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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Jun 20. 2019

뷰파인더에 당신의 홍조를 담다.

모성에 관하여...

                                                                                                                                                                                                                                                                                                                                                                                                                                                                                                             

커다란 전문가용 카메라를 사원증을 두른 목에 겹쳐 멘 나의 모습을 당신은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셨다. 렌즈가격만 300만원을 호가하던 카메라와 지어진 지 50년이 훌쩍 넘은 연립주택은 다소 이질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안방의 빛바랜 도배지는 이미 몇 차례나 덧발라진 덕에 낡은 집에서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고, 카메라는 그 위용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어느 수납함에 안전하게 모셔졌다.


당신의 지아비는 무능했다. 사업을 일으켜 큰돈을 벌겠다는 허황된 꿈만 가득했을 뿐 실제로는 아주 어리숙해서 영악한 세상을 맞설 수 있을 만큼 명민하지 못했다. 결국 지아비는 몇 차례의 실패 후 채무만 한 가득 남겨두고 집을 떠나갔다. 농장 잡부부터 식당일, 건축현장 막노동 등 당신은 닥치는 대로 품을 팔았다. 애당초 일용직 급여로 갚아낼 수 있는 수준의 빚 덩어리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품이라도 팔아야 저녁 땟거리를 사들고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슬하에 자식이 셋이었다. 거기에 지병으로 투병하는 연로한 시모까지, 무책임한 지아비를 반려자로 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당신이 책임졌던 몫은 때론 당신에게 너무나 벅차 보이기도 했다. 사회 계층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처한 당신이었고 현실은 없는 자에게 필요이상으로 거칠었지만 당신은 어떻게든 생때같은 자식들을 건사하고 살아내기로 한다.


당신은 세상 앞에서 가장 강한 철인(鐵人)이었고 가족 앞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이었다. 일한 삯을 떼이고 부당하게 일거리를 잃어 좌절한 적도 있다. 지금처럼 사회보장 장치가 잘되어있지 않았고, 노동자는 자본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그 때마다 당신은 걸쌈스럽게 일어나 다시 앞을 보고 달려갔다. 어린 아이들은 투병 중인 시모가 키웠다. 자식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고, 엄마의 따뜻한 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당신이 자식들 하나하나 신경 쓰기에는 하루하루 버텨내기가 힘에 부쳤다.

우리시절 부모님 중 그러지 않은 분이 어디 있겠느냐만, 당신은 특히나 입지 않고 먹지 않으셨다. 당신에게 쓰일 돈은 고스란히 자식들에 투자되었고, 당신은 당신의 ‘무신경함’을 그렇게라도 보상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옷의 팔꿈치는 언제나 해져있었고, 드문드문 헝겊이 덧대어 꿰매져 있었다.



낡은 집, 곤궁한 살림이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올곧게 자라났다. 아니, 동년배에 비해 다소 철이 일찍 들었다는 표현이 옳아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에 넌더리가 난 아이들은 저마다의 갈 길을 일찍 찾아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2달이 지난 뒤 취업했노라 막내아들이 내놓은 H차그룹의 사원증은 평생을 일용직을 전전했던 당신의 거친 삶에 모종의 보상이 되었으리라. 홍보업무를 담당했던 막내는 회사 카메라를 메고 나타날 때가 종종 있었고 고가의 카메라를 당신은 신주단지 모시듯 낡은 서랍장에 보관하곤 했다. 하지만 사진에 또렷하게 담기는 거친 살결이 부끄러웠는지 당신은 좀처럼 카메라에 곁을 주지 않았다.


막내는 직장을 옮기고 요새는 카메라를 만질 일이 거의 없다. 장롱 속 방치된 카메라를 들어본다. 극세사 천으로 렌즈를 닦은 뒤 본체에 마운트한다. 반셔터를 누르니 자동으로 초점이 피사체를 잡아들인다. 좋은 세상이다. 이번 주말에는 당신을 뷰파인더로 스케치해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두려 한다.


당신의 선명한 모습을, 당신의 여생 중 가장 젊은 당신의 모습을 찍어 두고두고 보존해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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