원더키디 2020’이라는 TV만화영화를 보며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다가 결국 전쟁이 벌어지고 감성을 잃어가던 인류가 결국은 휴머니즘적인 발견을 한다는 줄거리가 얼핏 기억난다. 

2020년이라고 해봤자 이제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원더키디의 내용은 4차 산업혁명이 태동하고 있는 현재와 어느 정도 모습이 닮아있다. 기계와 시스템은 발전했고 인간은 그 둘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아니 종속되고 있다. 만화영화를 보며 키워냈던 어린 시절 소망처럼, 나와 인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와 기술발전의 거대담론을 뚫어내고 진중한 휴머니즘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질문이 지금의 나에겐 벅찬 철학적 내용인 것 같다. 요지를 옮겨보자.

난 과연 카카오톡의 알람소리로부터 조금 무신경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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